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포항 영일 칠포리 암각화(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9호) 이 암각화는 칠포리 해수욕장 서쪽의 곤륜산 계곡 옆에 툭 불거져 나온 바위면에 새긴 그림이다. 그림을 새긴 바위는 모두 세 군데인데, 원위치에 하나, 거기서 6m 떨어진 계곡에 하나, 그리고 20m 떨어진 곳에 또 하나가 있다 | ⓒ 황성신문 | |
암각화(岩刻畵)는 바위나 동굴 벽에 여러 가지 동물상이나 기하학적 상징 문양 을 그리거나 새겨놓은 그림을 말한다.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나타나지만 우리나라에서 는 신석기시대부터 였고 청동기시대에 와서 가장 많은 제작이 이루어졌다.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에 당시의 신앙과 생활 모습을 표현하였으며 주로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내용이 많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암각화의 대 부분은 경상도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문양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며 일반적인 문양은 ‘방패’ 문양이다. 방패 문양의 암각화는 청동기시대 석 검(石劍)의 손잡이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검파 형(劍把形)암각화’ 라고 부르기도 한다.
요즘 뉴스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시위대를 막는 의무경찰들의 방패이다. 방패의 역할은 뾰족한 창을 막아내는 것이 목적이며 그와 반대 로 창은 방패를 뚫어야만 하는 목적이 있다. 우 리는 두 목적이 어떠하든 부딪쳐 파열음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여 이 둘을 모순(矛盾)이라는 행간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민족 투쟁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신념은 날카롭지만 행동과 수단은 무딘 창으로 방패를 공격하여 늘 방패를 뚫었던 역사가 우리에겐 있다. 그러나 오늘날은 단체행동과 거친 표현의 뾰족한 창을 들고 방패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저 날카로운 창으로 방패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이긴다고 한들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대가를 치루어야 진정 용서와 화해에 다다를 수 있을까? 라는 회의가 든다. 우리가 창을 잡을 때 에는 상대의 방패가 허약하기를 바라고, 우리가 방패를 잡을 때에는 상대의 창이 무딘 창이기를 바라는 모순의 사회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 이 든다.
훌륭한 검투사는 한손에 방패, 또 다른 한손에 는 창을 잡고 싸운다는 생각을 하면 방패와 창 하나만을 선택하는 의협심과 용기에서 벗어나 창과 방패가 함께하는 동반자의 길로 가야할 시 대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과거와 미래, 국민과 대통 령,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강자와 약자,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모두가 양쪽의 수레바퀴가 되어 지금의 늪에서 슬기롭게 헤쳐나아가기를 기원해 본다. (사)신라문화진흥원 부이사장 김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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