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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기차역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이영백 수필가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1년 07월 09일(금) 13:59

ⓒ 황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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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는 기차역이 있다. 동해남부선에 있는 정다운 관광지 역이다. 불국사역은 경주시 불국동(구정동)에 있다. 불국사기차역은 1918년에 영업을 개시하면서 역에 인접한 불국사의 명칭을 따서 불국사역이라 불렀다. 현재 역사(驛舍)가 준공된 것은 1936년이며, 여객수송을 주로 한다.

고향에 기차역이 있다는 것은 기차역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이다. 초등학교 다니던 유년시절에 불국사기차역은 기와집으로 그때는 그렇게 건물이 높아보였다. ·고를 다니면서 패스포트를 끊기 위해 역사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기차를 통과시키기 위해 사전에 다음 역으로 통지하는 송수화기가 설치돼 있었다. 너무 신기하게 보았다. 역장은 기차가 구내에 들어오면 정모 쓰고, 둥근 테 들고 나가 교환해 통과했음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 기차역 구내를 통해 생필품을 사러 많이 다니기도 했다. 그때에 아랫마을 사람들은 역구내를 가로 질러 통행했다. 역 구내를 자유자재로 다녀도 아무도 탓하지 않았다. 둘러 다니지 아니하고 구내를 통해 지름길처럼 통행했다. 내동면에는 현재 구정광장 로터리에 불국사 시장(市場)이 개설돼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에 가려면 아랫동네 사람들은 기차가 오지 않는 한 그냥 통과해 다녔다.

서당 다니면서 중학교를 가지 못하고 들판에서 일하고 있었다. 전국에서 기차타고 수학여행을 불국사로 왔다. 평소에는 몇 차량(車輛)*만 달고 다녔다. 그러나 수학여행 철이 오면 불국사를 찾아오는 수학 여행단으로 인해 보통 스무 차량은 달았다. 기차에 타고 온 사람 수를 헤아린다면 90×20차량=1800명이다. 새카만 교복 입은 남·여 학생들이 불국사기차역에서 새카맣게 내렸다. 역에서 불국사까지 딱 3.6Km 거리에 띠를 만들어 모두가 비 포장길 걸어서 절까지 올라갔다. 학생들이 재잘거리며 걷는 것도 추억이요, 재미난 모양이다. 도로 양편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환영해 주었다. 꽃 터널을 만들어서 반기었다.

고향 역은 이별과 만남의 장소이다. 군대 가는 사람이 어깨에 출전 띠를 두르고 이별한다. 다른 지방으로 전근 가거나 출장 가는 사람은 가방 들고 기차를 활용해 오간다. 고향을 떠나가는 새색시의 노랑저고리와 붉은 치마입고 친정을 떠나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라떼는 갓 쓰고 곰방대를 들고 다니는 사람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우리 마을에 초교 동기가 집안형편으로 나처럼 중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역에 사환으로 근무했다. 이 친구가 상당한 권한으로 행세하는 것을 보았다. 모두 살기가 어려워 기차표를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정상금액으로 끊지 못했다. 첫 역까지만 끊고 일단 기차를 탔다. 배도 팔고, 미나리도 파는 장사를 했다. 그 장사치들이 거개가 불국사기차역에 내리면 도착지 차표가 맞지 않았다. 그 사람들을 모두 붙잡아 역사 안으로 데리고 가야하는데 이 친구는 법어긴 사람들을 구내 측백나무 곁으로 모아서 몇 푼의 돈 받고 흩어지게 했다. 짭짤한 수입이 돼 보였다.

기차역은 지금의 동해남부선 추억의 선로로 길 위에 길 이야기를 만든다. 과거에는 기차타고 다니면서 부산에서 경주까지 오는 역 이름을 줄줄 외우는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외우려고 해서 외워지는 것이 아니라 동해남부선을 자주 타는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저절로 하나하나 역 이름을 알고, 기억하고 살아왔다. 그 만큼 기차로 생활하던 시절이다. 요즘이야 버스도 많고, 자가용도 많아서 기차 타는 것이 추억용 이외에 별로 이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동해남부선 불국사역에서 기차 타고 196210월에 부산까지 수학여행을 간 때도 있다. 부산역에 내려 용두산 공원을 보았다. 영도다리도 마지막으로 들어 올린 해, 정오에 드는 것도 보았다. 동래에 내려 부산역까지 전차도 타고 빨간색 돈 2원을 낸 것도 기억난다.

활동사진, 영화를 최초로 본 것이 불국사기차역 광장이다. 시골문화가 거의 없던 시대였다. 철도순회문화공연단이 다녔는데 영화상영하기 전에 먼저 사람이 직접 나와서 만담(漫談)을 했다. ‘장소팔과 고춘자 만담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장소팔이가 왜 장소팔이가 되었느냐하면 자기 아버지가 장날 소 팔러 가다가 생겼다고 해 장소팔이 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고춘자 만담가는 여성인데 한 술 더 떠 참 잽싸게 말을 잘 받아넘겼다. 또 얼마나 맛깔나게 재담을 엮어 나가는지 보고 듣는 사람들의 혼을 모두 쏙 뺐다. 영화가 시작됐다. 영화는 외국영화였다. 그러나 말은 우리말로 하니 어릴 때는 정말 신기했다. 외국말 더빙한 것을 우리는 알 리 없는 시골 무지 랭이 소년이었다.

고장에 기차역이 있다는 것은 정말 자랑스러웠다. 웃지 못 할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둘째 형수님이 심심산골에서 시집을 왔다. 기차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살았던 분이다. 시집오자말자 신혼살림 집도 시가에서 4km 떨어진 산골마을인 북토리로 가서 기차를 구경하지 못했다. 머리 길게 기르고 모두 비녀 꽂아서 머리를 갈무리하고 살던 시대이다. 시가에 왔다. 기차오는 소리가 나니까 방금 머리 감으려고 머리카락을 물에다 집어넣었는데 철마소리는 나고 기차는 보고 싶었다. 이때 안 보면 또 언제 볼지 모르니까 물 흐르는 머리카락을 통째로 들고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을 보았다. 지금까지 기억하면서 오늘도 둘째 형수님께 그 이야기를 전하면 웃고 만다.

어려서도 불국사에 불국사기차역이 있어서 많은 추억거리가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오는 202112월에 폐철한다니 그것이 슬플 뿐이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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