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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대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1년 10월 01일(금) 14:21

 

ⓒ 황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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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담배를 줄담배로 피워댔다. 조금 전 시대까지도 담배를 피우려면 담뱃대가 있어야 했다. 담배지갑이라고 해서 지갑의 배가 불룩한 것은 그 속에 마른담배 잎을 부셔서 넣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냥이 생활화 되지 않았을 때는 부싯돌과 보드라운 쑥 말린 것을 비벼서 솜처럼 만들어 함께 가지고 다녔다. 불룩한 담배지갑과 곰방대는 한 세트처럼 딱 어울린다. 담배지갑에 곰방대를 함께 싸서 허리춤에 쿡 찔러 넣고는 일하러 나다녔다.

어렸을 때 작은 아버지와 함께 일을 많이 다녔다. 작은 아버지도 담배를 즐겼다. 고의춤에 담배지갑과 곰방대는 항상 같이 가지고 다녔다.

작은 아버지! 담배가 그렇게 맛있어요?”

아니, 심심해서 피우니까 심심초이지.”

심심해서 심심초! 그러네요.”

웬만한 집마다 들여다보면 담뱃대 종류가 많이 있었다. 사랑채에 아버지가 전용으로 피우는 담뱃대만 해도 여러 개가 있다. 제일 휴대하기 편한 곰방대가 있고, 집에서 일반 손님이 오셨을 때 피우게 하는 (길이가 반팔정도로 적당한 길이인)일반 담뱃대, 일하고 집에 들어와서 낮잠 주무시기 위해 편히 쉬면서 피우는 장죽(長竹) 담뱃대 등이 있다. 또 여분으로 일반 담뱃대는 적어도 서너 개는 더 준비되어 있다. 왜냐하면 담배를 담뱃대에 재워 피우면 진이 나오는데 이로 인해 막혀 버리면 이내 다른 담뱃대를 찾았다.

담배를 많이 피우면 자연히 담뱃대에는 진이 막히는 데 이때 아버지는 나를 불렀다. 댕댕이 줄을 거둬 말려놓은 것을 줄기에 잎줄기를 훑어 버리고 대꼬바리에 쑤셔 넣었다. 담뱃대 물 주리에 나오는 댕댕이 줄을 조심스럽게 잡고 댕댕이 줄을 당겼다 밀었다 반복해 담뱃대 속의 진을 모두 바깥으로 쫓아내 버린다. 댕댕이 줄은 잎이 난 자리에 잎은 떨어지고 까칠한 잎 새 흔적만 남아서 진을 훑어 내는 데는 적격이다. 이를 섬돌에 탁탁 치면 진이 거개 빠져나오게 된다.

집에서 한가하면 장죽을 내어 피운다. 장죽은 그 길이가 참 장대하다. 사랑채 방에 누우시면 장죽 대꼬바리는 방에서 사선으로 이쪽에서 저쪽 끝만치 길어서 평소 담뱃대는 방에다 두지도 못한다. 이 장죽은 왜 피우느냐하면 단순히 재미를 보기 위해서였다. 담뱃대가 하도 길어서 본인이 담뱃대에 불을 붙이지 못한다. 누구든지 다른 한 사람이 담뱃불을 붙여준다. 저만치 멀리 누워서 볼에 바람을 모두 빨아들여 쪽~딱하게 되도록 힘들여 빨아대야 한다. 담뱃대에 불을 붙이면 불붙이기 위해 그렇게 쭉쭉 빨아대기는 처음이다. 지나고 보니 이것이 담뱃대의 진을 직접 입속으로 가져 오지 못하므로 이렇게 길게 만든 장죽으로 피웠던 모양이다. 이것이 상당히 과학적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곰방대는 사용이나 휴대하기도 모두 편리하다.

담배를 남성만 피우는 것은 아니다. 여성도 담배를 피우게 된다. 엄마는 마흔 넷에 나를 낳고부터 마마에 산후후유증과 신경통이 심해서 그것을 잊어버리려고 담배를 배웠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나 때문에 담배를 배운 셈이다. 연세가 들면서 더욱 담배에 손이 자주 갔다. 물론 돌아가시는 날에도 담뱃대를 물고 돌아가셨다.

시골 교사를 하고 있는 터에 그 해는 유독 음력 설날도 공휴일을 정하지 않고, 초사흘 날 토요일이 되어서야 늦게나마 식구들과 함께 큰형 댁에 들렸다. 큰방에 들려 큰형께 세배를 드리고 난 후 친족 계중문제로 잠시 이야기를 길게 하고 있었는데 사랑채에서 돌벼락 치는 소리로 엄마가 나무랐다.

왔으면 세배를 해야 하지. 뭐하고 큰방에만 쳐 박혀 있느냐?”

평생에 어머니께서 호통 침과 비속어를 그렇게 한 것은 처음이었다. 부리나케 신발도 안 신은 채 사랑채로 달려갔다. 마침 이웃 할머니께서 와 계셨다. 즉시 세배 드렸다. 자리에 앉자말자 엄마는 담배 한 대 재웠다. 성광표(聖光票) 성냥으로 확 그어 담뱃대에 불을 댕긴다. 이내 말씀했다.

야야. 나는 오늘 네 아버지한테 갈란다.”

하면서 담뱃대를 입에 물고 있다가 방바닥에 그만 툭 힘없이 떨어뜨렸다.

? 뜬금없이 아버지는요?”

그리고 돌아가셨다. 엄마는 곰방대는 아니지만 담뱃대를 입에 물고 돌아가셨다. 남정네였더라면 일하다 곰방대를 물었겠지만 여인네로서 평생 속이 안 좋아 애용하던 담뱃대를 물고 돌아가셨다. 어머니께서 그렇게 일순간에 한 마디 툭 던지고서 그만 돌아가셨다. 1976년 음력 정월 초사흘에 평생 애용하던 담뱃대를 놓아두고 돌아가셨다. 애고, 애고 울면 무엇 하리. 나는 그날 금방 고애자(孤哀子)가 되고 말았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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