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황성신문 |
|  | | ⓒ 황성신문 | | 내 고향에서는 ‘영지(影池)’를 ‘영못’이라 불렀다. 정말인지는 몰라도 석탑에서 멀리 자신의 그림자가 비치는 못이라고 하는가? 어렸을 때 냇가에 목욕하고 나면 귀에 물이 들어갔는지 확인했다. 입술이 새파래지기까지 있다가 그제야 물에서 나와 시냇가의 하얗고 납작한 돌 두 개를 찾아 주워들었다. 양쪽 귀에다 바짝 대고 오른쪽, 왼쪽으로 머리를 기울여 ‘영∼ 못이 깊나? 조양∼ 못이 깊나?’하면서 주문 외듯 중얼거렸다. 그러는 동안에 귓속의 물을 얇은 돌바닥에다 빼어내는 것이었다. 영못이 있는 곳을 흔히 ‘영모단(못안)’이라 불렀다.
우리 고장에는 설화가 많다. 그 중에서도 불국사 석가탑에 관련해 대구에서 태어난 현진건 소설가가 있었다. 일제침략기시대에 동아일보 기자생활을 하면서 손기정 선수의 올림픽에 우승하였음에도 나라 빼앗긴 서러움에 일장기 말살사건에 휘말리고 말았다. 민족의 말살에 대응하기 위해 불국사에 들러 설화를 채록해 소설을 썼던 것이 장편소설 ‘무영탑(無影塔)’이다.
소설 ‘무영탑’에 나오는 전설 있는 못이 ‘영못’이었다.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을 만들었던 신라시대에 부여인 아사달(阿斯達) 석공을 모셔왔다. 탑을 만들려고 신라까지 왔다가 시간이 오래 걸려 집에서 기다리지 못한 부인 아사녀(阿斯女)는 찾아왔다. 주지는 여인이 절 공사장에 들어가면 부정 탄다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탑이 완성되면 영못에 그림자가 비칠 것이다”고 해 아랫마을에 가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사녀는 너무 오래 기다림에 지쳐서 그만 영못에 빠져 죽고 말았다. 아사달부인이 찾아왔다는 소리를 그제야 듣고 탑이 완성돼 영못으로 찾아왔다. 아사녀는 흔적도 없이 물에 빠져 죽었다. 너무 애달파했다. 못 주변 바위에 밤낮으로 조각에만 몰두했다. 아사달은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완성된 바위를 보니 얼굴은 아내요, 형상은 부처였다. 달빛 내리는 못에 결국 자신도 몸을 던져 그리운 아내 곁으로 갔다는 슬픈 전설이 있는 영못이다.
불국사로 올라가는 불국사역전에 있었던 공설시장은 1962년에 제1회 신라문화제를 하면서 달포 만에 현재 불국동사무소 뒤로 옮기게 됐다. 그 자리에 삼각로터리를 만들면서 한 가운데에다가 아사달과 아사녀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영원불멸’을 상징하는 기념탑을 세웠다. 현재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도 기억으로 비 안 오고 날 가무는 여름이 되면 문득 그 일들이 생각난다. 예전에는 저수지가 잘 없었다. 그러나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영못에서는 진흙바닥에 묻혀 있던 ‘말밤쇠’를 캤던 일이 기억난다. 배고픈 시절이라 이것을 진흙 속에서 캐내면 딱딱한 껍질을 벗기고 새하얀 알맹이를 까먹던 시절의 추억이 있다. 말밤쇠란 본래 마름의 열매인데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불린다. 물에 있다고‘물밤’, 말 줄기에서 달려있다고 ‘말밤’, ‘말뱅이’, 고향에서는 철조망의 갈고리 쇠처럼 생겼다고 해‘말밤쇠’라 불렀다.
뜨거운 여름 물 빠진 영못에 가면 저만치 얕은 물위에 나와 있는 말밤쇠 잎은 마름모꼴로 길이보다 너비가 더 길며, 잎 가장자리에는 큰 톱니들이 고르지 않게 나 있다. 7~8월 물위에 나와 있는 잎의 잎겨드랑이에 한 송이씩 작은 하얀 꽃이 핀다. 꽃자루가 처음에는 위로 곧추 서 있으나 열매가 익어가면서 밑으로 숙여져 열매는 물속에 있다. 열매에는 뼈대처럼 매우 딱딱한 뿔 두 개가 양쪽으로 달린다. 모양새만 보면 참 요상하게도 생겼다.
어렸을 때 배고프고 물이 빠지고 나면 바닥 진흙이 말라가면서 우리는 말밤쇠 그것을 캔다. 맨손에 나무꼬챙이 하나로 진흙을 파헤쳐 말밤쇠를 캤다. 그것도 귀하다고 호주머니에 넣고 오는 동안 내내 내 다리를 찔러댔다. 말밤쇠 침은 낚시 바늘이 화살처럼 생겨서 찔리면 잘 빠지지 않도록 생겨서 많이 아팠다. 집에 돌아오면 말밤쇠 캐 왔다고 큰소리치며 그것을 엄마에게 넘기었다. 내 작은 손가락마다 말밤쇠 침이 박혀서 씨 알리기 시작했다. 시간 나는 대로 작은 톱니처럼 생긴 새카만 가시를 찾아내어 하나같이 빼내었다.
오늘날에는 이 말밤쇠가 항암작용을 하는 약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어렸을 때 윤사월 긴긴해 배고픔에 영못에서 말밤쇠라도 캐서 요기해야 했다.
영못을 돌아 나오는 길에 ‘영지석불’을 찾았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틋한 영원불멸의 사랑을 다시 높이며 묵배를 드렸다. 토함산이 빠끔히 치어다 보이는 영지는 긴긴 세월 오늘날까지도 우리 곁에 있어 주었다. 달빛 내리는 영못 밀개에 올라서서 주저리주저리 열려 있는 전설의 토함산을 바라보면 신령스러운 기운이 온다. 아사달과 아사녀가 물 위에 어리는 그림자 보면서 둘만의 지켜주지 못해 애틋한 부부 전설이 됐다. 이제 고스란히 전설로 재현되는 연극을 연출하고 싶은 마음이 문득난다.
아무튼 먼 신라시대의 전설을 입으로 구전해 오다가 대구 고향인 현진건 소설가의 대단한 설정에 ‘무영탑’ 소설로 영원히 전한다. 후세에 더욱 애틋한 부부사랑의 장소로 남은 영못은 21세기 문화콘텐츠개발로 하면 안성맞춤일 것이다. 어린 날 말밤쇠 캐던 그 영못에 지금은 물이 만수돼 관광객을 푸르게 기다리고 있다.
* 말밤쇠 : 마름의 열매. 경주의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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