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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에 젊은 티를 낸다면, 분가루가 부끄럽다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19년 04월 08일(월) 15:25

↑↑ 유몽인 위성공신교서(보물 제1304호, 전남 고흥군 유효주 소장) 유몽인(柳夢寅, 1559~1623) 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문장과 글씨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외교관으로도 명성을 떨쳤으며, 우리에게 는 [어우야담]이라는 최초의 야담집을 지은 문학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왕의 최측근인 도승지로 있을 때 선조가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이 세자인 광해군 대신 어린 영창대군 에게 보위를 잇게 하려고 군사를 동원해 궁궐 안을 호위하였다. 이런 시국상황에도 유몽인은 세자 시절 부터 여러 번 모셨던 광해군이 왕으로 즉위하는데 도움을 주면서 광해군과의 인연은 더욱 깊어졌다. 위 의 사진은 광해군 5년(1613) 3월에 임진왜란 때 세자인 광해군을 보호하고 따랐다는 공로가 인정되어 위 성공신(衛聖功臣) 3등을 내린 상훈교서(賞勳敎書)이다.
ⓒ 황성신문
유몽인은 광해군 말년에 벼슬을그만 두고 금강산에 입산하여 은거하거나 유람하면서 있을 때, 인조반정(仁祖反正)이일어나 광해군은 폐위되었다. 그는광해군 시절 고위관료로 북인(北人)이었음에도 당파의 편 가름에서 벗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조반정이 일어난지 넉 달 만에 광해군을 복위시키려는 모의에 가담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아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그는 반역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그의 아들 유약이 광해군을 복위시키려는 모의에 가담하였고, 그 사실을 나중에 알았지만 반역을 도모한 자식의 행위를 차마 고발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이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살아온 아픔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는 마지막 감옥의 심문에서 아들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원인이 원나라의 충신이었던 양염부(楊廉夫)가 명나라가 건국된 후 태조가 자신에게 벼슬을 주어 등용하려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원나라에 절개를 지키겠다고 표현한 ‘늙은 부인의 노래(老客婦謠)’를 좋아했기 때문이라 여겼다. 그는 감옥에서 이 시를 인용하여 ‘과부의 노래’인 ‘상부탄(孀婦歎)’ 이라는 시를 지었다.

 칠십 먹은 늙은 과부 / 규방을 지키며 단아하게 사는데 / 사람들이 재혼을 권하며 / 무궁화처럼 멋진 남자를 소개했네 / 女史의 시를 제법 외웠고 / 어진 여인들의 가르침을 배운 몸이/ 백발에 젊은 티를 낸다면 / 분가루가 부끄럽지 않겠소...이 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어오고 있지만, 대표적인 해석으로는 오랜 세월 수절하여 늙은 마당에 새삼스레 인생을 바꿔보겠다고 변절 할 수 없다는 유몽인의 뜻이 담겨있다. 또한 모셨던 임금, 즉 광해군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는 결국 이 시로 인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후세 사람들은 그를 평가하길, 광해군 시절에는 바른 도리를 지켜 은거하였으며 반정(反正)이 이루어진 후에도 한번 먹은 마음을 바꾸지 않은 광해군의 신하 가운데 유일하게 절의를 지킨신하라 하였다.

 170여년이 지난 정조 18년(1794) 정조는 그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해 죄를 사면했고, 그의 문집을 간행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의정(義貞)이라는 시호를 내려주면서 김시습에 비유하며 ‘충신’이라 하였다. 당시 사족(士族)들이 서로 편을 갈라 당파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개성이 강한 유몽인으로서는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기회를 찾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저 자신의 신념대로 삶을 산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연경(燕京)에 가는 친구, 이정구에게 보낸 글에서 ‘냉혹함이 얼음장 같다 해도 나는 떨지 않고, 그 뜨거움이 대지를 불태운다 해도 나는 타지 않는다.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이, 오직 내 마음 가는 대로 쫓아갈 것이다.’ 하였다.이처럼 유몽인은 편을 가르는 짓거리가 가장 횡행하였던 세상에서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고자신의 소신대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과감하게 밝혔다.유몽인의 한결같은 삶도 시대에 따라 충신에서 역적으로 다시 역적에서 충신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았다. 현대사회의 우리들은 좋든 싫든 끼리끼리 무리지은단체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자신의 뜻과 다르다고 하여 상대를 힘으로 굴복시켜서는 되지 않는다.

 보복은 보복으로, 비판은 비판으로, 칼자루는 곧 칼날이 되어서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처럼 내편이 아니면적으로 명확하게 구분 짓는 분열의 사회에서 나와 뜻이 같지 않아도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사)신라문화진흥원 부이사장 김호상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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