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황성신문 |
|  | | ⓒ 황성신문 | | 옷은 처음부터 이렇게 오늘 날처럼 잘 입고 살아 온 것이 아니다. 좋고, 기능성 있는 섬유의 옷을 입고, 편안한 아파트에만 산 것만이 아니다. 겨우 몇 년 사이에 이렇게 이루어 진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노력해 얻은 것이다.
어린 날 시골에서 삼베 짜는 것을 보면서 살아 왔다. 삼베를 생산하려면 먼저 삼씨를 구해 삼을 길러야 한다. 삼은 잎과 꽃에서 얻는 마약제인 ‘마리화나’와 ‘해시시’를 얻을 수 있다. 요즘은 재배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
삼은 일년생 식물로서 섬유를 얻고자 씨를 촘촘히 뿌리고 거의 가지를 치지 않으며 평균 키가 2∼3m가 자라도록 둔다. 삼은 수 그루의 꽃이 모두 피고, 꽃가루가 바람에 날려 떨어지게 되면 다 자란 것으로 삼 베기가 시작된다. 삼을 자를 때는 지상 2.5㎝ 정도에서 낫으로 잘라내어야 한다.
삼을 베면 아랫동네에서 운영하는 삼굿을 찾아야 한다. 삼굿은 삼을 베어서 삶아내는 커다란 그릇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삼굿하기’라는 말은 삼을 삶아 내는 행위를 말했다.
우리 집에서는 머슴과 형님들을 동원해 삼밭에서 삼을 베기 시작한다. 그렇게 삼은 키도 클 뿐만 아니라 그 무게가 엄청 무거웠다. 어린 아이로서는 엄두를 못 낸다. 어린 우리들은 그저 삼베는 날 구경꾼이 되고 만다. 당수나무가 있고, 상여집이 있는 곁에 삼굿이 있다. 우리는 평소에 도깨비가 나온다고 대낮이라도 혼자서는 그 근처에 가지도 않던 곳이다.
아랫동네, 우리 동네 모두가 삼굿을 한다고 온통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다. 평소 배곯고 사는 사람들로 고기 한 점 얻어먹기가 어려웠던 시절이다. 우리 집 삼굿한다고 벌써 소문이 나 있었다. 본래 “소문 난 잔치 먹을 것 없다.”지만 오늘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 집 삼굿하는 날이 바로 잔칫날이기 때문이다. 돼지 잡고, 양조장에서 나무통 막걸리가 열 말씩이나 벌써 도착해 있다. 아랫집에 세 들어 사는 금자(今子)네는 우리 집 삼굿준비로 아예 소반과 막걸리 잔, 젓가락, 김치 등을 벌써 그릇그릇 째 담아내고 있다.
우리 집 삼밭은 벌써 다 베어내 가고 삼을 벤 뿌리마다 새 하얗고 뾰족한 삼 줄기 끝들이 가득 관병식을 한다. 이제껏 그 키 크고 높은 삼들이 전부 삼밭에 누워버렸다. 부지런한 머슴들이 큼지막하게 단으로 묶어서 지게마다 지고 삼 곳으로 줄을 잇고 가고 있다. 삼이 도착하고 삼굿 곁에 쌓인다. 우리 삼만 해도 집채만 하다. 아랫동네에서도 자꾸 삼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아랫동네 김씨가 장부 들고 오늘 삼굿할 순서를 정한다. 바로 제비뽑기를 한다. 우리 집에서는 셋째형이 나가서 제비를 뽑았다. 당당히 우리 집이 제일 먼저 선택됐다. 어느 새 동네 풍물이 이를 알고 축하 놀이 음악을 시작해 주었다. 꽹과리, 징, 장구, 젓대, 소고가 흥을 돋웠다.
우리 집 삼굿이 제일 먼저 배정받은 것으로 축하하는 의미도 있고, 삼을 베어 내어 기분도 좋아서 모인 동민들에게 돼지고기와 막걸리를 내어놓았다. 풍성한 삼굿이 시작됐다. 모두들 막걸리 잔을 들고 자축도 하고, 그리고 잘도 마셔댔다. 한 잔, 두 잔 막걸리는 사람들 뱃속으로 사라졌다.
삼굿 터에는 평소 대형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서 온돌방처럼 생긴 곳에 배열하고 있다. 그곳에 우리 집 삼을 집어넣었다. 베어 온 삼을 넣고 또 넣어서 차곡차곡 쌓은 후에 장대나무를 걸치고 덮개로 천막을 끌어다 덮었다. 마침내 삼굿을 시작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온돌처럼 만들어 두고 밑에다가 불을 때었다. 반대편 굴뚝에서 흰 연기가 뭉게구름을 만들어 삼굿 한다고 알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침부터 삶아 대서 낮을 지나고 벌써 저녁 해거름이 왔다. 아랫동네 김씨가 익혀진 것을 확인하고 덮었던 천막을 여럿이 줄을 매고 당겨 내었다. 김이 솟아오른다. 우리 집 삼이 삼굿에서 잘 익혀졌다. 이제 가져 왔던 삼을 모두 우리 집으로 바지게에 걸쳐서 다시 지고 줄을 이어 왔다. 뜨겁게 삶은 삼을 가져 와서 굳어지기 전에 빨리 껍데기를 벗겨야 하였다.
징, 꽹과리 소리에 맞추어 힘을 얻어 삼굿한 삼을 모두 옮겼다. 큰 채에 남폿불을 밝히고 삼굿해온 삼의 껍데기를 벗겼다. 아무 소리도 안 했는데 거개 동민들이 우리 집에까지 따라와서 삼의 껍데기를 벗기고 있다. 삼의 껍데기를 벗기면 그 속에서는 새 하얀 다리만 들어내는 ‘재랍’이 나왔다. 재랍은 초가 짓기 재료로 쓰이기 때문에 소중히 모아두었다.
온통 마을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삼 껍데기를 벗겼다. 순식간에 벗긴 삼 껍질이 가득했고, 재랍은 마당의 한 모퉁이를 가득 채웠다. 어두운 마당에 새하얀 다리만 드러내는 재랍으로 온통 환해 보였다.
오늘 우리 집에서 삼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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