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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落選)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14년 06월 30일(월)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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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치룬지 한 달 가까이 된다. 세월호 참사로 선거기간 내내 무거웠던 마음을 위해서 시조 몇 수를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은 듯싶다.
우선 오경화의 이런 시조는 어떨까? ‘꾀꼬리 우는 소리에 낮잠 깨어 일어나 보니/작은아들 글 읽고 며늘아기 베 짜는데 어린 손자는 콧노래 한다/맞추어 지어미 술 거르며/맛보라고 하드라’
꾀꼬리가 아니라 자동차 클랙슨 소리 때문에 낮잠조차도 변변히 들 수 없는 도시인들에겐 부럽기 짝이 없는 전원 교향곡이다.
그런데 좀 이상스러운 것은 대체 이 시조의 작자는 왜 이렇게 한가로운가 하는 의문이다. 이들은 글을 읽고 며느리는 베를 짜고 아내는 술을 거른다. 모두를 바쁘게 일하는데 이 가장은 낮잠만 자고 있는 것이다.
어디 다른 시조 한 수를 읽어 보자. ‘모옥 기나긴 해에 할 일이 아주 없어/포단 낮잠 들어 석양이 지자 깨니/문밖에 뉘 애햄 하며 낚시가자 하나니’ 이것도 또 낮잠 자는 이야기다.
긴긴 여름날 온종일 잠만 자다가 저녁이면 친구와 함께 낚시질을 간다. 당사자만이 아니라 ‘애햄!’ 하며 찾아온 그 친구 역시 할 일 없는 사람이다. 그도 역시 낮잠을 자다가 찾아온 것이 분명하다.
좀 더 다른 시조는 없을까. ‘공정(公廷)에 이(吏)퇴하고 할 일이 아주 없어/편주에 술을 싣고 시중에 찾아가니/호화에 수많은 갈매기는 제 벗인가 하드라’ 이 시조를 읽어보면 알만 하다.
풍류를 즐기는 시조의 은둔거사들은 대개가 다 벼슬길이 막혔거나 권좌를 쫓겨나 낙향한 고급실업자들이었다. ‘공정에 이퇴하고…’를 ‘선거에 낙선하고…’라고 고쳐 본다면 옛시조가 그대로 오늘의 시가 될 것 같다.
6·4지방선거에 낙선한 분들은 전국적으로 2천800여명에 이른다. 그들은 대부분이 한가로운 은자가 되어 낮잠으로 긴 여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할 일 없이 세월을 보내서야 되겠는가? 낙선자들도 새로운 그리고 창조적인 생활을 해야 된다. 그래야만 한국정치도 훨씬 명랑해질 수 있다. 낙선이 되어도 무엇인가 할 일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라야 건강한 정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조이야기가 또 현실을 짚어보는 정치이야기가 되어버렸네…
<이종훈 본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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