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5-08-14 오후 03:39:50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독자기고
전체기사
뉴스 > 독자기고
만약, 김일손의 사초가 실리지 않으면...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16년 07월 18일(월) 15:26
↑↑ 봉화 태백산사고지 전경(사적 제348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조선왕조는 오대산, 마니산, 적상 산, 춘추관, 태백산에 각각 사고를 지어 실록을 보관하였다. 태백산사고터는 경상감사 류영순이 추천하 여 선조 39년(1606)에 짓고 1913년까지 실록을 보관하였던 곳이다. 이곳에서 보관되었던 실록은 일제시 대 조선총독부에 의해 경성제국대학으로 옮겨졌고, 광복 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그대로 소장되었다가 이관되어 현재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건물은 해방 전후에 불타 없어지고 산사태 등 으로 매몰되었던 것을 1988년 발굴하였다.
ⓒ 황성신문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 윤씨의 불행한 죽음이 없었다면 비 범하기 까지는 못해 도 평범한 군주는 되 었을지 모른다. 그 가 즉위 초에 전국의 모든 도(道)에 어사 를 파견하여 지방관 들의 기강을 바로세 우고 백성들의 고초를 살핀 일이 이를 말해준다. 하지만 그에게 현군(賢君)의 자질이 부족함은 무 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기 전 4년 재위기간 내내 사림파와 긴장관계를 조성한 것에서 짐작 할 수 있다.
재위초반은 겉으로는 성종이 다져놓은 유교정 치체제, 평화로운 문치주의가 계속된 시기처럼 보인지만 사림파와 훈구파가 치열한 암투를 벌 이고 있었고, 이 두 세력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연산군에게 주어진 최대의 정치과 제였다. 사림파가 훈구파를 공격하는 이유에는 부정부패로 얼룩진 훈구파를 제거대상으로 본 까닭도 있었지만 이들의 직책이 간쟁을 임무로 하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삼사(三司) 소속 인 까닭도 있었다.
특히, 통틀어 다섯명 밖에 안되는 사관원 언관 (言官)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이들 에게는 공무중은 물론 금주령기간에도 구애받지 않고 공공연히 술을 먹어도 되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그 이유는 [필원잡기]에 따르면 이들은 왕의 잘못을 들춰내어 바로잡는 어려운 일을 맡 고 있었으므로 평소에도 이렇게 기개를 꺾지 말 고 키워두어야 자신의 직위와 생명을 걸고 왕에 게 직언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기관의 주요한 임무는 예나 지금이나 올 바른 정보를 취재하고 공정하게 보도하는 것이 다. 사림파가 장악한 삼사는 현재의 언론보다 훨 씬 강경했다. 이들은 부정한 현실과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성리학을 신봉하는 사상가들이었기 때 문이다. 그런데 연산군이 사림파에 호의적이지 않음을 확인한 훈구파는 사림파를 쓸어버릴 기 회를 노리고 무오사화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발단의 계기는 [성종실록]을 펴내기 위한 사 국(史局)을 열면서부터였다. 사화의 당사자인 김 일손은 기사관(記事官)이었으며 이극돈은 실록 청 당상관이었다. 이극돈은 김일손에게 자신이 세조 때 불경을 외웠다는 것과 전라도관찰사 재 임시 국상(國喪)이 있었음에도 장흥 관기들을 불 러 주연을 베푼 것을 실록에 기록되지 않도록 부 탁하였다. 그러나 김일손은 이를 거절하였고, 이 에 이극돈은 실록청 당상인 윤효순과 짜고 이 사 초의 담당관인 성중엄에게 김일손의 사초를 [성 종실록]에 싣지 말도록 압력을 가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막기 위해 언론사 간부나 편집 데 스크에 압력을 넣는 오늘날 일부 정치가와 관료, 또는 재벌들의 행태와 마찬가지의 언론 탄압이 었다.
실록청 당상들이 담당관에게 압력을 넣은 사 실을 알게 된 사림파 이목 역시 실록 편찬에 참 여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담당관인 성중엄에게 ‘만약 김일손의 사초가 실리지 않으면 실리지 않 은 그 사실 자체를 실록에 기록하겠다.’ 라고 하 였다. 이에 훈구파에서는 이극돈 개인의 문제만 이 아니라 판단하고 김일손의 스승인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을 문제 삼으면서 사림파의 입 자 체를 싫어하는 연산군에 의해 사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펜은 문화의 시기에는 강력한 존재이지만 칼이 힘을 갖는 무력의 시기에는 덧 없이 무력한 존재에 불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어느시대의 권력자이든 민중들의 뜻을 전달하는 언론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입맛에 맞 는 언론만을 호식(好食)만 한다면 그게 임금이든 누구든 세끼 밥을 축내는 삼식(三食)이 밖에 더 되겠는가?
연산군은 삼사를 포함한 신하 전체를 길들이 려는 시도는 중종반정으로 인하여 처참한 실패 로 끝을 맺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산(茶山)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1집의 탕론(湯論)에서 말한 것처럼 백성들에게는 ‘부당한 군주를 백성의 힘으로 추방할 수 있다.’는 혁명권(革命權)이 있음 을 오늘날의 지도자들은 기억하기를 바란다.
다만, 언론의 기자들이 다른 어떤 직종의 종사 자들보다도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돈과 권력, 이 해관계에서 자유롭고 정의로울 때만 가능한 것 이다. 찌라시 수준의 폭로성과 말초적사건 취재 만으로는 언론의 추락만이 있을 뿐이며, 국민으 로부터 언론이 위임받은 편집, 편성권은 100년 이 지나도 지금보다 나아질 수 없을 것이다. 언 론의 윤리강령을 지키는 기자들이 더욱더 많아 져 언론을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문화유산 둘러보기 : (사)신라문화진흥원 부이사장 김호상
황성신문 기자  
- Copyrights ⓒ황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경주 배경 김다현의 ‘천년 사랑’ 국내·외 공개..
‘화랑대기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 2030년까지 개최..
‘2025 화랑대기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 팡파르..
한수원, 2025년 협력사 ESG 지원사업 추진 업무협약 체..
경주시-중국 둔황시 우호 협력 공식화 했다..
데이빗 로든, 경북도 투자유치 홍보대사 경주방문..
문화관광·과학도시 경주, 교육특구 도시로 재탄생..
김민석 국무총리, "APEC 성공 개최에 만전 기해달라"..
APEC 대비 경주형 손님맞이 서비스 추진..
경주시, 양성평등기금 오는 2030년까지 연장 추진..
최신뉴스
소비쿠폰 사용 경주경제에 뚜렷한 효과 입증..  
김문수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경주 방문···지지호소..  
조현 외교부 장관 경주서 APEC 현장점검..  
경주시장 기고문-천년의 수도 경주, APEC 2025로 ..  
황오동과 중부동 통합 위한 합동 상견례..  
세계유산축전 경주시 홍보지원단 출범..  
경주시청 태권도팀, 전국대회서 금1 동1..  
하이코, ‘로컬브랜드페어 2025’산자부 선정..  
주낙영 시장, 국소본부장 회의 주재..  
경주시, APEC 대비 공무원 역량강화 교육..  
경주시문인협회, 제37회 신라문학대상 공모..  
한 여름밤 경주를 화려한 아티스트 들이 물들인다..  
경주시, 황금카니발 명칭·콘텐츠 무단 사용 아니다..  
경주 인왕동 네거리에 문화공원 조성한다..  
광복 80주년 맞아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 캠페인..  

인사말 윤리강령 윤리실천요강 편집규약 광고문의 제휴문의 개인정보취급방침 찾아오시는 길 청소년보호정책 구독신청 기사제보
상호: 황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505-81-77342/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용황로 9길 11-6 (4층) / 발행인: 최남억 / 편집인: 최남억
mail: tel2200@naver.com / Tel: 054-624-2200 / Fax : 054-624-0624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43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남억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