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문화재청
조공(朝貢)은 한국역사의 어두운 면으로 사대주의의 변질된 형태라 하여, 흔히 치욕의 역사로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가 행하였던 조공이 민족의 자존심과 긍지를 말살시킨, 사대적 외교로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조공은 그 자체가 사대관계를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중국과 밀착되었음은 사실이었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접해 있는 우리나라로서 문화적, 정치적 강대국인 중국에 대해서는 언제나 열세와 나약성을 면치 못하였기 때문에 그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슬픈 생존 욕구와 긍정적인 자아인식이 요구 되었다. 동양문화의 진원지인 중국은 그 특유의 중화사상(中華思想)에 입각한 덕치(德治)와 왕도사상(王道思想)의 대외적인 표시로서 조공이라는 외교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주변의 여러 나라와 공존하려 했던, 이른바 동양의 고대적인 세계질서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공은 중국과 그 주변 고대국가 간에 존재한 유일한 공적(公的)터널이며, 정치와 문화의 수수(授受)가 이것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볼 때도 조공으로써만 중국 문명과 접할 수 있었으며, 그 속에서만 민족의 국제적인 인식과 자립이 가능했기 때문에 항상 겸허한 대중국 접근이 요구되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공을 현대적 의미의 외교적인 측면에서 또는 근대적 가치관에서 보려고 할 것이 아니라, 고대국가의 사실(史實) 그 자체로 봐야 할 것이다.
우리의 조공은 고대외교의 상징적인 존재이고 단순히 타파되어야 할 굴욕적 표현이 아니며, 그 속에서 면밀하게 추구된 민족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찾아야한다. 비록 조공이라는 관계 속에서 우리의 주체성이 무시되었다 해도, 그것은 고대적 세계에서 볼 수 있었던 그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 속에서 분명히 중국의 체면을 만족시켰으며, 동시에 우리의 주체성과 독자성이 손상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삼국 이래 우리나라의 역대 왕은 왕위가 바뀌거나 중국황제가 바뀌면 중국에 조공을 하여 그 사실을 알리고, 또 중국으로부터 승인을 받게 되어 있었다. 설령 중국황제로부터 왕의 책봉(冊封)이 없었다고 하여 우리나라의 왕이 못되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고려 말의 현상이지만, 우왕(禑王)이 공민왕(恭愍王)의 시호를 요구했을 때, 명나라 태조가 ‘새삼스레 시호를 얻어 가서 중국의 책봉을 역 이용하여 국내문제를 해결하려한다’ 고 거부한 사례를 보면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다. 또한 중국 스스로가 오히려 주변국의 조공이 중국 자체의 손실이라고 한 것을 보면, 조공에는 현실외교의 긍정성이 매우 강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는 9월 3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한다고 한다. 서방국가와 미국의 핵심 동맹국 중에서 중국의 전승절 기념식 초청에 응한 유일한 정상이 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이제 미국과 일본의 입장을 고려한 명분 외교보다 중국과의 실리교류를 선택하였다. 이번 중국방문이 갖는 의미는 전통적으로 북한과 중국의 혈맹관계의 변화를 포함한 동북아 신시대 개막의 ‘이정표’인 동시에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명분과 실리의 외교를 통해 균형관계를 이루고자하는 우리 외교의 자긍심이 느껴지기는 방문이기도하다.
실리의 외교가 높아진다고 하여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위상이나 국민들의 위상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국제사회는 강대국이나 약소국이나 모두 국가의 이익 앞에는 실리외교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외교도 나라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다면 실리외교는 한층 더 높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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