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4-03-29 오후 04:34:17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독자기고
전체기사
뉴스 > 독자기고
마석산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이영백 수필가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1년 04월 30일(금) 14:30

↑↑ 마석산
ⓒ 황성신문

↑↑ 기암
ⓒ 황성신문

ⓒ 황성신문
마석산(磨石山, 531m)을 고향에서는 뺏돌산이라 불렀다. 뺏돌은 마석(磨石), 석필(石筆), 혹 우리말로 돌초라고도 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 돌초로 교실 마룻바닥을 문질러댔다. 그리고 마른 걸레로 닦으면 반들반들 윤이 나는데 사용했다. 혹은 기암 때문에 맷돌산이라고도 했다.

어렸을 때 나는 마치 마석산을 미국 소설가 호손(18041864)큰 바위 얼굴처럼 숭배했다. 자고 일어나서 먼저 자연으로 흐르는 도랑물 퍼서 세수했다. 고개 들고 서편 바라보며 하루를 열어 가는데 제일 먼저 보이는 산이 마석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석산을 처음 등산한 시기는 결혼하고 난 후 종반 간에 모임을 만들었다. 그 해 4월 모임에 종반들이 부부와 함께 등산하기를 요청해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는 길을 잘 몰라 그저 산꼭대기로 정해 치달아 올랐다. 매우 힘이 들었다. 겨우 7부 능선에서 가닥을 잡아 기암(奇巖)있는 곳에 올랐다. 기암에 도착한 사촌누나들은 손뼉 치며 유행가를 부르니 덩달아 친누나들도 화답하듯 따라 노래했다. 형님들은 왠지 쑥스러웠던지 그저 멍하니 듣고 관전만 하고 있었다. 참 놀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불국사기차역에 네 칸짜리 전동차 지나갔다.

기암 밑에 고사리가 있다는 것을 어찌 알고 둘째 사촌누나가 치마 걷어 올리고 치마폭에다 고사리를 한 아름이나 꺾어 왔다. 마석산 기암 밑에 고사리가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고사리는 누구나 보는 즉시 귀하게 여겨 꺾으려고 애썼다. 자연이 그렇게 보이는 대로 꺾어댔던 것이다.

마석산 기암은 올라가면서도 기준처럼 늘 보였다. 마치 치술령의 망부석(望夫石)같이 생겼다. 8m 높이로 가운데가 떡 벌어지고 양편으로 돌기둥같이 서 있다. 셋째형은 바위 뒤로 비집고 붙잡아 올라서서 멀리 울산공단을 바라다보았다.

동상아! 이리 올라 와 봐라! 여기서 정말 울산이 다 보이네.”

덩달아 바위 뒤로 따라 올라갔지만 소심(小心)해 바위를 오르지 못했다. 바위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넷째 형이 나를 놀려댔다. 비지땀을 한참 흘리면서도 끝내 바위 꼭대기로 올라가지 못하고 어찌어찌해 그만 내려오고 말았다. 참 나도 강단이 그렇게도 없었으니 놀림 당해도 싸다.

그 옛날 기암을 오르지 못한데 대한 복수심(?)에서 마석산을 등산가기로 했다. 대구에서 모임을 만들었다. 네 사람이었다. G교사, K주사, H사장 그리고 나 이렇게 마음이 동해 마석산 등산을 했다.

대구에서 승용차로 갔다. 경부고속도로를 통과해 불국사 쪽으로 내달았다. 불국사기차역에 도착 전 전방에서 우회전 동해남부선 철길을 지났다. 아래편에 내가 유치한 경주여자정보고등학교 앞을 지났다. 샛들 영명사 조금 더 지나 공터에 차를 세웠다. 조금씩, 조금씩 마석산을 정복해 올랐다.

조금 오르니 마석산 정상이 보였다. 등산로 곁에는 책상바위로부터 동물모양의 바위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조금 전부터 기암이 보이는데도 좀처럼 거리가 가까워지지를 않았다. 동행인 K주사는 우리보다 연배이신대도 고사리가 어찌 그리 눈에 잘 띄는지 몰랐다. 벌써 한 움큼의 고사리를 손에 쥐고 있었다. K주사는 나이 차가 심한 나에게도 자랑삼아 고사리를 꺾었다고 자랑했다. 고사리는 줄기가 길어서 학교 운동장에 세워 둔 국기게양대라 하면서까지 약을 올렸다.

동행한 G교사는 덩치가 나의 배요, 몸무게도 대략 배가 됐다. 체육인이라서 그런지 숨을 헐떡이면서도 잘도 따라 올라갔다. K주사 다음으로 고사리를 잘도 채취했다. H사장과 나는 고사리 찾는다고 눈을 닦고 보아도 발견하지 못하는 팔푼이이었다. H사장은 바닷가 출신이고, 나는 농촌출신인데도 어찌 둘 다 그렇게도 고사리 군락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숨만 헐떡이며 자꾸 쉬는 장소만 물색하고 말았다. 굼벵이도 꿈틀거리는 재주가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그렇게 531m 마석산 정상에 올랐다. 젊을 때 겁이 나서 못 오른 기암의 꼭대기에도 올라갔다.

아니 옛날 못 오른 기암에 올라서고 보니 만감이 교차하구나. 저게 울산공단이었구나! 아이고, 벌써 이래 발전되어 있네. 인자 울산광역시다.”

옛날에 와 봤을 것 아이가? 오늘 처음 올라와 보는 소리처럼 말 하노?”

차마 그 젊은 나이에 정말 소심해 겁나 못 올라보았다는 것을 이실직고할 수가 없었다. 그저 대답을 회피하고 모른 척할 뿐이었다. 양심이 부끄러웠다. 젊은 날이 너무 부끄러워 입도 뻥긋 못하다니 쑥스러웠다. 비록 오늘에 와서 기암을 올라가 보았어도 어릴 때 큰 바위 얼굴로 정했음에 조금 덜 미안했다.

마석산에서 저 멀리 남쪽으로 치술령이 보였다. 망부석(望夫石, 신라 충신 박재상의 부인 넋)이 있는 산이었다. 맞은편에는 토함산이 중허리에 불국사를 품고 있었다. 왼쪽에 개남산, 오른 쪽에 밀개산, 가운데가 동해남부선 불국사기차역, 또 물빛이 반짝이는 영못影池이 보였다. 마석산에 올라 한 눈에 다 내려다보였다. 내가 높이 올라보니 마치 불국사 이 고장에서 장기판 두듯 하다.

마석산 고사리 꺾으러 자주 들렀다. 계절을 잘못 맞추다가 여러 번 다니니 시기조절을 하게 됐다. 한 번 등산으로 고사리를 제법 꺾어오곤 내자로부터 칭찬(?) 들었다. 마석산 고사리는 울산시민 등산족의 입소문이 나고부터는 고사리 채취를 하러가도 별로 소득이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런 후 뜸해 지기 시작했다.

정상에 있는 헬기장 들렀다가 기암에 올라 두 팔 벌리고 소원을 빌었다. 어린 날 섣달 그믐날 밤에 동대봉산 호랑이와 마석산 호랑이가 서로 이사하던 날 호랑이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하였다.

아버지, 저 불이 무슨 불이에요?”

오늘 섣달 그믐날 밤이라서 영물이 이사하는 날이지. 쓸데없이 바깥에 나다니지 마라. 호식(虎食)당한다.”

.”라고 짧게 대답하고 무서워 마석산만 바라보다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아버지의 말씀이 불현듯 다시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분명히 마석산은 오랜 나의 큰 바위 얼굴역할을 했는데 늦게나마 찾아왔다.

황성신문 기자  
- Copyrights ⓒ황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경주시마동(馬洞)에링컨(Lincoln)대통령처럼노비(奴婢)를..
경주시마동(馬洞)에링컨(Lincoln)대통령처럼노비(奴婢)를..
천북면, 봄맞이 꽃길 조성..
경주시, 수소전기차 54대 보조금 지원..
황금대교 25일 0시 우선 개통..
이승환 지지자들 김일윤 지지 선언..
김일윤 무소속 후보 본 후보 등록..
경주시 내년 국비 9465억 원 목표..
경북도, 초등맘 탄력 출근 기업 지원한다..
‘경주시민 자전거보험’ 4년 간 시민 880명 혜택..
최신뉴스
경주시·경북도, 외교장관 만나 APEC 경주유치 당위성 ..  
김석기 후보 출정식···공식 선거 돌입..  
무소속 김일윤 후보 선거출정식 가져..  
경주시-우즈벡 사마르칸트 경제협력 간담회..  
‘동남권 해오름동맹 상생협의회’ 부단체장 간담회 개최..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유치 기획보도..  
경주시, 올해 노후경유차 283대 배출가스 저감장치 부착..  
경주시의회, 2023 회계연도 결산 검사위원 위촉..  
경주시, 2년 연속 청렴 평가‘최우수기관’선정..  
외동·외동2일반산업단지, 노후공장·거리 환경개선..  
대릉원 돌담길 ‘차 없는 거리’로 꽃캉스 분위기..  
경주시, 지역 내 사회적경제기업 돕는다..  
경주시 ‘경주천년한우’ 고품질 인증..  
경주 황금대교 완전 개통..  
농업인 안전과 농작물 피해 경주시가 책임진다..  

인사말 윤리강령 윤리실천요강 편집규약 광고문의 제휴문의 개인정보취급방침 찾아오시는 길 청소년보호정책 구독신청 기사제보
상호: 황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505-81-77342/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용황로 9길 11-6 (4층) / 발행인: 최남억 / 편집인: 최남억
mail: tel2200@naver.com / Tel: 054-624-2200 / Fax : 054-624-0624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43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남억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