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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오가는길,실크로드 - (3) 상주.문경.충주
문화의 소통로 '계립령.죽령 고개'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14년 02월 24일(월)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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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립령과 죽령은 한반도 남단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소백산맥의 고갯길이다. 경주에서 출발한 한반도 내의 실크로드는 영천에서 두 개의 간선으로 갈라진다.
죽령로는 영천에서 안동으로 연결된 후 영주를 거쳐 죽령을 넘어간다. 이후 이 길은 단양~제천~원주를 거쳐 춘천방향으로 북상한다.
계립령로는 경주~영천에서 서쪽에 위치한 대구방향으로 서진한 후 대구에서 선산~상주~문경~계립령으로 연결된다.
계립령을 넘은 후에는 충주~이천~광주~서울로 연결되며, 서울에서는 양주를 거쳐 임진강 방향으로 진출한 후 한반도 북부로 연장된다.
계립령은 신라에 의해 156년에 개척된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신라는 이 길을 한강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군사도로의 사용목적으로 개통했다.
이것은 교통로에 대한 국가적 인식이 반영된 최초의 기록이다. 이를 통해 신라는 서기 2세기경부터 계립령로를 이용해 북방과 교류를 진행했음을 알 수 있다.
계립령에는 11세기말경에 조성된 ‘충주미륵사지’가 남아있어, 고려시대까지 계립령이 주요 교통도로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 | ↑↑ 충주 미륵리사지는 11세기 말경에 조성된 사찰 터다. 고려 전기에 이곳에 대규모의 사찰이 새롭게 조성되었다는 점은 계립령로가 고려시대에도 매우 중요한 교통로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 ⓒ 황성신문 | |
계립령이 공식 기록에 나오는 최초의 교역로라 한다면, 죽령은 고구려군의 남진과 관련이 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399년 가야와 왜 연합군의 침입을 받은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5만 명의 고구려 군을 파견했다.
이 시기에 신라는 육로를 거쳐 경주까지 연결된 실크로드를 통해서 서역의 많은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551년경이 되면 신라는 고구려가 지배했던 죽령 북쪽의 한강 상류 유역으로 진출하게 된다.
죽령로는 소백산맥을 넘은 신라 세력이 한강 하류 지역으로 진출하는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원산 방면의 동해안 쪽으로 진출하는 가선으로 사용됐다.
<자료제공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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