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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 있어 서 죽고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죽은 자를 위한 장례 의식이야말로 그 사 회의 가장 보수적인 측면을 반영하는 것 으로 지역성, 풍토 성, 내세관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구조 등 문화 전반을 반영하고 있다. 화장법(火葬法)은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 이미 고대국가에서 실행한 장례 법 가운데 하나로 자리하고 있었지만, 불교 공인 및 확산을 바탕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화장(火葬)은 시신을 불태운 후 뼈의 처리방 법에 따라서 산골(散骨)과 장골(藏骨)로 구분된 다. 이중 ‘산골’은 뼈를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 처 리함으로 문헌기록에만 존재할 뿐 전해오는 유 적과 유물이 없다. 그러나 ‘장골’은 화장한 뼈를 모아 2차적으로 무덤을 만들기 때문에 현재까지 도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발견되고 있다.
|  | | ↑↑ 뼈 항아리(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교내 출토)
화장한 뼈는 고온에 의하여 압축되어 균열이 가기
때문에 5cm 미만의 크기로 나누어지므로 뼈 항
아리에 담아 보관하거나 별도의 공간에 묻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 뼈를 항아리에 담는 순서는 다
리뼈부터 상반신으로 차례차례 쌓아 올리는 방법
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화장한 인골에서는 DNA
를 측정할 수 없어 친자관계와 유전자 정보 등을
확인하는 연구에서는 한계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 ⓒ 황성신문 | |
필자는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 재직 시 교내 석장동 고분군가운데서 다수의 화장묘 를 조사하였는데, 그중 2개의 화장묘에서 인골 (人骨)이 수습되었다. 두 개체 모두 인골표면이 푸른 회청색을 띠며 파열선이 확인된다는 점에 서 산화염이 아닌 1200℃ 이상의 고온 환원염에 서 화장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현재까지의 연 구결과를 통해 본다면 1200℃ 정도의 온도를 높 일 수 있는 방법은 밀폐된 가마를 이용하는 방 법밖에 없으며, 이를 감안한다면 현재까지 발굴 조사 된 고고학적인 조사 예는 없다고 하더라도, 신라시대에는 분명 화장용 가마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듯 한 때 고도의 기술력으로 한 시대의 장례 법으로 유행하던 화장시설이 오갈 때 없는 혐오시 설로 오인되어 설립할 곳을 잃어가는 현실은 조선 시대 유교적 이념에서 출발한 조금은 삐뚤어진 시 각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같은 시간 속을 살 아가는 인도에서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거리낌 없 이 노천에서 시신을 화장하고 있으며, 그러한 모습 을 일상적인 삶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루는 모습이 일반적인 장례모습이 될 것이라는 생각 은 아파트가 일반적인 거주지로 자리 잡기 전인 30년전 까지만 하더라도 그리 높지 않았다. 이제 는 유교의 이념적 시각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이 란 측면에서 죽음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해 볼 때이다. 더불어 죽은 후 시신의 처리와 제례에 대한 새로운 시대적 접근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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