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6-07-02 오후 03:34:11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독자기고
전체기사
뉴스 > 독자기고
왕의 노력은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16년 03월 21일(월) 16:41
ⓒ 황성신문
↑↑ 경덕왕릉(경주시 내남면 부지리 산8번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왕릉의 위치가 이곳인지 확실치 않고, 둘레돌을 다듬는 수법이나 12지신상의 조각수법이 신라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보 여 이 무덤이 경덕왕의 무덤인지 의문시하는 견해도 있다.
ⓒ 황성신문
신라 35대 경덕왕 (景德王)은 효성왕 (孝成王)의 동생으 로, 효성왕에게 아들 이 없어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왕 위를 물려주기를 간 절히 원했다.
‘삼국유사’에 경덕왕이 아들을 얻지 못하자 왕 비를 폐하여 사량부인(沙梁夫人)으로 삼고, 새로 이 만월부인(滿月夫人)을 왕비로 맞았다. 그러나 경덕왕은 만월부인에게도 자식을 얻지 못하였다.
왕이 하루는 표훈스님에게 말하기를, ‘내가 복 이 없어 자식을 얻지 못하니 원컨대 스님은 하느 님[天帝]께 부탁하여 아들을 얻을 수 있게 하라.’ 하였더니 표훈이 하늘로 올라가 하느님께 요청 하고 돌아와서 아뢰기를 ‘하느님의 말씀이 딸이 면 곧 될 수 있으나 아들은 안 된다고 합니다.’ 라 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딸을 아들로 바꾸어 주기 바란다.’고 하니 표훈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 부탁하였다. 하느님이 말하기를, ‘그렇게 될 수는 있으나 그러나 아들을 낳으면 나라가 위태로워 질 것이다.’ 하였다.
표훈이 내려와서 하느님이 하는 말로써 이르 니 왕이 말하기를, ‘비록 나라가 위태롭더라도 아 들을 얻어 뒤를 이었으면 그만이겠다.’ 하였다. 이후 만월왕후가 태자를 낳으니 왕이 매우 기뻐 하였다. 그가 바로 혜공왕이다.
‘삼국유사’는 이 설화에 대해 경덕왕이 하늘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억지로 아들을 얻었기 때 문에 혜공왕이 즉위한 뒤에는 여러 차례의 반란 이 일어났다고 기록하였다.
그 첫 번째가 재위 4년에 대공과 대렴이 반란 을 일으켜 33일간 왕궁을 에워 쌓고, 재위 6년에 는 대아찬 김융이 반란을 일으켰다.
재위 11년에는 이찬 김은거가 반란을 일으켰 고, 같은 해 가을 8월에 이찬 염상이 시중 정문과 함께 반역을 꾀하였다. 즉위한 뒤에 이처럼 큰 난리가 몇 차례나 있었고, 혜공왕의 마지막 재위 16년에 대해서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 되어 있다.
‘왕은 어려서 왕위에 올랐는데, 장성하자 음악 과 여자에 빠져 나돌아 다니며 노는데 절도가 없 고 기강이 문란해 졌다. 그리고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나고 인심이 등을 돌려 나라가 불안하였다. 이에 이찬 김지정이 반란을 일으켜 무리를 모아 서 궁궐을 에워싸고 침범하였다. 여름 4월에 상 대등 김양상이 이찬 경신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김지정 등을 죽였으나, 이때 왕과 왕비는 반란군 에게 살해되었다.’
경덕왕 재위 당시에는 신라사회가 정치적, 경 제적으로 안정되었던 때로, 불국사와 석굴암 등 신라문화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였음에도 불 구하고 삼국통일 이후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강 력한 국왕의 권력이 행사되던 때가 지나고 귀족 세력의 발언권이 점차 강해지던 무렵이었다.
이러한 시절이었기에 경덕왕은 국왕의 권위 와 전통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이러한 무리수를 두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 중의 하나가 757년 전국의 군현명칭을 한자식(漢字式)으로 바꾼 일 이라던가, 759년 중앙관청의 명칭을 한자식으로 바꾼 것 등으로 중국식 정치제도를 활용하여 정 치운영에서 국왕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 를 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이 어린 혜공왕이 즉위한 뒤에는 이전의 지명과 관청 명칭 등이 모 두 원래대로 돌아옴으로써 경덕왕의 노력은 헛 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현대사회에서도 재벌들은 자식에 의한 부의 세습을 위해 편법을 사용하고, 권력자는 의리와 규칙을 버리면서까지 자신을 추종하는 후계자를 세우려 한다.
경덕왕의 무리한 욕심이 아들 혜공왕의 불행 으로 이어진 것처럼 재벌과 권력자 그리고 기득 권을 끝없이 이어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과 모 든 집단들은 역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무리한 욕심은 정의보다는 불의를, 행복 보다는 불행을 넘겨준다는 것을 알았으면 해 본다.
<문화유산 둘러보기 : (사)신라문화진흥원 부이사장 김호상>
황성신문 기자  
- Copyrights ⓒ황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인왕동(仁旺洞)일대는 사로6촌(斯盧六村)중 정지백호 (鄭智伯..
경주 강동면 왕신리 공장서 화재…인명피해 없어..
국민의힘, 경주시의회 의장 후보에 임활 의원 추대..
한수원, 협력사 원자력 재료·용접 기술기준 교육 시행..
여성친화도시 경주의 민낯…가정폭력상담소 5년째 ‘공백’..
김대중 신임 경주세무서장 취임..
마을을 품은 경주교육, 온 마을이 학교다!..
배진석 경북도의회 부의장, 제13대 도 의장 출마..
92. 이목 끌다..
경주시 착한가격업소 간담회 가져…지역 물가안정 협력..
최신뉴스
국민의힘, 경주시의회 의장 후보에 임활 의원 추대..  
김대중 신임 경주세무서장 취임..  
김동해 시의원, 전반기 의장 출마 선언 ‘무소속 5선의 ..  
최초 민선 3선 경주시장 주낙영 취임…미래 100년 도약..  
여성친화도시 경주의 민낯…가정폭력상담소 5년째 ‘공백’..  
1월~5월까지 경주 외국인 방문객 56만 9천357명..  
경주시의회, 제9대 의정활동 마무리..  
배진석 경북도의회 부의장, 제13대 도 의장 출마..  
경주시, 정부합동평가 경북도 시군평가 최우수상 수상..  
HICO, 베트남 기업 관광단 150명 경주 방문 유치..  
故 손성호 상사 유족에 6·25 무공훈장 전수..  
경주시, 귀농귀촌 ‘국가서비스대상’ 4년 연속 수상..  
경주시, 통합 돌봄 거점 ‘아이행복키움센터’ 11월 준공..  
보문관광단지 자율주행 셔틀버스 운행 재개..  
경주시 착한가격업소 간담회 가져…지역 물가안정 협력..  

인사말 윤리강령 윤리실천요강 편집규약 광고문의 제휴문의 개인정보취급방침 찾아오시는 길 청소년보호정책 구독신청 기사제보
상호: 황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505-81-77342/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용황로 9길 11-6 (4층) / 발행인: 최남억 / 편집인: 최남억
mail: tel2200@naver.com / Tel: 054-624-2200 / Fax : 054-624-0624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43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남억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