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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잡기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청림 이영백수필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1년 11월 26일(금) 15:38

ⓒ 황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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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형제자매도 많았다. 사촌 누이들도 많아서 항상 췌객(贅客)들이 북적거린다. 우리 집, 큰 집, 작은 집 각각 네 명으로 모두 열두 명이다. 모든 췌객이 한꺼번에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모이다 보면 큰 집에서 한 분, 우리 집에 두 분, 작은 집에서 한 분 정도로 그렇게 우리 집에 수시로 모두 모이게 된다. 집에는 큰형, 둘째형, 셋째형 등 세 분이 췌객들의 놀이에 동참하기도 한다. 매일 췌객과 본손(本孫) 등으로 78분이 모이기 일쑤이다.

그날은 큰 집 매형한 분, 우리 집 매형 두 분, 작은 집 매형 한 분으로 벌써 오후 서너 시가 되면서 화투놀이가 시작된다. 부지런한 췌객은 닭 잡아서 닭 간과 모래주머니로 술안주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낮에 조양 못으로 들어가는 도랑에 온갖 잡어를 잡아서 술안주를 매운탕으로 끓이고 있는 중이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집에 할 일도 없으면 처가로 모여들어 이렇게 천렵(川獵)하고, 닭도 잡아먹고, 윷놀이와 화투를 치고 논다. 막걸리를 사다 놓고, 권하며 먹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부엌에서는 방금 참기름 짠 것으로 고소한 냄새를 온 집안에 흩뿌린다. 밥 위에 장떡을 만들어 얹고, 참깨 짠 깻묵으로 시래기비빔밥에 함께 넣어 비빈다. 사람들이 모이면 저절로 먹는 것부터 챙기는 것이 가장 큰 일이기도 하다. 다른 집에서는 이렇게 하고 놀고 사는 것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머슴들은 하루 종일 이엉 엮기를 한다. 마당 전체에 짚으로 가득하다. 한 사람씩 자리를 잡고 앉아 이엉을 엮는다. 이엉은 세 갈래로 대고, 붙이고, 꼬고, 엮인다. 이엉은 짚의 밑동을 기준으로 엮이며 볏짚 윗부분이 끝으로 가는 우리 조상들이 발명한 지붕이기에 훌륭한 재료다. 스무 발 정도로 엮고서는 이제 끝에서 돌돌 말면 한편으로 굵어지고 다른 편은 약해서 끝을 묶어 한 곳에 쌓아 둔다. 마치 잘 키운 큰 배추를 세워 놓은듯하다.

지붕 이는 날 갖다 쓰기 좋게 모아 두었다. 이엉은 누구나 쉽게 배워서 이엉을 엮을 수가 있다. 지붕이기에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용마름이다. 이것은 아무나 만들 수가 없다. 만들기가 그만큼 어렵다. 용마루 위에 이어 마지막으로 덮어서 비가 오면 빗물이 양편으로 흘러내리도록 한다. 지붕의 마감재 역할인 것이다.

저녁이 시작되기 전에 윷놀이가 한창이다. 멍석 펴 놓고 윷이 줄을 넘어 던져야 하는 던지는 윷놀이였다. 한창 놀이가 무르익을 때 저녁이 나온다. 모두 시래기비빔밥이다. 방금 짠 참기름의 깻묵이 섞이어 뜨끈뜨끈한 시래기비빔밥은 시골이 아니고서는 그 맛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덩달아 나온 것은 구수한 숭늉이다. 방마다 온통 모든 식구들과 췌객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하니 더욱 맛이 난다. 이런 삶이 사람 사는 보람이고, 시골에서 겨울 들면서 농사 지어 놓고 모여 노는 삶이다. 아버지는 사랑채 방에서 흐뭇하게 본다.

어둡고 추어져서 방에서 놀면서 어느새 이경(二更)이 된다. 찬바람이 세어지고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셋째형은 오늘 밤참에 참새고기 죽(‘옴밥’)이 있을 거라고 했다. 겨울 밤 늦게까지 놀다가 참새고기 옴밥을 먹으면 그렇게 고소한 죽은 처음 먹을 것이다. 바로 오늘같이 바람 불고, 눈 내리니 참새들이 지붕처마 밑에 들어와 몸을 피할 때 잡기가 쉬워진다.

참새잡기 도구는 별 다른 것이 없다. 맨손이고, 가장 큰 도구래야 플래시 하나면 된다. 참새를 붙잡아서 묶는 새끼줄 1m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참새 잡는 장비가 그것으로 전부인 것은 참 쉽다. 참새 잡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한 패인 큰 매형 뒤를 따라가 본다.

우리 집은 여러 동() 초가가 있어서 겨울에 참새 잡는 터로 적격이다. 나는 조용하게 그저 뒤따라 다닌다. 지붕 밑에 손을 집어넣어 참새 한 마리를 잡아낸다. 이 때 플래시 켜기는 기본이다. 플래시 불빛이 매우 밝게 느껴져서 참새가 도망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새 한 마리 잡고, 또 한 마리 잡고 계속 새끼줄을 비틀어 사이에 참새목을 끼운다. 참새는 자다가 꼼짝 못하고 영문도 모르게 잡히어서 새끼줄에 끼인 신세가 된다. 자꾸 잡힌 참새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참새는 명년 농사짓는데 배동바지로 익기도 전에 벼 낱알의 물을 빨아 먹기에 꼭 잡아야 한다.

예전에는 음력 128일에 참새를 잡아서 납향(臘享)제를 국가와 관에서 지냈다. 특히 참새 잡아 제사를 지내면 어린아이들이 마마(천연두)를 잘 넘길 수 있다는 민간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도 있다.

췌객들이 여러 패로 나누어 참새잡기는 겨울의 최고 놀이방법이다. 패마다 참새를 잡아와서 보니 약 쉰 마리나 잡힌 상태다. 그날은 참새고기 옴밥을 끓여 먹는다. 그 고소한 참새고기 옴밥은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를 맛이다. 참새이름은 왜 참새일까? ‘참 고기 맛이 좋은 새라는 뜻으로 참새라 하는가?

가을에 농사 지어 놓으면 참새들이 벼가 익기도 전에 새 하얗게 씹어 놓은 것을 보면 참새 잡기가 결코 미안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잠을 자다가 붙잡힌 참새들은 아주 재수가 옴 붙은 날이다. 대신에 참새고기 옴밥을 옴팡지게 얻어먹을 수 있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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