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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못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이영백 수필가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1년 06월 04일(금) 14:34

ⓒ 황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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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곳마다 사람들의 지혜가 있었다. 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아니하고 모아서 한해(旱害)가 들면 조금씩 빼내어 사용하는 것이다. 저수지가 있어야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았던 동네에서는 처음부터 물을 모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으면서도 나중에 인공으로 물을 모아 둔 못이 있다. ‘조양지(朝陽池)’라고 했다. 동네에서는 그냥 조양못이라고 불렀다. 조양못은 본래 물이 있던 곳이 아니었다. 전설 아닌 전설이 전해 내려왔다.

근세조선시대에 조양못에는 못이 아닌 평지이었다. 풍수지리가가 와서 보고 난 후 이곳에 왕기가 서려 있다고 했다. 소리 소문 없이 조정에서 조사차 내려 왔다. 역적이 날 수 있는 터라고 했다. 아침 해가 뜨고 보니 서기가 비치고, 그 터가 과연 범상치 아니했다. 바로 그 자리에 못 파고 물을 채워버렸다. 채운 물은 논에 사용하기 위해 둑도, 밀개도 만들어서 오늘날의 저수지 형태로 바뀌게 됐다.

특히 근세조선시대 교통지역인 말 먹이는 곳으로 조역(朝驛)’이 있었다. 바로 역참(驛站)’이 됐다. 사실상 오늘날에 와서는 역졸이 거주 했기에 업신여겼다. 그리고 현대의 교통수단인 불국사기차역떨어져 들어섰다. 조양 못은 처음에 저수지 없던 곳에 풍수지리설에 맞춰서 그렇게 저수지로 변하게 됐다.

또 일설에는 마을 뒤편에 높이 80m의 산이 있었다. 신라가 도읍을 정할 때 이 산을 남산으로 정하려고 했다. 산의 형상이 기러기가 날아가는 형국이었다. 산 동편에다 못을 파고, 서편 바위를 정으로 구멍 내어 쪼진바위(혹은 쪼진뱅이)’라 해 산세를 돋우었다고 했다. 그런 일을 해놓고 보아도 부족했다. 산세가 약해 신라 수도로는 안돼 지금의 경주 남산이 보이는 곳으로 정했다. 이곳은 도읍이 못돼 산 이름을 개남산(介南山)’이라 불렀다. ‘-’자로 시작하는 개망초’, ‘개복숭아처럼 낮춤말이기도 했다.

나는 조양못과 인연이 참 많다. 유년을 이 못에서 찾아야 했다. 그냥 생긴 대나무 끝에다 낚시 바늘과 찌를 구해 달았다. 그리고도 월척을 낚겠다고 못가에 앉거나 서서 기다리는 어리석은 꾼이었다. 이렇게 해서는 고기가 낚일 리 없다. 겨우 입질해 낚시에 달려 올라오는 것은 청 피리뿐이었다. 고기를 많이 낚겠다고 그물 통은 제법 커다란 것을 갖다 두었으니 누가 보아도 웃을 일이다.

곧잘 소쿠리로 집 앞 도랑물에서 민물 새우(고향에서는 새비’)를 잡았다. 이 도랑 물이 바로 조양못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새비가 제법 도랑타고 올라와 살고 있었다. 새비 잡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 바로 샛문 모기장이다. 이를 걷어 뚜껑 없는 주전자 들고 조양못으로 새비 잡으러 갔다. 모기장인데도 제법 걸려들었다. 반주전자를 잡아서 집으로 돌아 올 때면 그 기분이 무척 좋았다. 새비는 바로 일하는 아버지 막걸리 안주가 됐다. 새비 잡는 것은 꾸중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해도 해마다 날이 가물었다. 학교를 파하고 불국사기차역 구내를 통해 내려오는 데 불국사지구사람들이 온통 다 나와 있었다. 날이 가무니 조양못에 물이 말랐다. 저수지조합에서 입장권을 팔아 민물고기 잡이를 하고 있었다. 병아리 육추하던 가두리를 가지고 가면 입장권을 팔았다. 입장권 산 사람들에게 붉은 띠를 주었다. 이 띠를 머리에 두르고 물이 마른 곳에 바글바글하게 모여 우글우글한 고기를 잡아내었다. 잉어, 붕어들이 마구잡이로 잡혀 올라오는 것이다.

아이들은 고기 잡는 도구가 없으므로 표를 사지 않아도 그냥 구경만 하기에 들어갈 수 있다. 벌써 잉어 한 마리를 잡아두었다. 잡힌 잉어가 어찌나 큰지 큰 그릇에 들어 가 있는데도 꼬리는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어렸을 때 보아서 그런지 싯누런 잉어 입가에 긴 수염이 나 있었고, 마치 신령스런 영물 같아 무척 무서움증이 나기도 했다.

조양못하면 나의 첫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본래 자전거를 잘 타지 못했다. 한 살 적은 조카가 자전거 배우라면서 역전에 가서 30원 주고 자전거를 종일 빌려왔다. 처음에는 평지에서 조카가 뒤 붙들고 자전거를 하루 종일 배우게 됐다. 이때까지는 자전거가 그렇게 무서운 줄을 미처 몰랐다.

겨우 혼자 자전거를 타고 서고 내릴 줄 알게 됐다. 모든 일이 선무당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제 자전거 탈줄 안다고 혼자서 기차역에서 부터 내리막길을 그대로 달려 브레이크 잡을 생각도 잊어버렸다. 바로 조양못 물속으로 쳐 박히고 말았다. 아니 죽었다. “이래서 사람이 죽는 구나를 알았다. 다행히 깊지 않아서 물 한 번 거나하게 먹고, 자전거 끌고 나오고부터는 다시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까딱 잘못했다가 조양못 물귀신이 될 뻔했다.

바쁜 세상 살아가다 보니까 조양못을 한참 잊어버리고 살았다. 우연찮게 셋째 형님 고종처남이 서울법대를 나와서 교장 맡아 여자 상고를 짓겠다고 했다. 교육대학 1학년 다닐 때 부탁했다. 학교 짓는다는 것을 1도 모르면서 겁도 없이 감히 나서게 됐다. 처음에는 우리 집 밭과 작은 집 밭을 합한 8천여 평에다 짓겠다고 모내기 하던 논바닥에 길 만들었다. 둑까지 만들었다가 도저히 길이 안돼 못하겠다고 갑자기 바꾼 곳이 조양못 옆 갈매 밭 감나무골(현재 경주여자정보고등학교 자리)’이었다.

감나무골 밭주인들이 대개 아래시래 분이었다. 갈매 밭에는 채소가 잘됐다. 아랫동네는 경로당에서 서당을 잠깐 다닌 인연으로 어르신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경로당 찾아가서 무조건 오늘 저녁에 어르신들을 많이 모아 주시면 막걸리 두 말을 내겠다고 선전해 두었다. 내 돈으로 막걸리 두 말을 시켜놓았다. 술도가에서 시간에 맞춰 배달돼 왔다. 안주는 삶은 돼지고기와 김치를 조금 준비했다.

경로당에 모인 어른들께 일장 연설을 했다. 당시 마을에 전기도 안 들어 왔으며, 전화도 물론 없었다. 텔레비전도 없던 시절이었다. 학교 부지를 내어 놓으면 전기도 들어올 것이고, 도시에 살고 있는 자녀들 전화도 학교에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전했다. 학생들 하숙도 할 수 있으며, 길을 확장해 도로를 포장하면 시내버스도 들어 올 것이라고 선거공약처럼 선전해댔다. 문제는 매매가이었다. 논 값의 1.5배를 드리겠다고 합의하고 경주여자정보고등학교를 설립하게 만들었다. 그런 거짓말 같았던 공약이 지금은 모두 이루어졌다. 조양 못 곁에 학교가 있어서 고향에 들리면 가슴 뿌듯하게 자랑스럽다.

요즘도 마석산 등산가면 그 앞을 지나는데 교사(校舍)도 잘 지어져 있고. 체육관도 들어섰다. 시골에 유치원, 어린이집까지 운영한다. 어린 날 살았던 동네에 이제는 통학버스가 즐비하게 서 있는 것을 보고 가장 흐뭇해하였다. 조양못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조양못은 나와 인연이 깊은 못이다. 어렸을 때의 추억이 서린 못이다. 인터넷 자료에서는 못의 명칭이 조양지에서대제지로 기록해 두었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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