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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석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이영백 수필가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1년 10월 29일(금) 14:51

ⓒ 황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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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골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천막을 펴서, 바닥을 훔치고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정답게 앉을 수가 있어서 참 편리하다. 조금 전 시대만 해도 시골 잔치할 때나 많은 사람이 모이면 앉을 자리는 곧잘 멍석을 내어놓았다. 짚으로 한 올 한 올 정성들여 엮어서 짠 멍석을 사용했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돌돌 말아서 처마 안에 차례로 쌓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펴서 활용한다.

멍석을 주로 사용한 것은 농사를 지어서 탈곡한 후에 저장했다가 벼 말리기 할 때도 쓰인다. 멍석을 펴서 가마니의 벼를 부어 고무래로 곡식을 뒤집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멍석이 많다는 것으로 곧 가정경제의 척도가 된다. 우리 집에는 멍석이 열 개 정도 있었다. 멍석도 세월을 오래 살면 모퉁이가 닳아 버려서 자꾸 줄어지다가 기어이 폐 멍석이 되고 만다. 그러나 웬만해서 폐 멍석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멍석 한 번 만들기가 매우 힘들고 대단한 재주가 없이는 엮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멍석 없는 집에서는 다른 집의 멍석까지 빌리러 오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멍석말이라는 것이 있다. 멍석말이란 예전에, 권세가에서 사람을 멍석에 말아 놓고 뭇매를 치던 사적인 형벌이다. 동네에서 협조를 잘 하지 않거나 못된 짓을 했을 때 벌주는 방법이다. 물론 이 벌주기가 관에서 공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권세가들의 전용이 되기도 해 폐단이 되어서 급기야 사라지긴 했다.

우리 집에는 멍석을 자주 사용한다. 밥 먹을 권식이 이십 여명이 넘으면 아예 마당에 멍석을 내다 펴서 비로 쓴 후에 사용했다. 밥상이 멍석으로 배달돼 진열된다. 마치 잔치할 때 마냥 개별상이 차려진다. 큰 채 처마에 남폿불을 달아 불이 마당에 밝아진다. 마당 전체가 환한 곳에서 저녁을 먹는다. 마당 둘레에는 서너 마리 강아지가 식사하는 주인을 호위하듯 지킨다. 일찍 홰를 타고 닭 통에 들어간 닭들은 저들에게는 밥 주지 않는다고 고고~ 거린다. 외양간에 들어가지 못한 황소는 기분 좋게 한 번 울음을 울어 주어 시골 정취를 소 울음으로 한층 돋운다. 일찍 소쩍새가 저녁에 맞춰 소~, ~억 농사가 잘되어서 솥이 적다고 울어 풍년을 미리 알려 준다.

일찍 저녁 먹고서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저마다 멍석에 팔베개하고 드러누워 하루의 피로를 푼다. 머슴들은 내일 먹일 여물 썰기에 바쁘고, 누나는 형수와 함께 여름 빨래를 다림질 한다. 손잡이 달린 둥근 무쇠 다리미에 벌건 숯불이 이글거린다. 조금 지나면 불꽃이 사라지고 입으로 불다가 다시 부채를 들고 불기운 나도록 부친다. 불이 다시 살아 뜨거워지면 다림질이 자꾸 바빠진다. 뿐만 아니고 양푼에 찬물 갖다 두고서 너무 많이 마른 빨래는 양푼 물 한 모금 머금어 입으로 뿌린 후 꼽꼽하게 한 후 다림질한다.

어린 우리들은 숙제 중에 별자리 관찰로 들어간다. 저녁 일찍 뜬 금성(金星)은 개밥 줄 때 나온다고 개밥별이라고도 하고, 반짝반짝 빛이 새로 난다고 샛별이라고도 부른다. 저녁 끝난 시간 북극성이 더욱 선명하다. 은하수가 청명해 견우·직녀가 서로 슬픔에 기별하듯 오작교 건너 마주보며 깜빡거려댄다. 여름 별자리 찾아 그림으로 그리고, 별자리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멍석 위에서는 하늘의 유성(流星)인 별똥별이 어디로 간 것인가에 대해 구구한 이야기도 많아진다.

어머니는 노란 옥수수 삶아서 멍석꾼들에게 내어 놓는다. 햇고구마는 금방 밥 먹었는데도 한 개를 더 먹겠다고 손이 자주 간다. 수정과가 나오면 어린 우리들은 자러 가라는 신호인데도 그저 어른들과 함께 어울리려고 눈이 감기는데도 오랜 시간을 멍석에서 비비댄다.

멍석이 돌돌 말려 어느 샌가 처마 밑으로 쌓아지면 오늘 일과가 끝이 난다. 모든 식구들이 내일을 준비하러 잠자러 가면 돌돌 말린 멍석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내일 저녁에 다시 마당에 펴지면 만나자는 듯 들린다.

시골에서는 멍석도 큰일을 해 내는 중요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그 해에도 재주 좋은 셋째형이 멍석을 새로 만든다고 짚 추리는 일을 다시 시작한다.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와 셋째형만 멍석을 만들 줄 안다. 그 때에는 그것도 큰 재주에 속한다. 세끼를 꼬아 멍석 기본 틀을 만들어 놓고 추려진 짚을 한 올 한 올 비벼 꼬아서 멍석 엮는다. 멍석 만드는 손에는 짚을 야물게 비틀어 엮기에 너무 힘들어 손가락마다 터져서 피가 맺히고 드디어 헝겊에 밥 발라 밥참한 손가락이 늘어간다. 어느 샌가 마당에 흰 눈 나릴 때 멍석 만드는 계절이 돌아오면 힘은 들었지만 멍석을 마무리 지어서 돌돌 말아 내년에 사용하고자 보관한다.

새로 만든 멍석은 서로 앉으려고 한다. 자연히 오랜 된 멍석은 그 사용빈도가 줄어든다. 그러나 새 멍석도 언젠가는 폐 멍석이 될 것이다. 우리 인간도 저네들과 같이 젊은이를 좋아하고, 나이 들고 병들면 모두가 싫어하는 것인가? 멍석도 사람과 똑 같아서 새것만 좋아한다. 오랜 멍석은 바닥이 닳아서 앉을 때 깔끄럽지 않아서 좋은데 그런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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