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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다’라는 것은?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15년 06월 08일(월)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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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동안 ‘단순하다’는 것은 높게 평가되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왜 그렇게 단순하냐” 라고 타박하는 말에도, 어딘가 꽉 막힌 사람을 보고 ‘단무지’라고 놀리는 말에도 단순하다는 것은 어리석거나 멍청하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은 복잡함 속에서 뭔가 더 해답이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온갖 도식과 복잡한 표가 가득한 기획안, 언젠가는 쓸 것 같아 버리지 못하고 잔뜩 쌓아놓고 사는 복잡한 집, 옷깃만 스친 인연으로 저장해두고 있는 전화번호부 속 무의미한 이름들… 그야말로 복잡함의 홍수 속에서 현대인들은 질식되기 일보직전입니다. 그 반대급부로 최근 들어 ‘단순함의 미학’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디자인도 단순할수록 잘 팔리고, 집도 심플한 북유럽 스타일 인테리어가 인기입니다. 화려한 결혼식 대신 꼭 필요한 사람만 참석하는 작은 결혼식도 조용히 번지고 있습니다. 복잡한 도시의 삶에 치여 시골에서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찾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재계에서의 화두도 ‘단순함’입니다. 지금까지 무조건 더하는 덧셈의 경영을 했다면, 이제는 비싼 돈을 들여 컨설팅을 받으면서까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결정’하는 ‘뺄셈 경영’ 즉 ‘단순 경영’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하네요. 이처럼 ‘단순함’의 가치가 오늘날 다시 재조명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단순하다는 것은 곧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필요없는 군더더기들을 버려야 꼭 필요한 알맹이가 남는 법입니다. 최근 ‘단(單)’이란 책을 낸 조선일보 위클리 비즈의 이지훈 기자는 “중요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버려야 핵심에 집중할 수 있다”며 “단(單)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보(獨步)의 자리에 이르게 한다”고 강조합니다. 장식과 불필요한 것들을 버려야 가장 본질적인 공간이 탄생한다며 근대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르 로에 외쳤던 ‘less is more’는 지금도 디자인계에서 숭앙되고 있는 모토이기도 합니다. 둘째, 단순할수록 더 풍요로워지기 때문입니다. 한번쯤은 충동적으로 물건을 산 뒤에 마음이 더 헛헛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경제력으로는 밑에서 세는 것이 더 빠른 네팔, 방글라데시, 부탄과 같은 나라들의 행복지수는 잘 사는 나라에 비해서 월등히 높은 편입니다. 자연의 순리대로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반면, 물질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은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살지만 정작 마음은 깡통계좌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 단순은 창조를 잉태하는 모체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창조를 위한 일종의 준비작업인 것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날그날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뉴스들을 따라잡지 않으면 불안에 시달리는 정보 중독자(info mania)로 살다가 그것과 단절되는 순간 정말로 중요한 자신의 생각이 고이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스치고 지나갔던 정보들이 고요하고 단순해지는 바로 그 순간에 서로 연결되되고 나만의 생각이 더해지면서 창조가 일어나게 됩니다. 힐리언스에 오신 많은 분들로부터 종종 듣는 얘기도 그렇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복잡함을 벗어나 이곳에 와서 단순하게 살다가, 새로운 영감을 받고 돌아간다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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