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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더 잃어버리기 쉬운 것은 없다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0년 06월 12일(금) 13:49

↑↑ (사)신라문화진흥원 부이사장 김호상
ⓒ 황성신문
분경금지법(奔競禁止法) 이란 ,하급관리가 상급관리의 집을 방문해 관직을 얻으려는 행위나 청탁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법이다. 고려시대에는 분경금지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부터 청탁이 들어오면 뇌물을 받고 매관매직하는 등 있으나 마나한 법률이었다.

 [고려사] 명종 14년(1184)의 기록에는 ‘간신들이 청탁하면 왕은 뇌물을 얼마나 받았는지물어보고 많이 받았다하면 기뻐하며 그 청탁을 들었고, 그렇지 않으면 날짜를 질질 끌며 뇌물이 많아지기를 바랬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관리들의 기강을 바로잡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분경금지법이 강력하게 실시되었다. 특히 태종 1년(1401)5월에 삼군부(三軍府)는 무신의 집, 사헌부(司憲府)는 집정가(執政家)의 집에 대한 분경을 감찰하는 명령을 내려 문신과 무신의 양반들이 분경금지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 삼군부와 사헌부에서는 아전을 시켜 그 집을 지키게 하여 방문하는 사람이 있으면 신분이 높고 낮음을 떠나 온 까닭을 묻지 않고 모조리 잡아 가두게 하자 사람들마다 불만이 일어나면서도 두려워하였다.

 오늘날의 뇌물수수는 뇌물을 주고 받은 여부와 관련 당사자에 한정하여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분경은 지금과는 달리 돈이나 뇌물을 받아야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수수와 매관매직을 성립케 할 가능성이 있는 고위층집의 방문 그 자체부터 적용되는 아주 엄격한 법체계였다. 또한 이 법을 위반하게되면 자손대대로 공직에 취임 할 수가 없었다.

 5대 이내로 관직을 갖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평민으로 전락하던 시대였던 만큼,가문의 양반신분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분경금지법을 어기는 것은 무척 위험한 행위였다. 이러한 조치는 관직의 독점 금지와 관직의 공공성을 높이려는 조선 초기왕들의 정치철학이 반영된 결과였다.

 요즘 ‘성완종 리스트’로 관련 정관계 인물들에 대한 뇌물수수 조사를 보면서, 분경금지에 대한 이행을 말로 아닌 실천으로 하였더라면 국민들의 실망과 더불어 눈살을 찌푸리는 상황이 연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나라의 역대 권력자들은 그들과 관련된 가족, 친척, 가깝게 지내는지인들로 인하여 끊임없는 뇌물수수라는 사회적인 문제들로 ‘뜨거운 감자’가 되어왔으나, 이것은 그들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권력에 붙어서 살아야만 하는 절박한 사회구조와 가까운 사람의 청탁을 들어 주지않았을 때의 인간적인 비판을 받아야 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일 것이다. 분경금지법이잘 시행되었던 조선시대에도 부정과 부패는 여전히 있었지만, 부정적인 방문과 만남이라는 근본부터 철저히 관리하였던 행위는 현대의 우리들도 본 받을 만한 일이라 생각 되어진다. 그러나 제도가 아무리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지키는사람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청백리양진을 통해서 새삼 깨닫는다.

 후한서(後漢書)에 기록된 청백리 양진은 ‘자신에게 관리 추천의 은혜를 입은 왕밀이 한 밤중에 선물을 들고 오지만 나는 너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너를 관리로 천거한 것 뿐인데 너는 나를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하고 선물을 거절한다. 왕밀은 조그마한 저의 감사의 뜻을 표현한 것 뿐입니다.

 밤이 깊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아무도 없다고 말하며 재차 금 10근을 선물로 권한다. 이에 양진이 화를 내면서 이일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너와 내가 아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인가?’라고 꾸짖었다.

 우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회장을 지저분한선물을 주며 의리 없이 살아온 인생이었다 평가하며 손가락질하기에 앞서,우리들도 ‘예의’ 또는 ‘감사’ 라는 명목으로, 청탁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지금부터 받지 않는 것에서부터 분경금지를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싶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는 관세음보살처럼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마음을 가지고 선물을 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나보다 더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없다는 정약용의 수오재기(守吾齋記)를 다시한 번 새겨볼 때이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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