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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개산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청림 이영백수필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1년 05월 14일(금) 14:05

ⓒ 황성신문
ⓒ 황성신문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가 붙은 관광지가 고향이다. 경주 불국사이고, 안태본 시래동이다. 동네 이름에 언젠가는 때가 올 것이라고 했다. 때는 오기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때는 만들어 가는 것이다. 때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올 때가 있다. 돈 많이 벌어 잘 살 때를 말하는가, 아니면 유명해지는 때를 말하는가? 동네사람 중에 근세조선시대 최사민(崔思敏)이라는 선비가 열세 번이나 초시에 응시하고도 급제하지 못했다. 그래서 때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동네이름을 시래(時來)’라 불렀다. 그 때는 출세를 말하였던가?

고향에 살았으면서도 밀개산(密開山,120m)을 내내 잘 모르고 살았다. 그냥 남쪽에 있는 당연한 그런 산이려니 여기고 살았다. 아버지는 밀개산 중에 일부를 돈 주고 산다했다. 농사짓던 밭과 대토했다.

산이 있어야 조상님들 산소를 모시지. 봐라. 네 할아버지 산소가 왼,고개 공동묘지에 모셔져 있지 않나?”

농사짓던 그 좋은 밭은 일제침략기시대에 평생을 아버지가 마름해 받은 것이었다. 패망해 돌아갈 때 밭주인이 아버지께 주고 간 밭이었다. 그 밭은 현재 경주법주공장이 되어 있다. 서른 마지기, 고향에서는 밭이 귀해 한 마지기가 80평이었다. 평지의 2400, 정말 좋은 밭이었다. 아버지의 분신과 같은 밭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288이라는 8460평 산과 대토하고 말았다. 그 때가 초교 들기 전해인 1956년이었다.

집 나이 8살 때 이미 서당에 다니면서 한자를 깨쳤다. 매매계약서를 더듬더듬 읽어드렸다. 산주(山主)가 이원× 씨인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세상에나 아버지는 문맹자이었다. 계약서를 끝까지 읽어 드리니까, 아버지는 글 못 읽어도 귀로 읽을 줄은 알았다.

맞아 8640, 산주가 이원×이고. 네가 한글, 한자를 모두 깨쳐 다행이다.”

겨우 8살에 아버지의 칭찬이 대단했다. 밀개산 일부를 평생 마름해 얻은 밭이 됐다. 정말 때가 온 것인가?

밀개산은 구릉(丘陵)일 뿐이다. 그러나 영못을 병풍처럼 두르고, 우리고장에서 동해남부선 기찻길과 남천 시래천을 가로 질러 시래철교로 시작한다. 상보 물줄기 따라 중방마을, 상보들판을 이어가는 구릉이다. 붉은 진달래가 필 때쯤 사월 긴긴 해, 배고프면 참꽃 따 먹었다. 봄꽃 중에 또 도라지가 피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보라색 꽃밭을 일구었다. 맨손으로 꼬챙이 꺾어 산천의 자연 도라지를 뿌리 채 캐내었다. 너무 반가워 그냥 쓱쓱 문지르고 흙을 떨구곤 입에 갖다 대었다. 그 첫맛이 비록 쌉싸래했지만, 잘근잘근 씹으며 배를 채웠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 1973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 1977년에 세상을 버렸다. 파도야 날 어쩌란 말인가? 아비의 유언, 우리에게 재산을 주는 유언이 아닌 감사하게도 부담을 주는 유언을 주셨다.

내가 죽고 나면 15년 내에 나의 무덤에 비석을 세워라.”

정말 기가 막히게 좋은(?) 유언이었다. 우리에게 행복한(?) 유언이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유산을 남겼으면 돌아가신지 15년 내에 당신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우라는 것이던가? 허허허. 어색한 웃음만 웃자. 밀개산에 누워 계셔도 유언의 압력이 우리에게 자꾸 밤낮으로 명령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또 들리었다.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아버지 유언을 지키려고 오 형제는 노력했다. 대학원에 졸업논문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1986년 드디어 아버지 비문을 졸재(卒才)로 감히 근찬(謹撰)했다.

 

松明居士車城李公諱壽祥之碑

萬物은가만히있고자하여도제位置를지키지못하며하지않고자하여도하며없애버리려하여도지워지지않음이라여기行績人口膾炙될것이없으나히남기고자함은心中에지울수없었던사실이었으므로製述碑碣한다壽祥이오成峯이며松明이다李氏本貫車城이며車城君諱渭始祖로한다先代麗近朝에걸쳐文武官職에두루登用奉公하였다中祖壽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諱善基護軍公派祖七代祖이다贈職通正大夫諱桂白六代祖이며贈職通正大夫諱東普高祖이며曾祖諱和浩이며祖父諱慶淵이다曼瑚學行諱膺祚이며慶州金氏鳴憲膝下三男一女를두었다次子西紀一八九九年十月二三日出生하였다어릴때부터性品剛直하고家事熱中하였으며孝行至極하였다長成하여農耕하며後進訓導家勢復興시키며宗事宗親間敦睦啓導하여中央大宗會創立發源이되었다또平素忠孝誠三字符書라하였다西紀一九七三年十一月二六日하였다配位慶州崔氏松谿堂婦人翊鎬西紀一九六年二月十六日出生하였다婦人仁慈寬厚하며聖賢들의言語行實子女들에게訓諭하니賢母良妻이었다西紀一九七七年一月三日하였다墓所慶北慶州市時來洞密開山亥坐雙墳으로있다(중략).

여든의長壽와아홉男妹榮潤함이하늘주신것으로어찌偶然한일이오며,

車城李門敦宗敦睦佛國寺에서發論됨이人意로다한精誠公忠孝誠符書로다.

爾後密開山巖靈氣받아松明居士松谿堂夫人의넋을千秋에누리오리다.

 

西紀一九八六年六月十一日 不肖子五男 泳伯謹撰 後學晋州人鄭元鐸謹書

後學慶州人金富基題字 後藝烏川人鄭永乃 刻

 

어찌 문외한이 졸고로 비문을 지었으니 부끄럽기 한량없다. 밀개산에 감히 증조부, 증조모, 조부, 조모, 아버지, 어머니, 백형, 큰형수, 중형, 숙형, 장조카 등 모두 현재 열한 분의 산소를 모시고 있다. 통칭으로 차성이씨 37() 증조부의 호를 인용해 묘원 이름을 취송당(翠松堂)’으로 지었다.

밀개산 동편에 취송당을 마련해 차성이씨 호군공파(護軍公派) 만호공소파 가문을 이어가고 있다. 조부는 만호학행(曼瑚學行)으로 시골에서 문장(門長)으로 학행이 됐다. 백형은 차성이씨중앙대종회 초대회장을 역임했고, 중형 숙형은 대종회 초대이사를 맡았다. 본관 차성은 오늘날 부산 기장군(機張郡, 삼한시대 甲火良谷縣, 별호 車城)으로 월성이씨에서 33세로 분적(시조 차성군 諱李渭)한 후 이 밀개산에 5150년을 이어 취송당 묘원으로 모시고 있다.

밀개산은 비록 작고 푸른 구릉이지만 자손대대로 이어지는 가문의 북망산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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