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황성신문 |
|  | | ⓒ 황성신문 | | 코오롱호텔 뒷길에서 탑골마을 길을 오르자 바로 비탈진 길을 따라 올라갔다. 간혹 호로록~쪽쪽 산새가 울고 있었다. 저 아래 골짜기에는 낯선 우리가 찾아온다고 산골 물이 모아 모아서 졸졸졸 호절 곤히 노래를 들려주었다. 어느 듯 조금 비탈진 길이 끝나고 양편으로 전나무들이 우리를 맞아 주고서 이마에 흘린 땀을 식혀 주었다. 언젠가 ‘태풍 매미’가 할퀴고 지나간 토함산 얼굴에 이르러 토함산 정상이 바로 앞임을 알았다.
송창식의 ‘토함산에 올라’가 뇌를 스쳤다. “토함산에 올랐어라 해를 안고 앉았어라. 가슴속에 품었어라 세월도 아픔도 품어버렸어라. 터져 부서질 듯 미소 짓는 임의 얼굴에도 천년의 풍파세월 담겼어라. 임들의 하신 양 가슴속에 사무쳐서 좋았어라. 아하.”
이제 바야흐로 무르익은 봄, 등산 철에 토함산 정상에는 온통 붉고, 푸른 등산객들이 꽃을 피웠다. 국립공원 토함산 745m 정상 표지석이 보이고 군데군데 안내 표지와 시비(詩碑)가 설치돼 있었다. 어려서 등산하지 못했었지만, 고향 집에서 치어다보던 이곳이 바로 체전행사 때마다 성화를 채화하던 곳이었다. 늦었지만 나의 고향 토함산에 이제 올라 보았다. 상쾌했다. 만세를 불렀다. 나이 예순에 몇을 보태어 늦었지만 이제라도 고향 산, 토함산을 찾았으니 얼마나 감개무량했든가?
치어다보다가 내려다보니 내가 세상을 모두 얻은 듯하였다. 보라! 저기가 동해남부선 불국사기차역이 아닌가? 곁에 길쭉하니 동그마니 학교 체육관이 보이는 곳이 교육대학 다닐 때 아랫마을 사람들 모아 놓았다. 갈매 땅 채소밭을 돈 더 드리겠다고 사정해 유치한 경주여자정보고등학교가 아니든가? 이 지역에 기여한 경주법주 공장! 만석꾼이 사는 수봉정(秀峯亭), 연꽃이 많다고 해서 ‘연꽃 못’이 있는 온천호텔도 보였다. 아사달(阿斯達)과 아사녀(阿斯女)가 영원히 만나지 못해서 영원불멸의 기념탑이 있는 구정광장, 어릴 때 장날의 추억이 서린 불국사공설시장도 보이지 아니하는가. 내가 다녔던 불국사초등학교, 도랑 건너 불국중학 등 하나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맑은 날 토함산에서 내려다 볼 수가 있다니 감개무량했다.
토함산 정상에서 쾌재를 불러 보았다. 어린 날 마음대로 되지 않아 이 산을 쳐다보고 원망도 했다. 성공하였을 때는 이 산을 보고 기뻐도 했다. 나 이제 연출가가 돼서 경주분지에 자연극장을 짓고, 이 토함산을 배경으로 해 대자연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고 싶다. 동해남부선 기찻길을 걷어내 천 년 신라의 불국사 무영탑(無影塔)을 연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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