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황성신문 |
|  | | ⓒ 황성신문 | | 모든 동물은 먹었으므로 배설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은 배설하면 모든 카타르시스(catharsis)가 해결된다. 인간이면 특정한 장소로 지정된 곳이 있어야만 배설할 수 있다. 하등동물은 이러한 것을 알 수가 없기에 아무데서나 해결한다. 사람이 고등동물인 것은 지각이 있기에 그 장소를 잘 알고 사용할 수 있다.
인간이면 배가 고파서 음식도 먹어야 하겠지만 언젠가는 배설해야 한다. 배설하는 장소를 우리 동네에서 그때는 ‘측간’이라 부른다. 경상도 어르신은 발음을 〔칙간 혹은 칫간〕이라 하기도 한다. 학교를 다니지 않았을 때는 오로지 측간〔칫간〕으로만 통했다. 학교 다니고부터는 화장실을 ‘변소’라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말하기 민망할 때는 ‘작은 집’에 간다고도 한다.
왜 측간인가? 측(測)자가 ‘측량할 측’, ‘잴 측’이다. 측간은 측량하는 간살이다. 무엇을 측량하는가? 배설물을 떨어뜨리려면 측량해 잘 떨어 뜨려야 하는 모양이다. 같은 한자문화권인데 1995년에 북경공항에서 대기하다가 화장실을 찾았다. 그 명칭이 영문으로 ‘Toilet’이라 붙여 두고, 중국어로는 ‘측소(測所)’라 해 두었다. 바로 측량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Toilet의 어원은 프랑스어 ‘망토(Toile)’에서 왔다. 길가다 급하면 망토와 양동이를 들고 다니는 화장실 업자에게 빌려서 두르고 볼일을 처리했다. 지금 생각하니 서양에서도 참 불편하게 살았다. 외양은 그럴듯해 보였는데 사실은 생활에서 더 민망했다.
초교 입학 전부터 살았던 초가삼간에서는 측간이 두 군데가 있다. 집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 쪽 앞에 보이는 것이 남성이 사용하는 측간이다. 큰 채 오른쪽 뒤에는 여성용 측간이 있다. 이는 철저히 구분돼 활용하고 있었다. 다만 남자 소변만으로는 큰 채 여성측간 들어가는 머리방 오른쪽 벽에 붙어 있어서 조금은 남성, 여성 구분에서 민망하기도 하다. 그러나 남성이 소변을 보고 서 있으면 여성은 여성측간에 들어가지 않고 남성이 사용 끝날 때까지 잠깐 기다린다. 참으며 배려를 배운다.
측간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묻을 항아리보다 더 크게 땅을 파고, 커다란 항아리를 묻었다. 항아리 아가리 위에다 발판을 걸쳐두면 필요한 작업은 이루어진다. 지상에 있는 벽과 지붕은 꼭 인디언 집 짓듯이 네 개의 긴 나무를 꼭대기 한 곳에서 묶었다. 짚으로 엮은 이엉으로 밑에서부터 대문 쪽을 비우고, 둘러막아 올라가면서 지붕이 마무리된다. 그럴 사한 측간이 완성된다. 물론 앞을 가려 주어야 하는데 사실 문은 없다. 그리고 휴지대용으로 지푸라기를 접어서 그 자체로 묶어 여러 개를 바구니에 준비해 둔다. 사용 후에는 측간 항아리에 바로 집어넣으면 된다. 왜 측자를 사용한 명칭이 되었느냐하면 이런 측간을 보면 그렇게 ‘측량할 측’자를 쓰지 않고서는 안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측량하지 않으면 항아리 속의 내용물이 튀어 오를 수밖에 없다. 정말 측량을 잘 해야 한다. 배설하기 참 힘들다.
초가삼간에 살면서 울타리는 모두 생나무 울타리다. 이것도 담을 치려면 많은 일꾼과 돌과 흙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인력동원으로 인건비가 들어가기에 생략하는 좋은 방법이 생나무로 울타리를 설치하는 방법이다. 심어 둔 나무를 바탕으로 중간에 대 나뭇가지를 덧대고 칡 줄기로 묶으면 울타리가 완성된다. 설령 생나무가 부족하면 잘라 둔 나뭇가지를 덧끼워 세워 막으면 된다. 경비가 안 드는 울타리 만들기다.
울타리에는 나무가 부족한 곳에서는 숭숭 뚫려있기도 하다. 간혹 그 사이로 들짐승이나 쥐들이 지나다니기도 한다. 어두운 밤이나 달 밝은 밤이 오면 화장실 나가기가 그렇게 싫다. 어두우면 어두운대로 무서웠고, 달이 밝으면 생나무 울타리 사이로 곧 무엇이 기어 다닐듯해서 더 무서운 것이다.
늦은 가을날 메주콩을 쑤고 나면 배가 고파 삶은 콩 많이 먹은 날 밤에 설사가 나기 마련이다. 밤 화장실 가기가 죽는 것만치 어렵고 두려워했다. 간혹 뒤 곁 뽕나무 가지에 부엉이 울고 가면, 삵인 납닥발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사랑채 아랫집을 세 내어 주었는데 금자네 집이다. 금자 이모가 밤에 화장실 갔다가 뽕나무가지 위에 납닥발이가 눈에 불을 초작~ 초작~ 흘리고 있었다. 이를 보고서 지레 질겁하여 놀라 그만 화장실에 빠져서 난리가 났던 적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화장실 치기는 보통 머슴들이 하지만 치고 난 뒤에 새로 물을 채우는 것은 나와 작은 머슴의 차지이었다. 어렸을 때라 그랬는지 보기보다 그 항아리는 왜 그렇게도 컸던지 모르겠다. 조양 못으로 들어가는 도랑물을 무지개로 이동해 모두 채우고 나면 기운이 다 빠지고 만다. 아버지는 용케도 잊어버리지 않으셨다.
“칫간에 물 다 채웠나?”
“예.”
“그러면 짚 거풀을 넣어야지.”
짚 거풀이란 물만 채워두면 물이 틔어서 측간 사용이 어려워지니 지푸라기를 꾸겨서 물만 있는 항아리에 넣어 거슬러두라는 것이다.
새벽 네 시가 되면 집안 전체 사람들을 모두 깨우고 마는 이유도 남자들 모두가 개똥호미와 망태가지고 견분(犬糞)주어 와야 한다. 물만 채운 항아리에 갖다 넣어서 거름을 빨리 만들어야 밭에 활용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하나에서 열까지 꿰뚫고 있어서 우리는 꼼짝 못했다.
이제까지 아버지의 측간공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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