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청림 이영백수필
 |  | | ↑↑ 이영백 수필가 | ⓒ 황성신문 |
|  | | ⓒ 황성신문 | | 물 흐르는 하천을 따라 길게 방천이 줄을 섰다
. 경주 남천 시래천 상류다. 홍수가 나지 않으면 그저 그런 하천인 사행천으로 물이 하천모양 따라 구불구불하게 졸졸 흘러 내려간다. 홍수가 나면 조금 많은 물이 넘칠 때도 있었다. 평소에는 도랑물에 불과했다. 언제 홍수가 나서 넘칠지 모르니까 방천이 있었고, 방천숲에는 마치 집안에 벌레를 쫓기 위해 가림을 해 놓은 것처럼 수양버들이 드리워져 있었다.
일하다 더운 어르신들이 늘어진 수양버들 그늘아래 흰 모래 바닥에 도롱이로 자리 깔고 뜨거운 한낮을 쉬었다. 하천으로 굽어진 수양버들이 마치 드러누운 자세로 자라서 그 몸뚱이 위를 타고 오르기 쉬었다. 시끄러운 매미를 잡으러 말총 채를 들고서 살금살금 기어올랐다. 매미 발을 낚아채면서 매미는 우리들 장난감이 됐다. 그 매미를 들고 다니면 매미는 죽어라고 소리, 소리 지르고 낮잠 주무시던 어르신들은 시끄럽다고 우리들을 멀리 쫓아 버렸다.
우리들은 방천숲에서 쫓겨 나와 햇볕이 반짝이는 갱빈으로 나섰다. 새 하얀 금모래들이 작은 고사리 손을 기다렸다. 마치 어서 와서 까치집을 짓고 모래성을 쌓으라고 하듯 유혹했다. 모래를 오른 손으로 퍼 모으고 왼 손등을 덮어서 흙 모인 곳을 위에서 토닥이고 나서 모래에 묻힌 왼손을 빼면 훌륭한(?) 까치집이 만들어졌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께, 새 이 다오!”
연속으로 불러도 까치는 아무 기동도 없이 저 멀리 동네 감나무 가지에 앉아서 울어 대었다.
“자! 이 성은 관문성(關門城)이다! 적을 지켜라!”
“여기 우리들도 있다. 성을 지키자!”
누가 전쟁놀이 아니랄까 봐 벌써 버드나무 회초리를 꺾어 창을 만들고, 칼을 만들어 휘두르면서 모래성을 지켰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오줌 버리려고 꼭 집에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팬티도 없는 아랫바지 허리띠를 풀고 그냥 갱빈 물을 향해 조준하고 발사했다. 그 깨끗한 남천 시래 거랑 물에 노란 오줌을 쌌으나 이내 자정되고 말았다. 오줌이 처음에는 세차게 올라 가다가 자꾸 힘이 떨어지면서 갱빈 물에 그만 또∼닥∼딱하고 마저 흘러내렸다.
또다시 짓기 쉬운 까치집을 지었다. 성 쌓았던 것을 전쟁놀이로 모두 부셔 버리고 다시 성을 쌓았다. 이제는 성을 아주 튼튼히 짓고, 들어가는 입구에도 도랑을 파서 해자(垓字)를 만들었다. 모래성 중간마다 검정고무신을 벗어서 반으로 접어 세우니 정말 이곳 남천 갱빈에는 튼튼한 신라의 성이 생기었다.
이때다 형님 친구가 우리를 놀라게 하려고 고함을 쳤다.
“큰 일이 일어났다. 모두 집으로 가서 빨리 피하자! 늦게 오는 사람은 감자를 안 준다!”
아니 이럴 수가 있겠나? 그렇게 튼튼한 신라 성을 만들었고, 까치집도 만들었는데 무슨 큰일이 났단 말인가? 어린 우리는 허겁지겁 집으로 논둑길을 삐딱거리며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이제 숨이 차서 쓰러질 지경이 됐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샌가 집에 돌아왔다.
빨리 가잔다고 그만 검정고무신 한 짝만 들고 왔다. 고무신 잃어버리면 밥도 안 주던 시절이었다. 내 고무신 한 짝이 어디 갔나? 오른 손에는 검정고무신 한 짝만 들려 있는 것이었다.
“앙! 앙!”
울어버렸다. 겁도 나고 심리적으로 욺으로서 꾸중을 보상 받으려 함이었다. 울음소리가 커졌다. 자꾸 울어 대니까 끝에 형이 매우 귀찮아하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야! 이 바보야! 신발 거기 있네.”
“어디 있는 데?”
“하하하…. 너 왼발에 신고 있잖아!”
민망해서 나도 따라 웃고 말았다, 갱빈에서 하도 급히 가자는 바람에 한 짝은 왼발에 신고, 한 짝은 오른 손에 들고 왔던 것이다.
그 갱빈에 이제 가보았더니 물도 마르고, 반짝이던 금모래는 어디 가고 없었다. 방천숲은 사라지고, 방천은 가지런히 견칫돌로 감싸서 자동차가 다니는 둑길이 나 있었다. 어릴 때 놀던 갱빈에는 달맞이 꽃대만 무성하면서 저 멀리 동해남부선 철교 위에는 장난감 기차처럼 전동차 네 칸짜리가 앵 소리 내며 내달아 가고 있을 뿐이었다.(2012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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