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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가 바른 사람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14년 04월 21일(월)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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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황성신문 | 나는 농사일 밖에 모르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흙을 사랑하며 땀 흘리고 자기 손으로 벌어서 먹고 사는 농부였던 나의 아버지는 어느 사람을 칭찬할 때, ‘그 사람은 경우가 바른 사람이다’고 말씀 하셨다.
어려서부터 들어온 ‘경우 바른 사람’,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이었다. 경우가 바르다는 것은 무엇일까.
2000년도에 우리 독서계를 휩쓴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의 ‘정의가 무엇인가(Justice)’가 생각난다. 선과 선이 충돌하고, 이익과 이익이 부딪힐 때,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정의인가. 우리들은 보통 작은 선이나 이익을 희생하고 큰 선이나 이익을 선택하는 것이 정의라고 알고 있다.
이것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아담 스미스의 공리주의(功利主義)다. 그러나 정의란 공리주의인가, 자유주의인가, 공동체의 미덕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복지주의인가 정의(正義)의 개념을 정의(定義)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구체적인 삶 속에서 선택되어져야 하는데, 그 기준과 해석은 개인마다, 사회와 국가마다.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가치의 충돌이 일어나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는 몇 천 년 전에도 있었고, 몇 백 년 전에도 있었다. 동양에도 있었고 서양에도 있었다.
정치철학적인 이 책에서 동서양의 모든 사상과 철학을 인용하면서 현실 속의 사례(Case)에 해법을 제시하고자 했으나, 정의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없다. 정의에 대한 정의(定義)는 천차만별한 현실 속의 사건에 있고, 그 해답을 찾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는 암시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경우가 바르다’는 것은 마이클 샌델 교수가 말한 ‘현실 속의 구체적 정의’라고 생각 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즉 상황에 맞는 판단과 말과 행동이 ‘경우가 바른 것’이다.
이렇게 경우에 맞는 적절한 생각과 말,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평생을 두고 배우고 연구하고 실천해도 완성할 수 없는 난제(難題)다.
지식과 지혜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평생 배우고 실행해도 부족하다. 어떤 사람은 아예 배우는 것을 단념하고 포기하고 살아간다. 배우려면 자기의 무지와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손하고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고 자기 계발과 자기완성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결단하는 용기를 가져야 된다. 지식과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생명인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경우 바른 사람이 되라는 부친의 가르침을 어려서부터 듣고 자라온 나는 갈수록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한없이 넓은 우리의 삶에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고, 날마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경우 바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6·4지방선거가 코앞이라 한 가지 바람을 사족으로 덧붙이고자 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정말 ‘경우가 바른 사람’을 뽑아야 한다. 일부 후보들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가보면 지역의 저명인사라는 분이 000후보는 ‘경우가 바른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종종 본다. 과연 그럴까. 이번 선거에는 후보들이 내놓는 공약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우가 바른 사람’인지를 검증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종훈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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