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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이영백 수필가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1년 09월 17일(금) 13:45

ⓒ 황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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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시대만해도 머리에 쓰고 다니는 갓에 의해 신분고하를 구분했다. 물론 내가 어렸을 때까지도 일부 그러한 제도가 남아 있었으니 시대읽기의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갓을 쓰고 다니지는 아니하였으니 시대는 확실히 바뀌었던 것이다. 갓을 쓴 경우는 결혼한다고 관례(冠禮)하던 날 잠깐 쓰고 기념사진 촬영을 한 것이 전부다. 그러나 나와 51년 차이 나는 아버지 시대에는 분명 갓이 그렇게 중요하였했던 것이다.

갓은 확실히 구시대적 산물이지만 갓으로 당시 사회에 있어서 신분을 겨냥해 볼 수 있다. 시골에 사는 생원이면 제법 큰 테의 갓을 사용할 수가 있다. 신분에 따라 사용하는 갓은 바로 그 갓의 크기로부터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 시대에는 엄연한 사회적 규범이었기 때문이다.

갓은 통영(統營)으로 유명하다. 시골에서 갓 사려면 상당한 쌀을 내다팔아야 갓 하나 준비할 수가 있다. 온전한 갓을 가진다는 것은 곧 자기신분이 확인된 것이요, 신분의 가치가 갓에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 집 사랑채에는 천장 한 구석에 갓집인 반구(半球)가 하나 달려 있었다. 아버지가 출타하려면 제일 먼저 머리 손질하고, 망건*1을 쓰고 다듬는다. 이제 한복을 차려 입어야 한다. 속옷에 바지를 차려 입고는 버선 신고 댓님 묶으며, 저고리에 조끼 걸치고 외출용인 두루마기를 덧껴입었다. 나는 그 동안에 의자 놓고 반구의 문을 열며 갓과 탕건*2을 내린다. 솔로 갓과 탕건에 먼지 떨며 아버지께 드리려고 준비한다. 탕건 얹고 갓을 고쳐 쓰며 면경에다 확인한다. 철에 따라서는 가끔 목에 두르는 목도리도 챙겼다.

또 출타에 없어서 안 되는 것이 기름먹인 노란 종이우산이었다. 곰방대와 담배 지갑과 부싯돌 일습을 챙겨야 했다. 지갑에는 노잣돈도 챙겨 넣는다. 이렇게 하면 아버지 출타준비가 완료된다. 물론 철따라 입는 한복으로 다르겠지만, 그래도 사돈집에 출타하려면 더욱 옷매무새 뽐을 내고 나가셨다.

갓을 쓰고는 뛰지도 못하고, 비가 내려도 달리지 못했다. 그것은 당시 갓 쓴 양반이 지켜야 하는 도리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날이 맑던 흐리던 상관없이 출타 때에는 평소 잘 보관해 두었던 노란 종이우산을 반드시 챙기는 것이다. 아버지의 갓 쓴 모습은 어렸을 때 자주 보았다. 나의 눈에 사진처럼 찍혀있다.

일반적으로 흑립(黑笠)’을 보통 이라고 하며, 백관들이 관청에 드나들 때 착용했으나 조선시대 초기부터 백관의 편복에 착용했다. 갓은 평량자(平凉子)’·‘초립(草笠)’ 등의 단계를 거쳐서 마지막에 정립된 조선시대 입제(笠制)의 귀결점으로 양반신분만의 전용물이 됐다.

조선시대에 착용한 갓을 본다. 말총으로 만든 마미립(馬尾笠)’, 돼지털로 만든 저모립(猪毛笠)’, []를 실같이 가늘게 해서 만든 죽사립(竹絲笠)’, 죽사립 위에 나()와 주()를 입힌 과라립(裏羅笠)’, 돼지털과 대를 섞어 만든 죽저모립(竹猪毛笠)’ 등이 있다. 시대에 따라 모자의 높이와 양태(凉太)의 넓이가 변했으며, 싸개의 종류에 따라 등급이 달라지기도 했다. 갓은 조선시대 중엽에 가서야 비로소 대체적인 양식이 갖추어진다.

나는 은근히 걱정이 들었다. 어른이 되면 갓을 쓰고, 갓 쓰는 절차도 절차지만 거추장스럽고 할일이 많을 때는 어찌해야 하나 걱정이 늘 앞서기도 했다. 천만다행인 것은 개명한 시대를 만나 결혼하는 날 집에서 관례 할 때만 갓 한 번 써 보았다. 그리고 사진 촬영하고서는 갓과는 영원히 이별했다. 이제 아버지 세대와 나의 세대가 그렇게 확연히 달라지고 말았다. 갓으로 인한 시대 구분이었다. 이제 갓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사라졌다.

그래도 나는 조금 전 시대와 연결된 이러한 생활상을 보고 전하는 전도사 역할이라도 한 것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기는 요즘 시대에 은근히 모자 쓰는 것도 잘 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등산이라도 할양이면 어쩔 수 없이 등산모를 가져간다. 특히 겨울에 등산할 때는 귀까지 덮이는 등산모가 필수다. 다시 생각해도 개명하길 잘했다.

현재까지 갓을 쓰지 않고 사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갓 쓴 아버지 모습은 추억이 된다.

 

*1.망건 : 성인 남자가 상투를 틀 때 머리털을 위로 걷어 올리기 위해 이마에 두르는 건().

*2.탕건 : 조선시대 성인남자들이 망건의 덮개로 쓰거나 갓 아래에 받쳐 쓰던 의관.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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