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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신문왕 은 즉위 이듬해 5월 초 하루 해관(海官)으로부 터 ‘동해안에 작은 산이 떠서 감은사(感恩寺)로 향해 오는데 물결을 따 라 왔다 갔다 합니다.’ 라고 보고 받았다.
이를 이상히 여겨 일 관(日官)에게 점을 치게 하였더니 바다의 용이 되신 아버지 문무왕과 김유신 두 성인께서 나라 를 지킬 보물을 주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동해바 다로 가서 대나무를 얻었다.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적병이 물러 가고, 질병이 낫고, 가물 때는 비가오고, 비올 때 는 비가 개고, 바람이 가라앉고, 물결이 평온해져 서 이 피리를 만파식적(萬波息笛: 온갖 파도를 가라앉히는 피리) 이라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는 기록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다.
신문왕은 즉위 년(681) 아버지 문무왕의 장례 기간 중에, 장인 김흠돌(金欽突)이 반란을 일으 킴에 그를 죽였고, 이와 관련하여 왕비 김씨를 궁중에서 출궁시키는 등 개인적으로 매우 불행 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가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삼국사기’에서 찾 아 볼 수 있다.
재위 7년(687) 조상의 묘에 신하를 보내어 제 사를 올리며 ‘요즈음 임금으로서 할 바 도(道)를 잃고 의리가 하늘의 뜻에 어그러졌음인지 별의 형상에 괴변이 나타나고, 해는 빛을 잃고 침침해 지니, 몸이 벌벌 떨려 마치 깊은 못과 골짜기에 떨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미미한 정성을 밝게 살피 시고 하찮은 이 몸을 불쌍히 여기시어 사철 기후 를 순조롭게 하시고, 오사(五事: 자신을 잘 다스 리고, 여자를 잘 다스리며, 신하를 바로잡고, 功과 賞의 실질을 얻고, 관리에게 후덕하여 그들을 선량하게 하는 것)의 징후에 허물이 없게 하여주 십시오. 곡식이 잘 되고 질병을 없게 하며, 입고 먹는 것이 넉넉하고 예의를 갖추며, 안팎이 편안 하고 도적이 사라지며, 넉넉한 것을 자손들에게 남겨 길이 많은 복을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라 고 기원하였다.
현재의 우리에게는 국외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 어려운 일들이 줄줄이 겹쳐 서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남성과 여성, 상사와 부하, 노동자와 사업주, 부자와 빈자, 여당과 야 당, 남측과 북측 등으로 대립되어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문제가 점점 증가하는 것은 양보 보다는 주장, 화합 보다는 반목에 더 많은 비중 을 두기 때문일 것이다.
지도자는 험난한 길을 헤쳐감에 있어 무엇보 다도 국민들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하 며,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하더라도 자식에게 항 상 져주는 부모님의 마음을 가진다면 좋은 지도 자가 될 것이다. 문무왕과 김유신이 죽은 후에도 나라를 위해 마음을 합하여 만파식적을 만들게 하여 나라에 평안함을 주었다.
우리도 이러한 마음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주 장과 대립보다, 양보와 화합, 그리고 배려에 무게 를 둔다면 후손들이 현재의 우리를 국민들과 지 도자들이 같은 마음으로 두 손을 마주친 新만파 식적 시대로 부를 것이라 생각된다. |  | | ⓒ 황성신문 | |
(사)신라문화진흥원 부이사장 김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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