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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아버지의 혜안으로 빚은 약 | ⓒ 황성신문 | |
봄이 온다. 봄이 오면 나이어린 나까지도 공연히 분주해진다. 아버지의 엄한 명령이 내려오기 때문이다. 봄이면 양지바른 곳에서 햇볕만 쬐는 것이 아니다. 들판으로, 골목으로 소쿠리 들고 봄나물 아닌 봄풀을 캐오라는 것이다. 베는 것도 아니고 꼭 뿌리째 캐 와야 한다고 하였다. 골목 안에서는 흙이 단단하여 뿌리째 캐기가 어렵다. 겨울동안 아무 것도 심겨져 있지 않았던 밭에서 아무도 모르게 봄이면 새로 돋아나는 풀이 있다. 이 풀들을 모두 뿌리째 캐야 되는 것이다.
하루 종일 밭마다 돌아다니면서 봄풀을 뿌리째 캐 모으는 것이다. 그래도 갈매 밭에서 자란 봄풀들은 잘 뽑힌다. 수북이 캐 모아 놓아도 여덟 살, 어린 나에게는 아주 많다 싶은데 아버지 눈에는 아직도 적다하면서, 안 된다고 하였다. 한 마당 가득 캐오라는 것이다. 아직 봄이라고는 하지만 간혹 찬바람이 불어오는 밭에 나가 혼자 낑낑대면서 봄풀을 자꾸만 캐야 하는데 지친다. 한편으로는 서글프고 괴로운 일들이다.
이제 겨울 지나면서 싹이 새로나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는 봄풀을, 그것도 뿌리째 캐야하는 내 심정을 그 누가 알겠는가! 내내 봄풀을 캐면서 미안하기도 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엄명을 거스를 수도 없고, 봄풀을 뿌리째 자꾸만 캐서 사흘째 집으로 가져 와야만 하였다.
연 사흘째 봄풀만 캐 모았더니 마당 한 구석이 온통 새로운 봄풀 무더기가 되었다. 그제야 아버지는 “그만 됐다. 많이도 캐 왔네. 이제 됐다. 막내! 고생 많이 했다.”고 하였다. 이러한 봄풀을 왜 캐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으니 무척 궁금하였다. 사흘간 나를 괴롭힌 것은 봄풀이 아니라 봄풀을 캐야하는 아픈 마음이다.
아버지는 먼저 봄풀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독풀을 가려낸다. 나는 독풀이 무엇인지도 모를 때다. 그냥 봄풀만 캔 것뿐이다. 수북이 쌓인 봄풀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나 궁금하던 차에 2차 작업명령이 또 떨어진다. 캐온 봄풀 모두를 도랑에 가져가서 묻은 흙을 깨끗하게 씻어 오라는 것이다. 이제는 바지게에다 봄풀을 담아서 도랑가로 지고 이동한다.
도랑가에 부어 놓은 봄풀을 물에다 넣기 전에 도랑물을 막대로 거슬러 걸쳐 두고 봄풀을 씻었다. 참 이상하다. 벌써 사흘 째 뿌리를 캐어서 시들어 있었는데 물에 들어가니까 언제 그랬느냐 듯이 금방 파릇파릇하게 생기가 도는 것이 아닌가?
이제 봄풀 캐 온 전체를 무쇠 서 말 큰솥에다 모두 부어 넣었다. 꾹꾹 눌러서 솥에다 넣고서 물을 적당히 붓고 솥뚜껑을 눌러 닫았다. 또 3일간 밤낮으로 불을 때기 시작한다. 봄풀에 독풀을 가려내고 끓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아련하고 향긋한 풀냄새가 나다가 마지막 사흘째 끓이니까 처음의 냄새는 간곳이 없고 새카만 조청만 남고 말았다. 조청이 된 그 봄풀들의 엑기스를 양푼에 퍼 담아 식힌 후에 여럿이 둘러 앉아 밀가루를 놓아두고 돌돌 굴려서 환(丸)을 만들었다. 작은 콩알만 한 환약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시렁 위에 보관해 두었다.
나의 궁금증이 더하였다. 그렇게 힘들게 봄풀 캐서 사흘이나 끓이고, 양푼에 퍼 담아 밀가루와 합하여 작은 환약을 만들어 두고만 말았다. 이것을 어디다, 어떻게 사용할까 매우 궁금하였다.
“아버지, 환약 어디에다가 씁니까?”
“그래. 그것이 궁금하냐? 안 가르쳐 주지!”
“아이고 내가 캐온 봄풀인데 좀 가르쳐 주이소?”
아니나 다를까 환약을 다 비비기도 전에 벌써 그 사용처가 생기고 말았다. 아래 집에 세든 아저씨가 속이 매우 거북하고 신약을 먹어 보았는데 속만 더 아프다고 한다. 우리 집에 어찌 만병통치약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부인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마치 약사처럼 제 빨리 처방을 내렸다.
“이 약은 보신약도 아니며, 신령한 영묘약도 아닙니다. 그저 집에 가지고 가서 어른은 한 번에 아홉 알씩 먹고는 물마시고, 어린아이는 세 알만 먹어도 저절로 속이 안 아플 겁니다.”라고 마치 용한 약사처럼 말씀 하였다.
그러나 정말 신기하다. 신약을 아무리 먹어도 낫지 않았는데 무료로 나누어 준 그 만병통치약을 먹고 나으니 그만 소화로 이어져 ‘그러∼륵… 큭!’트림하게 된다. 그렇게 아프던 속이 싹 가라 앉아 버렸다고 한다.
“아이고! 우리 남편이 벌써 다 나았다고 하데 예. 고맙심더. 약값은… 어짤까요?”
“약값은 무신…. 마∼됐습니다. 나았다니까 다행입니다.”
부인을 돌려보냈다. 누구든지 속이 더부룩하고 거북하면 성인은 이 아홉 알의 만병통치약으로 아주 편리하다. 사실 아버지께 여쭤보아도 아버지가 무슨 약사도 아니고, 의사는 더더욱 아니다. 과학적인 이유나 근거를 아실 리도 없다.
“아버지 그것이 진짜 만병통치약 입니까?”
“아이고! 네가 봄풀 뜯어 온 것이제. 약은 무신…. 그저 먹고 나았으니 되었지 않은가.”
사실상 봄풀은 좋은 약효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슨 분석으로 그렇게 나온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저 배 아픈데 봄풀 기운이 들어가니까 50%는 소화를 도왔고, 나머지 50%는 잘 낫는 약 먹었다는 심리적 효과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저러나 아버지 만병통치약은 우리 마을에 특히 여름에 많이 먹었거나, 무엇을 잘못 먹고 속이 아플 때는 특효약이므로 그 이름이 그렇게 만병통치약으로 정하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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