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 의하면, 경순왕은 신라 56대의 마 지막 왕으로 견훤에 의하여 추대되어 즉위하였 지만 후삼국의 혼란은 수습하지 못하였다. 신라 사방의 토지가 모두 다른 사람의 토지가 됨으로 해서 나라는 약하고 형세는 외롭게 되었다. 경순 왕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라를 안정시킬 수 없 다고 여겨 여러 신하와 더불어 고려 태조에게 항 복하려 하였다.
이 때 맏아들인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말하 길 ‘나라가 존속하고 망함에는 반드시 하늘의 명 (命)이 있습니다. 충성스러운 신하와 의로운 선 비들 그리고 백성의 마음을 한데 모아 스스로 지 키다가 힘이 다한 이후에 그만둘 일이지 어찌 1 천년 사직을 하루아침에 가볍게 남에게 줄 수 있 겠습니까’ 그러자 왕이 말하였다.
‘나라의 외로움과 위태로움이 이와 같으니 더 이상의 형세는 보전할 수 없다. 이미 강해질 수 도 없고 더 약해질 것도 없으니 죄 없는 백성으 로 하여금 간(肝)과 뇌(腦)를 땅에 바르도록 하는 것은 내가 차마 할 수 없는 바이다.’ 왕자는 울면 서 왕에게 하직하고는 곧바로 개골산(皆骨山)에 들어가 바위에 의지하여 집을 삼고 삼베옷을 입 고 풀을 먹으며 살다가 일생을 마쳤다.
경순왕은 935년 11월에 백관을 이끌고 서울에 서 출발하여 태조에게 귀순하였다. 아름다운 수 레와 보배로 장식한 말들은 30여리에 이어져 길 을 꽉 메웠으며 구경하는 사람들은 담을 둘렀다 고 한다. 태조 왕건이 교외에 나가 경순왕을 맞 이하여 위로하고 궁궐 동쪽의 가장 좋은 집 한 채를 내려주었다. 그리고 태조에게는 9명의 공주 가 있었는데 맏딸인 낙랑공주와 성술부인 소생 의 공주 두 사람을 아내로 삼게 하고 정승의 직 위를 주었다. 경순왕 역시 삼촌 억렴의 딸을 태 조에게 아내로 삼게하여 아들을 낳았고, 안종의 아들이 고려의 8대 왕인 현종이 된다. (사)신라문화진흥원 부이사장 김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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