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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전을 버려서는 안 돼는 이유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0년 04월 20일(월) 16:54

ⓒ 황성신문
한반도는 치욕적인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1945년8월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거쳐 제헌국회를 구성하고,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 당시 한반도내 주된 전력공급시설은 주로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북한에는 수풍수력발전, 장진강수력발전소, 부전강수력발전, 부령수력발전소 등 수력과 화력을 통한 발전량이 남한의 약 2배 이상이었고, 인구 대비 1인당 전기는 북한이 남한의 3.5~4배에 달했다.

 해방 이후 남한은 북한의 전기에 의존할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다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자, 북한은 남한에 대한 전력 공급을 차단함으로써 한국은 전력 보릿고개 시대를 겪게 되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우남 이승만 박사는 에너지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의 상황을 한탄만하기 보다는, 한국 민의 근성과자질에 국가의 희망을 걸었다. 석유도, 열량이 우수한 석탄도, 천연가스도 무엇 하나 마땅한 지하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국가적 에너지 보릿고개를 벗어날 길에 대해 고심한 결과, 인적자원 극대화를 통한원자력 기술도입이란 결론에 도달하였다.

 당시 국민들에겐 원자력이란 용어 조차 생소한 시절이었다. 이승만대통령은 1955년 문교부에 원자력과를 신설하고, 1957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창립 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한국이 국제원자력기구에 가입 했을 때는 한국은 유엔 회원국도 아니었을 때다. 그이후 1958년 원자력법을 제정하고, 1959년 1월 원자력원이란 정부기구를 만든 후1959년 2월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하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원자력 공학과를 신설하였다.

 한국전쟁이후 한국은 유엔의 구호물자에 의존하여 국민들은 하루 살기도 버거운 상황 이었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두뇌자원 개발만이 모든 산업의 기본동력인 에너지 빈곤의 시대를 극복할 수있다는 신념하에 수백 명의 원자력 공학도들을 미국과 영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결단을 하였다. 1인당 국민소득 60달러 남짓하던 시절 이었다.

 이 시절에는 20달러 이상 외화를 지출할때에는 통제할 정도로 달러를 아꼈던 시절이었지만. ‘미국 . 영국으로 원자력을 공부하러 나가는 유학생들을 친히 불러 나라의 미래가 여러분들 손에 달려 있다며 열심히 공부하라면서 달러가 든 봉투를 쥐어줬다 ’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 때의 유학생들이 한국 원자력 1세대의 길을 열었고,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한국형원자로 개발의 초석이 다져지게 되었다.

 그 이후 박정희 정부는 1962년 원자력발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원자력발전추진계획을 수립하였고, 1967년도에 1976년까지 50만kW급 원전 2기를 경상남도 양산시 고리에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1971년 착공한 고리1호기는 1978년 가동에 들어가게 되었다. 1955년 문교부에 원자력과를 신설한 이후 23년 만에 한국의 원자력 시대가 열렸다. 당시 고리1호기 건설 사업에 투입된 예산은 총 1,560억7,300만원으로 그해 1년예산보다 많은 비용이었다. 그리고 이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290달러였다. 그런 열악한 국가 재정 상태를 감안한다면 한국이 원전을 건설한다는 것은 당시 물동량의 흐름을 감안할 때 시기상조라는 경부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만큼 무모한 선택 이었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의 원자력시대를 엶으로서 울산, 창원 등 한국의 중화학공업을 뒷받침할 수 있게 되었고, 산업구조의 다각화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국민소득 60달러의 열악한 시기에 오직새로운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언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낯선 이국에서 한국의 젊은 청년학도들은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익히는 것이 나라 사랑이라 생각하며 학업에 혼신의 열정을 쏟았고, 그들이 돌아와 원자력연구소와 원자력발전소 현장등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주었기에 최소한원전 건설과 운영을 위해 무엇을 하여야하고, 무엇에 집중하여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처음 원전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들은 기술보조 인력으로 또는 단순 노동력을 제공하면서도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워나갔다.

 내 나라의 건설현장 임에도 불구하고 외국기술자들의 눈칫밥과 무시를 힘겹게 견뎌내며 그렇게 익힌 기술이 바탕이 되어 독자적으로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원전대국이 되었다.한국의 원전기술 자립의 단계를 보면. 원전건설을 시작한 1970년대에는 주로 미국 기술에 의존하면서 주변기술이랄 수 있는 건설. 시공분야에 대한 자립을 하였다.그리고 1980년대에는 부품 국산화로 우리의 기술 능력을 함양하면서 우리가 할 수있는 부분을 찾아 국산화를 하면서 기술을자립하였다.

 1990년대에는 구조와 계통의 국산화 즉해당되는 원전과 시스템의 기술 자립화를 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원천기술을 철저하게 한국 실정에 맞도록 보완하여 한국의 원전기술로 확립해 나가는 여정이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 한국은 미국. 캐나다. 러시아. 프랑스. 일본 등과 함께 원전핵심 기술을 모두 보유한 국가로 외국의 기술 지원 없이 단독으로 원전을 건설. 운영하며 수출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원전 보유국 중 독자 모델 원전을 수출할 수있는 나라는 한국,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중국 등 6개국뿐이다.

 원전 불모지였던 한국은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면서 독자적인 한국형 원자로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한국은 연구용원자로,소형 스마트원자로, 그리고 대용량 상업용 원자로에 대한 모든 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국제사회에서도 이런 한국원전의 기술력을 인정한 결과, 2009년 12월 UAE에 원전을 수출하는 원전 대국에 이르게 되었다. 원전을 배우는 나라에서 독자적 원전로형을 보유하고, 원전을 해외에 수출하기까지 걸린 세월이 약 50~60년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수 많은 인재들의 노력과 헌신 끝에 자립한 기술들이 사장되고 폐기될 위협 속에 노출되어 있다. 만약 현재 보유한 원전시설 중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설계를 강화하고 시스템을 개선하고 시설을 보강해 기술을 유지 발전 시켜 나가는 게 효율적일 것이다.

 버리고 폐기하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붕괴된 원전 생태계는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산불로 훼손된 산림은 다시 조림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복구될 수 있다. 그러나 기술 생태계는 현재의 기술을 기반으로 끊임없는 기술의 유지·개발과 시스템개선이 이어져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건전한 기술과 산업생태계 유지가 필수적 사항일 것이다. 그러나 원전 생태계를 둘러싼 오늘날 현실은 학교에서부터 전문인력 공급시스템의 고갈 위협과 기술 인력 유출과 관련 기업의 도산 등 산업생태계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되돌리지 않는다면 다시는 국제사회에서 한국형 원전모습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망치는 사이 우리 기술에 위협을 느끼는 나라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과연 제대로 된 부존자원하나 없는 나라에서 순수 한국민의 두뇌자원을 통해 100% 자립한 기술이 정녕 이대로 사장되는 것을 손 놓고 보는 것이 옳은 일일까?

자유 기고가
김용식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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