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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상의 문화재 산책
굴불사 사면석불 남쪽면(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 보물 제121호)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14년 07월 22일(화)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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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불(四方佛)은 동서남북의 사방정토를 주재하는 부처를 정해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부터 만들어 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유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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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방위마다 어떤 부처를 모시는가는 불교경전마다 다르게 나타나지만 대체로 동쪽에 약사불, 남쪽에 석가불, 서쪽에 아미타불, 북쪽에 미륵불을 조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주 도심의 북쪽에 위치한 소금강산(小金剛山) 자락에 굴불사 터가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경덕왕(742~765)이 백율사(柏栗寺)로 놀러가던 중 금강산 밑에 이르렀을 때 땅속에서 염불소리가 나 그곳을 파니 큰 바위가 나타났다고 한다.
왕은 그 바위 사면에 모두 부처를 새겼고, 그 자리에 절을 지어 굴불사(掘佛寺)라 했는데 지금은 잘못 전하여 굴석사(掘石寺)라 한다고 기록돼 있다.
굴불사의 사면석불(四面石佛)에 대한 조사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조사된 이례 1985년 고적발굴조사단(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해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되어져 오고 있다.
발굴조사 당시에는 금당지와 함께 대정(大正) 23년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청동 반자(鈑子:불교공예품의 일종으로 소리를 내어 대중들을 모이는 역할을 하는 청동북)와 소형의 종(鐘)이 출토되기도 했다.
보물 제121호로 지정된 사면석불의 남쪽면에는 어린아이 체구정도 되는 2구(軀)의 마애불상이 조각돼 있다. 그러나 원래는 삼존불이 새겨져 있었던 것으로, 선학들(1960년께 문교부 국보보존위원회위원이었던 전형필, 황수영, 이홍직)이 굴불사 사면석불을 답사하고 관련 자료를 찾아본 결과 우측(사진에서는 좌측)의 보살상과 가운데 본존불의 머리부분이 도난당했음을 밝혀냈다.
이러한 유적의 파괴가 누구에 의해 어떠한 과정으로 이뤄진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와 같은 파괴는 개인의 사적인 욕심으로 인해 문화유산이 파괴된 극단적 경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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