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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이름 경주의 장승배기를 아십니까?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0년 07월 10일(금) 13:28

↑↑ 가장존 공인중개사 사무소 윤해수 대표
ⓒ 황성신문
장승이란 먼저 통나무나 돌기둥으로 만든 한 쌍의 사람이나 신장(神將)이다.

상단에는 얼굴을 그리거나 조각하고, 하단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고 적어서 마을 입구에 세워 두고 있는 것을 사극영화(史劇映畫)나 비디오(video) 등에서 볼 수 있다. 이처럼 장승을 세워 둔 곳을 장승배기라고 하는데 민속촌이나 장승촌 테마공원 등에 가면 구경할 수도 있다.

장승의 종류는 무수히 많으나 대체로 인면형(人面形), 귀면괴수형(鬼面怪獸形), 미륵형(彌勒形), 남근형(男根形), 문무관형(文武官形)으로 나뉜다. 인면형의 경우 남자 장승은 머리에 관()을 쓰고 두 눈을 무섭게 치켜뜨고 귀밑까지 찢어진 입 모양은 위협적인데 덧니와 턱수염은 위엄(威嚴)이 서리기조차 하며 몸은 붉은색으로 칠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자 장승은 관을 쓰지 않으며 예쁘게 연지와 곤지로 화장을 하고 청색으로 단장을 한다. 귀면괴수형은 왕방울만 한 눈과 얼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의 크나큰 주먹코에 멧돼지를 닮은 큰 송곳니를 드러내어 웃는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미륵형은 불교의 미륵부처님 탱화나 조각상과는 다르나 자비스럽고 포근하여 친밀감마저 느끼게 한다.

장승은 5방위나 경계지역의 12곳에 세웠다고 하며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그래서 세우는 위치에 따라 마을 장승과 사찰 장승 그리고 공공 장승과 비보 장승으로 분류하고 있다. 마을 장승은 동네나 고장의 신으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와 벽사(辟邪), 축귀(逐鬼), 방재(防災), 진경(進慶)의 역할을 한다. 사찰 장승은 호법금제(護法禁制)와 절의 경계 표시나 모자라는 것을 도와서 채워준다는 비보(裨補), 그리고 잡귀의 침입을 막는 사찰수호의 기능을 한다. 공공 장승은 이정표 겸 거리 신(路神)으로 성문을 지키기도 하고 길과 바닷길의 안전을 돌본다. 또한, 비보 장승은 풍수지리설과 관련이 있으며 허()한 것을 보()한다는 보허(補虛)와 진압(鎭壓)을 하며 진심으로 소원을 빌면 남자아이를 낳게 해 주거나 코나 눈을 갉아 감초와 함께 삶아서 낙태의 양법(禳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밖에 풍농(豐農), 풍어(豊漁), 소원성취(所願成就) 등의 신앙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옛날 우리나라 대부분 마을에서는 수호신을 모신 상당(上堂)으로 산신당, 서낭당이 있었고 장승은 솟대와 함께 마을 입구에 하당(下堂)으로 모셔져 왔다.

장승의 기원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솟대나 서낭당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고유민속 기원설과 퉁구스 기원설 등의 비교 민속 기원설을 보편적으로 함께 받아들이고 있다.신라와 고려 시대의 문헌에도 있으며 조선전기의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노표(路標)10리나 30리 간격으로 세우도록 법으로 정했다고 하며 성현(成俔)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는 장승을 고을마다 마을의 입구와 들판 등에 설치했다고 하니 16세기 이후에 대단히 보편화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장승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신라 경덕왕 18년인 759년 전남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碑) 비명의 장생표주이며 고려 의종 2(1085)의 경남 양산 통도사국장생석표(通度寺國長生石標)가 보물 제74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중요민속자료로는 제7호로 지정된 경남 충무시 문화동 벅수를 비롯한 순창 남계리 석장승(102) 등 많은 장승이 지정 보존되고 있다.

1999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조사한 장승의 유적지는 540여 곳이었으나 이 중에는 현재 대부분이 파괴되거나 소실(消失)된 상태이다. 그런데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엄미 2리는 2년마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장승을 만들어 세우고 장승제를 정성으로 지낸다고 한다. 코로나19(Coronavirus disease 2019)로 온 나라가 난리(亂離)인 이때 역질(疫疾)을 막고 잡귀를 물리치게 해달라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장승에게 치성(致誠)을 드리면 국민의 삶이 평안해질 수 있을까?

전북 순창군 복흥면 서마리 추령마을은 1995년부터 전국 최초로 토속문화의 특성을 살린 장승촌을 만들어 매년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한 달에 걸쳐 장승 축제를 개최한다고 한다. 장승 만들기 대회를 하여 우수한 장승을 골라 세우고 제()를 지내는데 고유(固有)의 장승이 새로운 아이디어(idea)로 만든 신식 장승과 외국 장승들 그리고 현시대를 풍자하는 익살스러운 장승들과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이채롭고 재미도 있어서 관광객 유치에도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고 한다.

경주에도 장승은 식당이나 찻집 등의 입구에 간혹 만들어 세워 두고는 있으나 옛날에 만들어 놓은 흔적은 소멸하고 없다. 그래서 우리의 뇌리에서 서서히 지워져 가고 있다. 그러나 장승배기에 관한 이야기나 내용은 문헌이나 구전(口傳)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이에, 보우 문화재단 고 김재식 대표께서 연인원 500명을 동원하여 8년 동안을 경주의 고을마다 뒤지며 연로(年老)하신 분들과 식견(識見)이 있는 분들을 만나 뜻을 함께하여 문헌과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역사나 설화 등 경주에 대한 옛 자료를 찾아 정리한 후 19918경주 풍물 지리지를 발행하였다. 고적과 사적은 물론이며 잊혀져 가는 지명과 설화, 마을의 유래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장승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경주시 강변로 206(노서동) 웨딩 파티엘 일대에 장승이 있었는데 조선 시대에는 경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이 서천을 건너 충효 쪽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서천을 건너는 곳에 장승을 세워 이정표로 하고 경주성을 오가는 이들을 맞이하고 보내었는데 19599월 사라호 태풍으로 장승은 떠내려가고 지금은 흔적도 없다. 이 장승이 서 있던 마을을 장승배기 또는 장승부락이라고 했다고 하며 건천읍 용명리 밀구 서남쪽의 마을 입구에도 돌로 만든 장승이 있었다고 한다.

감포항에서 대안 쪽으로 가는 좌우에 있는 능선이 말의 발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말밧등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있는 북쪽의 골짜기를 장싱이골 이라고 하며 강동면 부조리 서남쪽의 골짜기 어귀와 천북면 화산리 삼거리의 산 골짜기에도 옛날 장승이 박혀 있었다. 또한, 도지동 뒷산에서 시작하여 동방의 여수 거랑과 합류하여 남천으로 흐르는 내를 장싱이 거랑이라고 하는데 어느 곳인지는 모르나 냇가에 장승이 서 있었다고 전한다. 이외에도, 시동과 시래동 사이에 걸쳐 있는 들과 평동 수남마을 앞의 구음(龜音)(또는 굼뜰)에 풍농을 기원하는 장승이 서 있었고 건천읍 방내리에는 신라 시대 때 부처님께 공양을 많이 바치던 곳이라고 하여 고양태라고 했는데 그 동쪽에 장심 저수지가 있다. 장시못, 장승못, 장생제(長牲提)라고도 하며 그 아래가 장승미들이다. 안강읍 옥산리 삼거리 서남쪽과 하곡리의 주막각단 남쪽의 들에도 장승배기들이 있었다. 외동읍 죽동리 신원마을 남쪽의 들 가운데에는 장승배기 논도 있었다고 하나 어느 필지인지 누구의 소유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양북면 봉길리 동북쪽 바다의 바위에 장승이 세워져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경주에서는 유일하게 바다에 세운 것으로 풍랑을 막고 풍어를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다른 지방에서는 장승을 이용하여 민속 테마 마을과 장승공원을 만들고 축제까지 개최하는 등 관광객 유치에 혈안(血眼)이 되어 있다. 그러나 경주에는 이렇게 많은 장승배기에 관한 이야기와 고증(考證)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주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문화유산이 너무 많아서일까? 너무 소홀하게 생각하며 다루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황실이나 지배 계급의 문화에 식상한 요즘 세대에 있어서 역사의 뒤안길마다 일반 서민들의 삶 속에 희비애환(喜悲哀歡)을 함께하며 어우러져서 승화된 민속문화가 깃든 장승배기야말로 황리단길처럼 서민관광객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볼거리, 즐길 거리로 인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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