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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무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1년 11월 12일(금) 15:17


ⓒ 황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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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경주(慶州)에는 눈이 많이 내리곤 했다. 농촌에서 눈이 많이 오면 제일 곤란한 것이 우물 물 긷기와 나무 가지러 가는 일이다. 가장 먼저 눈길을 터 주어야 한다. 눈이 많이 올 때는 7050Cm나 되어서 어린 우리들은 학교는커녕 꼼짝도 못하고 방안에서만 있어야 한다.

늦가을 수확이 끝나고 나면 간혹 눈이 몰려오기도 한다. 눈바람이 휘몰아치고 흰 눈이 나리면 바지게 위에다 맷돌 얹어두고, 빨래 방망이에 밧줄 묶어 세워서 큰방으로 밧줄을 가져다 놓는다. 마당 저 멀리 바지게 밑에 눈 온 자리를 쓸어버리고 그 곳에 흰 쌀을 뿌려놓는다. 그렇게 하고 나면 영락없는 새잡는 기구가 되고 만다.

방문에 유리붙인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면서 마당에 참새들이 내려앉아서 쌀 주워 먹기를 기다린다. 이때다. 드디어 참새가 쌀을 발견하고 바지게 밑으로 쌀 먹으러 들어간다. 드리워 놓은 밧줄을 힘껏 당기면서 부리나케 방문을 열어젖히고 뛰쳐나가 바지게를 발로 밟는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큰 행동을 한 것이다. 참새가 먹이를 먹으러 들어갔다가 그만 잡히고 말았다. 이렇게도 참새를 잡았다. 참새 잡기가 참 쉬웠다.

바깥에서는 흰 눈이 펑펑 내리고 방마다 짚공예는 절정에 이르고 있다. 큰 채, 사랑채, 방앗간, 헛간지붕 위에도 흰 눈은 소복소복 내리고 있다. 가마니치기용 새끼는 가는 새끼로 꼬아야한다. 밧줄이나 지붕을 이는 새끼는 굵은 새끼를 꼬아야 한다. 한 패은 벌써 가마니 치는 것에 익숙해 한 장을 빼내고 있다. 나이 어린 나는 가마니치기에 붙어서 짚 먹이는 일을 하고 있다.

어머니는 물레에다가 목화로 실을 잣고 있다. 형수는 무명씨 발겨낸다고 씨아를 돌리고, 누나는 치마를 훌떡 걷어 올려서 허연 다리를 내 놓고서 삼 삼는다. 큰 머슴, 중 머슴은 밧줄 만들려고 나무틀에다 대고 돌리고 있다. 모두가 한겨울에 농사철 준비를 하고 있는 시골풍정이다.

벌써 이경(二更)이 지나고 저녁 먹은 것은 간 곳이 없고 배고파 온다. 요즘 같으면 라면이라도 삶아 먹으면 되는데 그 시대에 그런 주전부리할 것은 없었다. 그때 그 시절에는 참으로 별다른 먹거리가 없었다. 아버지의 지시가 떨어진다.

막내는 중머슴과 무구덩이에서 무 빼 오너라.”

.”

쇠스랑과 소쿠리 찾아들고 무구덩이 무 빼러 나간다. 방문열자 마당에는 새 하얀 하늘쌀가루가 마당에 소복이 소리 없이 내려다 놓았다. 발이 푹푹 빠진다. 그 때는 살기도 팍팍한데 하릴 없이 눈이 오면 많이도 온다. 라디오뉴스로 울릉도에서는 눈이 1.5m나 왔다고 전하고 있다.

눈이 오면 춥지 않고 따뜻하다. 천지는 새하얗다. 밭 가운데 눈이 온 곳을 파헤치고 무구덩이를 찾는다. 무는 얼지 않도록 밭에다 땅 파고 깊이 묻어 둔다. 이제 그 무구덩이 문을 찾았다. 이미 문 가까이는 파내어 무를 벌써 많이도 빼내 먹어 버렸다. 이제는 한참 깊이로 쇠스랑을 집어넣어 무를 찍어 찾아내어야 한다. 쿡 찍어서 무를 찾고, 또 쿡 찍어서 무를 찾아낸다. 중 머슴이 한 소쿠리를 끄집어내는 동안 나는 오돌~오돌 떨고 북풍을 기다려 맞아야 한다.

한 소쿠리 무도 식구가 많으니 잠시면 모두 먹게 된다. 소쿠리의 무를 들고 큰 부엌으로 간다. 우선 무에 묻은 흙을 떨어버리고 사랑채로 들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부엌칼과 무를 함께 내어 놓으면 알아서들 잘도 무 깎아 먹는다.

아버지는 한 말씀하셨다.

이 겨울에 먹는 무는 최고 약이다. 특히 담배피우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약이다. 무를 많이 깎아 먹어 두어라!”

아버지의 만병통치약이 또 나오게 될 것인가? 정말인가? 아버지는 어떻게 아셨을까? 무에는 디아스타제, 아밀라제 등이 들어 있다는 것을 그 시절에 정말 알고 있었을까?

무는 니코틴을 중화하는 해독작용이 있어 담배 피우는 사람들에게 좋다고 한다. 무 생즙은 오장을 이롭게 해 몸을 가볍게 하며, 살결이 고와진다고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나와 있다. 삶아서 물을 마시면 기침, 인후통(咽喉痛)에 좋다. 감기 기침, 목 아플 때는 아이들에게 항생제를 주지 말고, 무 조청이 약효가 된다. 또 무즙 내서 가제로 걸러 나온 액을 무릎이나 아픈 곳에 발라주면 시원해지는 오늘날의 파스효과를 낼 수가 있다.

시골 겨울에서는 흰 눈이 내리면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약이 되는 생 무를 내어서 깎아 먹고 겨울을 지낸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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