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먼 옛날 만물이 풍요로워 곡물과 과일이 넘쳐나고 온갖 재보가 가득해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나라가 있었다. 상업 역시 번성해 부족한 물건이라고는 없었지만 국왕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대신에게 말했다.
“유능한 사신을 뽑아 외국에 보내 우리나라에 없는 물건을 사오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소?”
이렇게 해서 사신 한 사람이 외국으로 떠났다. 외국에 도착한 사신은 시장에 나가보았으나 살 만한 물건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모두 자기 나라에도 있는 물건들이었다.
실망한 사신은 자기 나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다가 시장 구석에 한 노인이 빈손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상하게 여긴 사신이 그 노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물건도 팔지 않으면서, 빈손으로 이곳에 앉아 무얼 하고 있는 겁니까?”
노인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장사를 하고 있는 중이오.”
더욱 이상한 생각이 든 사신은 노인의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았으나 팔 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으로 장사를 하는 겁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나는 이곳에서 지혜를 팔고 있다네.”
“노인장이 팔고 있다는 지혜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또 값은 얼마입니까?” 노인은 사신을 한번 훑어보고선 태연하게 말했다.
“나의 지혜는 오백 냥이나 한다오. 먼저 돈을 내면 지혜를 알려주겠네.”
사신은 지혜를 팔다니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나라 시장에서는 본 일이 없으므로 사 가지고 돌아가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한 사신은 오백 냥을 냈다. 곧 그 노인은 지혜를 알려주었다.
사신은 오백 냥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거래는 이루어진 것이라 그 말을 깊이 새기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본국으로 돌아온 사신은 자기 집에 들렀다.
그때는 한밤중이라 모든 식구들이 잠들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달빛을 빌어 얼핏 보니 아내의 침실 앞에 신발이 네 짝 놓여 있었다. 사신은 자기가 없는 틈을 타서 아내가 간통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사실 아내는 간통을 한 게 아니라 그날 몸이 아파 어머니가 곁에서 간호를 해 주다가 함께 잠든 것이었다. 침상 앞의 신발은 바로 어머니의 것이었다.
이 사정을 알 리 없는 사신은 분기탱천했으나 문득 외국에서 만난 노인이 일러준 지혜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 말을 곱씹으며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그때 인기척을 느낀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중얼거렸다. “내 아들이 돌아온 게 아닐까?”
그때서야 사신은 자기 아내와 어머니가 함께 잠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방 밖으로 뛰어나가 펄펄 뛰며 외쳤다. “정말 싸다! 정말 싸구나!”
의아하게 생각한 어머니가 물었다. “외국에 무언가 사러 간다더니, 싸다고 하는 말은 또 무슨 말이냐?”
사신은 다시 방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기뻐하며 말했다. “내 아내와 어머니는 만 냥을 준다 해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데, 단돈 오백 냥 어치 지혜의 말로 두 분을 지키게 되었으니 이 어찌 싼 게 아니란 말입니까?”
노인이 판 지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일을 당하면 여러 번 생각하고, 되도록 화를 내지 말라. 오늘 비록 쓰지 않는다고 해도 유용할 때가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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