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황성신문 |
인간은 태어나서 죽 음을 맞이할 때까지 각 종의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병은 육 체적 정신적 고통, 불쾌 감과 함께 정상적인 생 활을 영위할 수 없게 함 으로써 당사자는 물론 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까지 고통을 주며, 나아가 사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질병은 자신의 실수나 타인에 의해, 또는 자연재해에 의해 얻어지기도 한다.
|  | | ↑↑ 박쥐나무는 박쥐의 날개 모습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며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
다. 박쥐는 동양에서는 복을 상징 하지만 서양에서
는 기회주의자를 상징한다. 메르스의 감염경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이 박쥐 코로나바이러스와 유
사해 박쥐를 원인 동물로 추정하여, 메르스 바이
러스는 박쥐에서 낙타를 매개로 사람에게 전파된
것은 아닐까 추측하기도 한다. | ⓒ 황성신문 | |
‘삼국사기’에는 여러 역질(疫疾)이 기록되어 있다. 역질은 집단적으로 발생하여 넖은 지역으 로 전파되는 전염병으로, 흔히 유행병이라 부르 기도 한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제23대 안원 왕 5년(536) ‘역질이 크게 돌았다.’ 제26대 영양 왕 9년(598) ‘6월에 장마를 만나 군량 수송이 계 속되지 못하여 군인들의 식료가 끊어지고 또 질 역에 걸렸다.’ 신라 제33대 성덕왕 13년(714) ‘여 름에 가뭄이 있고, 질역에 걸리는 자가 많았다.’ 는 다수의 기록이 있다.
전염병은 그 병을 일으키는 감염원에 따라 서 앤스로포노세스(anthroponoses), 주노세스 (zoonoses), 사프노세스(sapronoses)로 나눈다. 앤스로포노세스는 사람이 감염원인 경우로 사람 에서 사람으로의 전파가 전형적이다. 주노세스 는 동물이 감염원인 경우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의 전파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사프로노세스는 물건이나 무생물 환경이 감염원인 경우로 사람 에서 사람으로의 전파는 예외적으로 드문 경우 이다. 그런데 최근에 새로 출현한 전염병들은 대 개 동물에 있던 병원체가 사람에게 전파됨으로 써 병을 일으키는 주노세스에 속하는 것들이며, 에이즈, 조류독감, 광우병, 사스, 메르스 등이 모 두 여기에 속한다.
새로 출현한 주노세스는 사람에게 매우 심각 한 질환을 일으킨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설명 하자면, 사람에게 오랜 세월동안 적응하여 진화 한 미생물은 숙주로부터 이득을 얻으려면 자신 이 기생한 숙주를 죽이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새로 출현한 주노세스를 일으키는 병원체는 사 람을 몰살 시키더라도 자신은 동물의 체내에서 생존 할 수 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 에 겁 없이 활개를 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직까지 에이즈에 걸렸다가 자연 치유된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이것은 원래 원 숭이에게 무해한 에이즈 바이러스가 사람을 모 두 희생시키더라도 자신은 원숭이에 기생하면 서 생존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사 람은 우연히 걸려든 죄 없는 희생자(innocent bystander)인 셈이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도 원래 날짐승의 창자에 사는 무해한 바이러스이지만 사람에게 건너오 면 치명적인 병을 일으킨다.
왜 새로운 전염병이 출현하고 과거의 전염병 이 다시 나타나는 데도 과학으로 막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미생물의 끈질긴 생명력과 생태환 경의 변화 때문이다. 미생물은 지구에 가장 먼저 출현한 생명체이며, 36억 년 전에 지구에 출현하 여 지구에서 벌어진 엄청난 환경변화를 견디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환경에 대한 미생물의 적응력이 이렇게 뛰어 난 까닭은 미생물의 유전자구조가 단순하며, 자 기에게 필요한 유전자를 쉽게 획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전체 유전자(게놈)는 30억 쌍 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지만, 에이즈 바이러스는 1만 개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새로운 유전자를 받아들이거나,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일이 그 만큼 쉽고 환경에 적응하기도 쉽다.
또 하나의 원인인 생태환경의 변화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경제개발이라는 생각이 든다. 토지 를 개간하여 사용함으로써 과거에는 노출되지 않 았던 미생물에 노출될 기회도 증가하게 되었고, 초목을 먹이던 가축에게 고기와 뼈를 갈아 만든 사료를 먹임으로써 소위 ‘광우병’ 을 발생하게 만 들었다. 과거에는 자급자족하던 식품을 대량생산 하여, 대량 소비함으로써 식품 매개 전염병이 전 국적으로 또는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것과 같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대의 전염병이 현대와 미래에도 계속하여 출현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전염병은 문화교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 는데 열대지방의 풍토병인 말라리아는 모기에 의해 전염되어 오리엔트와의 교류로 고대 그리 스에 전해졌고, 이탈리아 로마에 전파되어 그리 스 로마 문명을 쇠퇴하게 만든 원인으로 추정하 기도 한다. 민족의 이동과 문명의 교류에 따라 전염병도 함께 따라 다닌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제화 다문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역 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안전한 사회기 반과 공중보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여 병원체 의 전파 연결고리를 잘 차단하여야 한다. 전염병 은 병원체 전파연결고리가 잘 갖추어 지기만 하 면 인구집단 내에서 널리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 다. 중세의 흑사병, 산업혁명기의 결핵, 르네상스 기의 매독, 20세기의 에이즈와 사스, 조류독감의 유행은 모두 그 시대의 환경이 이들 병원체가 크 게 확산될 수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 기회에 전염병의 출현을 조기에 발 견할 수 있는 감시 체계와 전염병 확산을 관리할 수 있는 공중보건 시스템의 철저한 정비, 그리고 전염병에 대한 정보교육을 정부에 다시 요구해 야 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전염병을 대하는 성 숙한 시민의식과 환자로서의 도덕적 의무를 이 행하는 것, 이 역시 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전염 병은 개인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다. 정부와 보 건기관을 믿고 따르는 것이 하루 빨리 전염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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