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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장날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청림 이영백수필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1년 07월 16일(금) 13:55

ⓒ 황성신문

ⓒ 황성신문
고향 주변의 정기시장이 아닌 5일 장날이 있다. 1·6일은 동방장, 가장 큰 장인 2·7일은 경주 읍장, 3·8일은 입실장, 4·8일이 불국사장이다. 5·10일은 우리가 살던 고장에 장 없는 무심 날이었다.(사실은 불국사에서 가까운 울산장)

불국장은 본래 현재의 자리가 아니었다. 예전 시장터는 현재 삼각로터리가 있던 곳이다. 1962년 제1회 신라문화재가 개최되면서 그곳의 시장을 현재의 불국사초등학교 앞으로 이전한 것이다.

집에서는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을 기다리는 사람이 참 많다. 시골은 장날이 행복한 날이다. 사고 싶은 것을 두고두고 가슴에 5일 동안 묻어왔는데 사고 싶은 그런 물건이름을 시장가는 어머니께 모두 일러 드린다. 그 물건을 꼭 사오라고 신신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시골에서 시장가는 날 쓸 돈을 만들 수가 없었다. 돈이 되는 것은 그 무엇도 없었다. 오로지 농사지은 쌀을 내다팔아야 현금화 할 수 있다. 현금이 있어야 필요한 것을 사올 수 있다. 쌀 곳간의 열쇠는 아버지가 쥐고 있다. 꼭 필요한 것에 대충 금액을 정하고, 금액에 맞춰 쌀을 곳간에서 퍼내어야 현금도 만들 수가 있다.

내다 팔 수 있는 아버지의 지정된 양의 쌀만 가지고는 큰돈을 만들 수 없다. 누나들이 필요한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는가? 셋째누나가 수놓으려면 구정 색실, 수바늘, 수틀, 베갯모 원판, 머리띠, 횃댓보 만들 옥양목 등 자질구레한 물건이 수두룩하다.

아버지가 필요한 것은 딱 두 가지뿐이다. 石硫黃과 멸치였다. 황은 꼭 사야한다. 화롯불 위 사발에다 황을 보글보글 끓여서 버드나무속 깎은 것 양끝으로 찍어 둔다. 그래야 성냥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것도 화로에 불씨火種두고 수제품으로 만든 성냥을 대신해 불을 얻을 수 있다.

멸치는 아버지 일 많이 하고 입맛 없을 때 무 썰어 넣고 멸치 넣어 함께 찌진 무 조각으로 반찬 만들어 먹어야하기 때문에 필요하다. 아버지의 시장 물건구입은 그래 딱 이것 두 가지 뿐이다. 특별히 필요한 것은 갓을 사거나 갓끈, 부싯돌, 라이터 돌 등을 사야할 때는 예외이다.

장날 구경하는 것이 제일 기분 좋았다. 봄날 시장에 가면 눈도 덜 뜬 강아지를 망태에 담아 와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노란 부리로 삐~약 소리를 내는 병아리들이 소쿠리 째 나와 있다. 시골 할머니께서 쑥으로 콩고물을 입힌 노란 쑥떡은 어찌 그리도 배고플 때 요긴하단 말인가! 인절미는 떡 중에 최고인 걸, 먹기도 좋지만 먹어 두면 하루 종일 배를 든든하게 만든다. 그러나 화중지병처럼 그림의 떡이었다. 그저 침만 꼴까닥 삼킬 뿐이다.

복아! 이리 오너라!”

누구인가 뒤돌아보니 큰형이었다. 큰형은 나와 24년 차이가 났다.

큰형님! 불렀습니까?”

그래 이리 온나. 이거 먹어라.”

대답도 잘 못하고 얼른 큰형에게로 간다. 큰형은 시장에서 제일 요긴한 것을 팔고 있었다. 제사상에 오르는 돔베기였다. 큰형에게로 다가가니까 새파란 콩고물을 바르고 나온 인절미가 있다. 너무 고마워 감사하다는 말도 없이 받아먹었다. 오늘 장날 오기를 잘했다. 평생 잊지 못하는 큰형의 인절미 공덕(?)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장을 구경하다 보면 그날에 따라 완전히 그렇게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이 있다. 멍게가 많이 나는 날은 화물차마다 가득가득 멍게를 가지고 와서 멍게가 시장바닥을 점령하고 만다. 또 어떤 날은 전갱이가 많이 잡힌 날은 전갱이시장이 되고 만다. 시장은 가정마다의 훌륭한 식탁을 마련해주는 원천이다. 파가 많이 생산되면 파시장이 되었고, 배가 많이 나오면 배 시장, 참외가 많이 나오면 참외시장 그렇게 그날에 많이 나온 물건으로 시장 바닥을 뒤덮는 시점이 결정된다.

시골 시장하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 있다. 시장은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는 것으로 바로 국밥이다. 새벽부터 끓이고 끓여서 구수한 냄새가 시장 공간을 온통 냄새로 장식한다. 춥거나 덥거나 소고기국밥 한 그릇이 시장에서 최고 대접하는 음식이다. 사돈지간 장날에 만나서 소고기국밥 한 그릇이면 큰 대접이 된다. 금상첨화로 막걸리를 더하면 이는 사돈지간이 아주 돈독하다는 증거다.

우리 고장 불국사장날은 5일마다 정기적으로 섰고, 4·9일에 우리는 먹거리도 얻어먹고, 약장수도 구경한다. 밤에는 가설극장 영화도 보았다. 시골 사람들 문화의 교류장소요, 배움의 장소이기도 했다.

장날이 요즈음도 존속해 불국공설시장으로 간판을 걸어 두었다. 노점 위주가 아니고 상설 시장화로 변해간다. 상가가 많이 들어서서 새로운 상가를 이루었다.

요즘도 간혹 고향 찾아 들리면 내자의 바구니가 가득해진다. 또 상설된 마음의 선술집 진주집에 들러 막걸리와 전을 먹고, 나 혼자만이 장날의 향수에 젖어본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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