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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김부식과 묘청을 다시 평가 한다면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16년 07월 11일(월) 16:26
↑↑ 삼국사기(경주 옥산서원 보관본, 보물 제525호) 김부식이 10명의 학자들을 데리고 각고의 노력 과 열정으로 완성한 [삼국사기]를 왕에게 바치는 글[進三國史記表] 중의 한 부분이다. ‘역사책을 편찬하 는 사람은 재주와 학문과 식견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신(臣)과 같은 사람은 본래 뛰어난 재 주를 가진 사람이 아니고 또 깊은 식견이 없으며, 나아가 나이가 늙어 정신이 날로 혼미해지고, 비록 부 지런히 책을 읽어도 책을 덮으면 곧 잊어버리며, 붓을 잡는데 힘이 없고, 종이를 펴 놓으면 글이 내려가 지 않습니다. 신의 학술이 이처럼 부족하고 낮으며 옛날 말과 지난 일은 저처럼 그윽하고 희미합니다. 그러므로 정신과 힘을 다 쏟아 받쳐 겨우 책을 이룬다하여도 끝내 볼만한 것이 없을 것이어서 다만 스 스로 부끄러워 할 뿐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데 성상폐하께서는 신이 뜻만 클 뿐 소략하게 처리한 것을 헤아려주시고 함부로 만든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면 비록 명산(名山)의 사고(史庫)에 길이 간직할 만한 책은 못되더라도 간장병 마개로 사용되는 데에 이용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황성신문
삼국사기를 편찬 한 역사가 김부식은 신라왕실의 후예로, 그의 증조부 김위영 은 고려 태조 때 경 주가 경순왕의 식읍 으로 설치되면서 경 주의 주장(州長)이라 는 호장(戶長)에 임 명된 인물이었으며, 때문에 김부식의 할아버지 때까지 그의 집안은 경주에 살았다. 김부식은 문종 29년(1075)에 경 주에서 태어났고, 14~15세에 아버지를 여의었으 며, 과거에 합격한 할 때까지 경주에서 자랐다.
묘청은 서경(西京, 지금의 평양) 출신의 승려 로 당시 고려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풍수지리설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었으며, 그의 등장은 이자겸의 난으로 인해 어수선했던 사회분위기 때문이었다. 묘청은 이자겸의 난으 로 인한 개경의 암담한 모습이 왕기(王氣)가 쇠 진해진 것으로 생각하였으므로, 지덕(地德)이 왕 성한 서경으로 서울을 옮겨야만 고려 왕조가 다 시 중흥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려국왕 인종은 이러한 묘청 일파의 주장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인종은 묘청 일 파의 건의에 따라 서경에 여러 차례 거동하였을 뿐 만 아니라, 서경에 대한 깊은 배려를 보였다. 그러나 인종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나라에서는 별로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자 서경천도는 김부 식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의 벽에 부딪혔다. 김부 식은 인종에게 서경에 가는 것을 말리는 상소를 하게 되고, 개경을 기반으로 한 자신들의 세력이 일거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한 (개경)문 벌귀족의 반발은 말할 것도 없이 거세졌다.
인종이 서경천도 계획을 포기하자 묘청일파 가 추진해 오던 서경 천도운동은 평화적인 수단 으로는 실현될 수 없게 되었다. 김부식과 묘청의 대립은 더욱 격렬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묘청은 이듬해 서경을 근거지로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인종은 김부식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토벌군을 편성하였으며, 서경성(西京城)을 함락함으로써 묘청의 난은 진압되었다.
김부식과 묘청의 대립은 고려사회에 강렬하 게 존속하던 서울과 지방 사이의 대립의식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개경세력 과 서경세력의 대립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서경 을 근거로 한 묘청 일파로서는 어떠한 수단을 사 용하여서라도 서울을 서경으로 옮기고자 하였으 며, 그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풍수지리설을 이 용하고, 그리하면 천하가 고려왕조에 항복해 올 것이라 주장했다. 이에 김부식으로 대표되는 개 경세력은 서울이 서경으로 옮겨지면 곧 그들 세 력의 근거를 잃게 되는 것이었으므로 사활을 건 반대에 나섰다.
우리는 역사인물의 평가에서 흔히 김부식과 묘청에 대해 획일적인 평가를 내려왔다. 묘청의 난 때에 김부식이 그 토벌군의 총사령관으로 임 명되었기 때문에 마치 유학과 풍수지리설의 대 립, 사대파(事大派)와 독립파(獨立派)의 대립 등 이념적인 대립이 무력충돌이라는 불행한 사태에 이르기 까지 이르렀던 것처럼 설명되었으나, 당 시 김부식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개경 출신의 인 물에 의해 토벌 작전은 변동 없이 진행되었을 것 이다.
대체로 지금까지 묘청은 사실 이상으로 높이 평가되어 왔으며, 그와 반대로 김부식은 그가 저 지른 과오 이상으로 책망을 당해 그가 편찬한 삼 국사기 마저 비판 받아 왔다. 민족주의 역사가 단재 신채호 선생이 거칠게 비판하였던 김부식 에 대해 지금 역사학계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단재는 분명 ‘김부식은 위대한 역사가는 아니었 지만 훌륭한 역사가였다.’ 라고 재평가 할 것이 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지금의 관점에 서의 평가도 매우 중요한 것 이지만, 역사의 평 가를 기다릴 줄 아는 여유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문화유산 둘러보기 : (사)신라문화진흥원 부이사장 김호상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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