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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의 사청사우처럼 세상을 미움없이 살자!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19년 11월 18일(월) 14:44

↑↑ 기림사 매월당 영당(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은 원래 은거하였던 경주남산의 용장 사에 사당을 지어 모셨으나,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었다. 이를 애석하게 여긴 경주유림들이 경주부윤 윤창식에게 청원하여 기림사 경내에 다시 지었으나 퇴락되어 1998년 경주시에서 현 위치에 다시 재건하 였다.
ⓒ 황성신문
매월당 김시습은 세종 17년(1435) 서울 명륜동에서 태어나 8개월 만에 글을 쓰고 읽었으며, 세종 임금 앞에서 ‘삼각산’이란 시를 지어왕에게 비단 50필을 받은 장래가 촉망되는 신동이었다. 그러나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를 하던 중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하던 공부를 그만두고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9년간 전국을 방랑하였다. 그런 생육신인 김시습도 세상을 자신 혼자만으로 살수가 없다는 것을 잠시 느낀 시절이 있었다.

 세조 9년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의 권유로 세조가 한문으로 된 불경을 한글로 풀이하는 언해 사업을 도왔으며, 효령대군의 청으로 원각사의 낙성회에도 참석하였다. 그러나 잠시 머물렀을 뿐 김시습은 서울을 등지고 경주 남산의 용장사에 거주하면서 경주남산의 또 다른 이름인 ‘금오산’의 이름을 딴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저술하였다. 그 후 성종 2년(1471) 경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가 수락산 등지에서 승려로 10여년을 살다가 안씨 성을 가진 여인과 재혼하는 등 일시적으로 환속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전국을 떠돌며 다시 방랑의 길을 가게 된다. 김시습의 생애를 보면 임금에게 총애 받던 어린 시절이 있기도 하였지만 15세에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여 강릉에서 3년간 오두막을 짓고 어머니의 무덤을 지키기도 하였다.이후 아버지의 재혼으로 외가에 맡겨졌지만,곧이어 그를 돌보아주던 외숙모마저 죽었다. 이즈음 훈련원 도정 남효례의 딸을 아내로 맞았지만 아버지마저 중병에 걸리는 등 가정적으로 고통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결혼생활 또한 순탄하지 못한 일생을 살았다. 김시습은 불운한 생애를 살았지만 그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격식 없는 자유로운 시와 글을 썼던 문인으로, 불교의 철학과 유교의 이상을 결합하려고 고심했던 철학자로, 몸과 생명을 중시하는 수련도교를 실천하는 사상가로,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동정했던 인도주의자로, 우리국토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깃들여 있는 전통미를 찬미하였던 여행가로 기억하고 있다. 또한 시대와 불화했던 지식인이었으나 고결한 인품과 굳센 지조는 후세에 길이 존경받았다. 선조임금은 율곡 이이에게 그의 전기를 짓도록 하여 ‘매월당집’을 발간하였고 정조임금은 시호를 청간(淸簡)으로 하여 그 풍모를 기릴 만큼절개를 지킨 선비였다.

 그가 남긴 수많은 시가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인시(詩) 중의 하나가 세상인심의 변덕스러움을 날씨에 비교하여 읊은 사청사우(乍晴乍雨)이다. 이시는 기림사의 매월당 영당의 건물 왼쪽기둥에서 부터 오른쪽기둥 순으로 주련에 새겨져있다.

 乍晴還雨雨還晴 天道猶然況世情譽我便是還毁我 逃名却自爲求名花開花謝春何管 雲去雲來山不爭寄語世人須記認 取歡無處得平生언뜻 개었다가 다시 비가 오고, 비 오다가 다시 개이니, 하늘의 이치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세상인심이야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 나를 기리다가도 문득 돌이켜 나를 헐뜯고, 공명을 피하더니 또 도리어 스스로 공명을 구하기도 한다. / 꽃이 피고 지는것을 봄이 어찌 다스리겠는가, 구름은 늘 오고가지만 산은 구름을 잡으려 다투지 않는다. / 세상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기억해 알아두라, 기쁨을 취하려 한들 어디에서 평생 즐거움을 얻을 것인가를...요즘 김시습의 ‘사청사우’가 나를 돌아보게 한다. 김시습은 세상의 어려움을 어떻게 견디었을까?

사)신라문화진흥원 부이사장 김호상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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