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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같은 시래거랑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이영백 수필가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1년 08월 06일(금) 14:24

ⓒ 황성신문

ⓒ 황성신문
도랑은 어디에나 있다. 도랑보다 조금 더 큰 것을 우리 동네에서는 거랑이라 한다. 동네에도 거랑이 지나고 있다. 거랑이 커지면 천()이 된다. 경주에는 형산강 중류로 남쪽에는 남천(南川)이 있고, 북쪽에는 북천인 알천(謁川)이 있다. 서쪽에는 서천이 있고, 동쪽에는 천이 없다. 대신에 동에는 명활산성이 있다.

경주 남천을 따라 남으로 가면 시래천과 원동천이 모인다. 불국사 쪽으로 시래거랑이 있다. 이 시래천, 동해남부선 부산 쪽으로 가는 길에 시래철교(鐵橋)가 있는 곳이다. 남천인 시래천이 바로 시래거랑이다. 동네에서는 시래거랑으로 통한다. 요즘 구글이나 지도 서비스에 들어 가보면 그저 남천이라고만 적혀있다. 나는 굳이 이곳을 시래거랑으로 불러 주었으면 더 좋겠다. 공식적으로는 남천이다. 경주를 남쪽으로 둘러싸고 흐르는 상류의 거랑이다.

지금부터는 남천이 아니고, 전설 같은 시래거랑 이야기. 지금까지도 다리를 못 놓고 있지만, 시래거랑은 과거에 금모래, 은모래도 참 많이 쌓인 거랑이다. 어린아이들이 놀기에도 좋은 그런 곳이다. 풀베기 하다가 싫으면 모래밭에서 풀 내기 경기한다. 5m정도 줄긋고 돌 세워두고서 낫으로 맞히면 이기고 못 맞히면 져서 베어 놓은 풀을 한 아름씩 주기다. 또 기마전해 이기고 지는 팀에 따라 풀을 빼앗아 받기도 하는 놀이도 한다.

우리는 봄이면 배도 고프고 군것질이 생각난다. 앞산 밀개산으로 오른다. 시래거랑을 건너서 밀개산이 그곳에 있다. 건넌 곳, 산 밑이 상보 용천이라고 있다. 산으로 오르면 벌써 어서 오라는 듯이 진달래가 소복소복 피어서 연분홍색으로 하늘거리며 손짓한다. 올라가면 산토끼도 놀라 산꼭대기를 향해 줄달음친다. 도라지꽃이 우리를 유혹하지만 가진 호미가 없다. 도라지는 보기보다 참 깊이 박혀서 캐 먹을 엄두도 못 낸다. 그러나 마른나무 꼬챙이를 찾아서 마침내 보라색 꽃을 찾아 뿌리를 캐내어 흙 닦아버리고 입에다 넣는다. 사근하다 못해 아리다. 도라지꽃 따라 자꾸 산으로 오른다.

제법 소나무에 햇순이 나오니 송홧가루가 우리를 뒤덮는다. 시래거랑을 내려다보면서 겁도 없이 산으로 오른다. 노루와 고라니가 저만치 놀라서 줄행랑을 친다. 이제 깊이 산 오름에 겁도 나고, 시래거랑을 기준으로 해 다시 내려오고 만다. 시래거랑이 없다면 우리는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대구 와룡산에서 처럼 개구리 잡으러 간 소년이 되고 말았을까?

방어리에 사는 새하얀 할아버지가 하루도 거르지 아니하고 쌀 서 되를 괴나리봇짐에 짊어지고 읍내로 다닌다. 당시 할아버지래도 오십대 후반이다. 상투 틀고, 지팡이 짚고 한복입고 다닌다. 얼마나 거치적거렸으면 겉에 걸친 두루마기를 동동 걷어 허리에 질끈 묶어 다닌다. 보기가 참 민망한 모습으로 매일 시래거랑을 건너다닌다.

할아버지 어디 갑니까?”

읍내 안 가나.”

어르신들은 경주 시내를 꼭 읍내라고 말한다.

읍내는 말라고(무엇 하려고) 가시는 데요?”

들은 몰라도 된다. 마아 고마 물어라.”

알고 보니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읍내 역전아가씨 집에 쌀 서 되를 짊어지고 가서 용돈도 하고, 아가씨도 구경하러 다닌다. 아가씨를 사는 데 삼백 원하던 시절에 쌀 석 되 값은 육백 원이다. 차비하고 막걸리 한 잔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금액이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돈다.”고 하는 것이 맞다. 비가 오는 날 제외하고는 농사지어 읍내 다니는 것으로 낙을 삼고 살던 시절이다. 시래거랑을 건너면 그렇게 행복하던 시절이다.

방죽이 있던 그 때는 여름이면 홍수가 자주난다. 홍수가 나도 방어리(防禦里) 사람들은 시래거랑을 건너야 자기 집으로 오가던 시절이다. 어느 해 홍수가 나고 며칠 지나서 물이 많이 줄어 거랑을 건너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건너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사연을 가지고 지나다닌다. 넷째누나가 부산에 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건너 중뱅이中房마을에 누나친구 집으로 가려는데 이런 일이 있나? 시래거랑 물이 불어서 못 건너고 있다. 어린 우리가 거랑으로 가서 잡아 건너 주려고 해도 우리들로서는 물살이 너무 세다. 마침 대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건너간다고 누나보고 같이 건너자고 한다. 아무래도 눈빛이 이상하다. 누나가 그 대학생의 손을 덥석 잡고서 그만 같이 따라 건너간다. 우리는 어려서 같이 건너지도 못하고 마냥 발만 동동 굴린다.

시래거랑을 건너면 술집이 하나 있었다. 술집 아가씨 두고 술청을 벌인 집이다. 어른들은 시래거랑을 건너 그 술청으로 뻔질나게 들락거려댄다. 저녁 어둑해져서야 늦게나마 집으로 돌아온다. 거랑건너기 전에 삼박골에서 삵인 납닥발이가 흙을 퍼 붓는다. 그런 후에야 혼비백산을 하고 술집 찾기가 뜸해진다.

저녁 늦게 다니지 말라는 어른들의 소리를 잊어버린 모양이다. 거랑을 건너다니는 사람들 한 사람마다 이러한 사연들은 마치 전설 같은 시래거랑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을 뿐이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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