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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의 아내, 모래밭에서 통곡하다.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17년 07월 03일(월) 15:25
↑↑ 벌지지(충신 박제상 부인의 유적, 경주시 배반동 956번지 일대) 문천(蚊川) 제방에 세워진 이 비석은 1989년 석굴암연구회에서 건립하였다. 오른쪽에 보이는 소나무 숲이 망덕사지이며, 배경으로 보이는 조그마한 산이 선덕여왕릉과 사천왕사지가 있는 낭산(郎山)이다. 우리는 많은 무형의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유형의 문화재만을 쫒아 관리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 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한 박제상과 그런 그를 그리워한 박제상의 아내에 대한 설화는 사실 어떠한 유형의 문화재보다도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렇다면 비단 박제상의 설화 뿐 아니라 지명 곳곳, 인물 각각에 얽힌 설화를 찾아내 눈과 마음을 모두를 따뜻하게 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유산을 지켜가는 것이 진정한 문화의 전승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 비석은 측면에서 보면 곧 쓰러질 것 같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바로세우도록 하겠습니다.
ⓒ 황성신문
박제상(朴提上)은 [삼국사기]에 신라의 충신으로 이름은 모말(毛末)이라고도 하였으며, 시조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파사이사금의 5세손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상이 벼슬길에 나아 가 삽량주간(삽량주 의 지배자, 경남 양산시)으로 있을 때 눌지왕은 왜국과 고구려에 볼모로 가있는 동생 미사흔(未斯欣)과 복호(卜好)를 신라로 데려오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왕은 현명하고 지혜가 있는 세 사람의 신하들로부터 제상이 성격이 강직하고 용감하며 꾀가 있어 왕의 근심을 풀어드릴 수 있는 적임자로 추천받았다. 왕은 제상을 불러 사신으로 가 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제상이 대답하기를 ‘제가 듣기에 임금이 걱정을 하게 되면 신하가 욕을 보게 되는 법이요, 임금이 욕을 보게 되면 신하는 죽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렵다느니 쉽다느니 논란을 한 뒤에 실행한다면 이를 불충이라 할 것이요, 죽고 사는 것을 따져본 뒤에 움직인다면 이를 용기가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비록 똑똑 하지는 못하오나 명령을 받들어 실행하고 싶습니다’ 하였다. 왕이 매우 가상히 여겨 술잔을 나누어 마시고 악수를 하면서 작별을 하였다.
그는 먼저 고구려에 들어가 고구려왕을 설득 하여 복호를 데려온 이후 제상은 고구려는 나라가 크고 왕 역시 어질어서 한마디의 말로 데려 올 수 있지만 왜인의 경우는 입과 혀로 달래수가 없어 거짓 꾀를 써서 왕자를 데려와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미사흔을 데려오기 위하여 거짓으로 나라를 배반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고 가족들도 만나지 않은 채 동해 바다 율포(栗浦)에 다다라 배를 띄워 왜로 향하였다. 박제상이 왜국으로 건너갈 때 출발했던 포구는 [삼국사기]와 [삼국 유사]에 모두 율포(栗浦)로 기록되어 있는데 학계에서는 이곳을 울주군 강동면의 정자리(亭子里)로 보고 있다.
한편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제상의 아내는 험난한 길을 떠나는 남편을 배웅하기 위해 율포로 한 달음에 달려갔으나 멀리서 떠나는 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는 서라벌로 돌아오는 길,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망덕사 (望德寺)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모래사장에서 주저앉아 통곡하고 말았다. 친척 두 사람이 그녀를 부축하여 집으로 데려 가려 하였으나 다리를 뻗치고 앉아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이후 이곳 지명을 벌지지(伐知旨)라 하였으며 오늘날에도 두 다리가 뻗어 있던 곳이라 하여 ‘양지버든’이라 부 르고 있다. 이로부터 이곳 모래사장을 장사(長沙)라 부르게 되었다.
박제상이 왜국에서 눌지왕의 동생 미사흔(未斯欣)을 구하러가 미사흔을 구한 후, 모진 고문 을 받고 불에 타 죽었다는 소식이 본국에 닿았다. 그러자 부인은 못 견딜 만큼 남편을 사모하여 딸 셋을 데리고 치술령(隧述嶺)에 올라가 왜국을 바라다보고 통고하다가 죽었다. 치술령은 경주시와 울산시의 경계구역에 자리 잡고 있는 765m의 고개이다. 이곳의 정상은 북으로는 단석산이, 동북으로는 경주남산과 토함산이 눈앞에 잡힐 듯 보이며 동해쪽의 삼태봉이 동해의 푸른 바다와 함께 어우러져 지금도 동해를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조망을 자랑하는 곳이다.
박제상의 딸 가운데 첫째, 아기(阿奇)와 셋째, 아경(阿慶)도 통곡하다가 기진하여 순효(殉孝) 하였다. 아영(阿榮)도 어머니와 언니를 따라 죽으려고 하였으나 조상의 제사를 지내 올리며 어 머니와 형제를 묻어주고, 어린 남동생인 문량(文良, 文郞)을 길러 가문을 잇게 한 후에 죽어도 늦지 않겠다고 생각하여 집으로 돌아와 동생을 길렀다. 눌지왕이 이 소식을 듣고 미사흔으로 하여 금 둘째 딸을 맞아 아내로 삼게 하여 보답하였다.
죽은 부인의 몸은 화하여 그곳의 망부석이 되었고, 넋은 새가 되어 망부석 남쪽 십 여리에 있는 바위틈으로 날아가 숨었다. 이곳은 새[乙]가 숨은[隱] 바위[巖]라 하여 ‘은을암(隱乙巖)’이라 부른다. 그 후 부인은 치술신모(致述神母)로 받들어졌는데, 마을 사람들이 신모의 넋을 달래기 위해 은을암 앞에 절을 세워 은을암(隱乙庵)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또한 신라 조정에서는 세 모녀를 호국 삼녀신(三女神)으로 모시고 신모사 (神母祠)를 세워 제향(祭享)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국열사 충열공 박제상과 그의 가족이 수행한 충의효열(忠義孝烈) 사절(死節)의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여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러기에 일찍이 세종대왕은 박제상에 대해 ‘신라천년에 으뜸으로 가는 충신’ 이라 하였고 정조는 ‘그 도덕은 천추에 높고 정충은 만세에 걸친다.’ 라며 극찬하였다.
오늘날 가족에 대한 사회적인 기준으로만 본다면 박제상을 비롯해 사육신, 정몽주 등은 책임감 없는 가장(家長)일지도 모른다. 이들에 비해 현대의 가장들은 가장이라는 사명의 굴레 속에서 자신의 희생을 천직으로 삼고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안간힘을 쓰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아버지는 과거의 유교적 전통과 경제적 실권을 통해 강인하고 권위적인 이미지보다는 희노애락의 세파에 부딪히면서 온 가족의 행복을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삶의 개척자로 살아가시는 듯하다. 이제는 아버지들이 짊어진 부담을 가족 모두가 이해하고 아버지로서의 권위와 품위를 지켜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사)신라문화진흥원 부이사장 김호상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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