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한중영문 중국판 한국애국가 악보(등록문화재 제576호) 한중영문중국판 애국가는 중국 중
경에서 1945년 11월 12일에 발행된 낱장의 인쇄물이다.??곪1 | ⓒ 황성신문 | |
조공(朝貢)은 한국역 사의 어두운 면으로 사 대주의의 변질된 형태 라 하여, 흔히 치욕의 역사로 인식되어왔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가 행하였던 조공이 민족 의 자존심과 긍지를 말 살시킨, 사대적 외교로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조공은 그 자체가 사대 관계를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중국과 밀착되었 음은 사실이었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접해 있는 우리나라로서 문화적, 정치적 강대국인 중국에 대해서는 언제 나 열세와 나약성을 면치 못하였기 때문에 그 속 에서 어쩔 수 없는 슬픈 생존 욕구와 긍정적인 자아인식이 요구 되었다. 동양문화의 진원지인 중국은 그 특유의 중화사상(中華思想)에 입각한 덕치(德治)와 왕도사상(王道思想)의 대외적인 표 시로서 조공이라는 외교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주변의 여러 나라와 공존하려 했던, 이른바 동양 의 고대적인 세계질서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조공은 중국과 그 주변 고대국가 간에 존재한 유일한 공적(公的)터널이며, 정치와 문화 의 수수(授受)가 이것을 통해서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볼 때도 조공으로써만 중국 문명과 접할 수 있었으며, 그 속에서만 민족의 국 제적인 인식과 자립이 가능했기 때문에 항상 겸허 한 대중국 접근이 요구되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공을 현 대적 의미의 외교적인 측면에서 또는 근대적 가치 관에서 보려고 할 것이 아니라, 고대국가의 사실 (史實) 그 자체로 봐야 할 것이다.
우리의 조공은 고대외교의 상징적인 존재이 고 단순히 타파되어야 할 굴욕적 표현이 아니며, 그 속에서 면밀하게 추구된 민족의 자주성과 독 립성을 찾아야한다. 비록 조공이라는 관계 속에 서 우리의 주체성이 무시되었다 해도, 그것은 고 대적 세계에서 볼 수 있었던 그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 속에서 분명히 중국의 체면을 만족시켰으며, 동 시에 우리의 주체성과 독자성이 손상된 것은 아 니었기 때문이다.
삼국 이래 우리나라의 역대 왕은 왕위가 바뀌 거나 중국황제가 바뀌면 중국에 조공을 하여 그 사실을 알리고, 또 중국으로부터 승인을 받게 되 어 있었다. 설령 중국황제로부터 왕의 책봉(冊封)이 없었다고 하여 우리나라의 왕이 못되는 것 은 아니었다. 또한 고려 말의 현상이지만, 우왕 (禑王)이 공민왕(恭愍王)의 시호를 요구했을 때, 명나라 태조가 ‘새삼스레 시호를 얻어 가서 중국 의 책봉을 역 이용하여 국내문제를 해결하려한 다’ 고 거부한 사례를 보면 그 진면목을 알 수 있 다. 또한 중국 스스로가 오히려 주변국의 조공이 중국 자체의 손실이라고 한 것을 보면, 조공에는 현실외교의 긍정성이 매우 강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는 9월 3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한다고 한 다. 서방국가와 미국의 핵심 동맹국 중에서 중국 의 전승절 기념식 초청에 응한 유일한 정상이 될 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이제 미국과 일본의 입장 을 고려한 명분 외교보다 중국과의 실리교류를 선택하였다. 이번 중국방문이 갖는 의미는 전통 적으로 북한과 중국의 혈맹관계의 변화를 포함 한 동북아 신시대 개막의 ‘이정표’인 동시에 중국 과 미국 사이에서 명분과 실리의 외교를 통해 균 형관계를 이루고자하는 우리 외교의 자긍심이 느껴지기는 방문이기도하다.
실리의 외교가 높아진다고 하여 대한민국의 국제적인 위상이나 국민들의 위상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국제사회는 강대국이나 약 소국이나 모두 국가의 이익 앞에는 실리외교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외교도 나 라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다면 실리외교는 한층 더 높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  | | ⓒ 황성신문 |
(사)신라문화진흥원 부이사장 김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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