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황성신문 |
|  | | ⓒ 황성신문 | | 어머니 일하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본다. 사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이다. 많은 식구를 거느리고 집 안팎으로 일을 도우거나 직접 해야만 한다. 어머니는 팍팍한 삶 속에서 배움도 부족했으나 시대적으로 순응하는 참한 한국여인이다. 근대사회에서 모든 것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오던 터다. 오로지 현모양처의 교과서 원본대로 살던 시대이다. 마치 밤새도록 물레 돌리는 한국여인네다.
봄이면 화전(花煎)놀이 가는 것이 아니라, 송기 꺾어 송기떡을 만든다. 쑥 뜯어 쑥떡 만든다. 콩은 불려 맷돌에 갈아 두부를 매일 만들어서 팔고, 못 팔고 남으면 먹는다. 메밀로 묵 만든다. 여름이면 오이로 냉채 만들고, 밀은 삶아서 간식으로, 밀가루는 홍두깨로 국수 만든다. 오디로 술 담그고, 수박으로 화채 만든다. 과히 숙명적으로 일하고 산다. 흐르는 세월처럼 밤새도록 물레 돌린다.
아이들 간식으로 옥수수나 보리쌀로 튀밥을 만들어 준다. 가을이면 감을 삭혀 팔거나 먹고, 고욤은 저장하여 약처럼, 꿀처럼 퍼 먹인다. 겨울이면 수정과를 만든다. 계피와 생강달인 물에 설탕타서 차게 식힌 후 곶감 쌈, 잣 등의 건지 띄어 한겨울 뜨거운 온돌방에 앉아 얼음처럼 차갑게, 꿀처럼 단 것을 마시게 한다. 마치 밤새도록 물레 돌리는 한국여인네다.
어머니의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가장 힘든 일이 물레 잣는 일이다. 물레로는 실을 뽑아내어야 한다. 어머니는 평생토록 물레를 죽도록 사랑한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밤 시간을 찾아 하는 일이 물레질이다. 마치 세상을 빙~빙~빙~ 돌린다. 물레와 떼어서 살 수 없듯 밤을 낮처럼 일한다,
겨우내 밤마다 “왜∼롱! 왜∼롱! 쏴아∼, 쏴아∼.”소리를 낸다. 연속적으로 돌리면서 팔 아픔을 잊은 채 계속해서 물레질을 해댄다. 어떨 때는 내가 한숨을 자고 일어나도 어머니는 계속 물레질이다. 돌아가는 물레는 나의 단잠을 깨웠다가 말았다가 한다. 계속 돌리면 자장가로 들리고, 그 소리에 놀라 깨면 잠 깨게 된다. 어머니는 개의치 아니하고 그저 밤새 물레질만 해댄다.
물레타령은 물레질을 하는 데 힘을 주는 노래다. 노래 하나로 힘든 줄도 모르게 물레질한다. 여인에게 질곡(桎梏)의 인내를 부축이게 하는 노동요이기도 하다.
해당화 한 송이를 와지~직~끈 꺾어 우리 님 머릴 위에다 꽂아나 줌세.
(후렴)물레야! 물레야! 빙~빙~빙~ 돌아라. 워리∼렁 워리∼렁 잘도 돈다.
추우냐? 더우냐? 내 품안으로 오너라. 베개가 높고 얕거든, 내 팔을 베어라.
사람이 살며~는 몇 백 년이나 살 가나? 죽음에 노소가 있느냐?
건곤이 불로 월장재하니, 적막강산이 금 백년이로구나.
살살 바람에 달빛은 밝아도 그리는 마음은 어제가 오늘.
삼월 삼일 이백 도홍이요, 구월 구일 황국 단풍이라.
적토마 잘 먹여, 두만강 수에 씻겨 용천검 휘둘러 입신양명 할까.
첫물로 뽑은 실은 큰 아들 장가보내고, 두 번째로 뽑은 실은 둘째 아들 장가보내고, 또 셋째 아들, 큰 딸 시집보내야 한다. 둘째 딸, 셋째 딸, 넷째 딸, 넷째 아들, 다섯째 아들까지 시집, 장가보내 주마고도 한다. 어머니 어찌도 자식을 이리 많이 낳아서 이렇게도 고생하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자식 키우는 것이 고생 아니라고 우긴다. 많은 자식 다 잘 살지 못하겠지만, 잘 사는 아들ㆍ딸 하나라도 나올 것이라고 찰떡같이 믿는다. 세상에 태어났더라고 자식 키워 호강은 못하지마는 부모 찾는 날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식 많이 낳을 팔자에 정말 물레질은 힘이 들고, 밤을 낮처럼 일하게 할뿐이다. 열 번째 막내 자식이라 그 소원 못 보여 드렸으니 불효다. 어머니 물레질한 그 횟수 그 얼마일까?
물레 꼭지마리(손잡이)는 닳을 대로 닳아서, 맨~질~맨~질 하다못해 그제야 부러졌다. 다시 달아놓아서 겨우 제 구실하고 있다. 꼭지마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물레는 물레로서 제 할일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물레질 하는 세월이 흐른다.
물레를 가만히 들어다 보면 그 이름마다 재미있다. 물레를 사용하는 첫 번째 단계는 물레 축(굴똥)을 받침대에 수평으로 끼우는 것이다. 손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는 큰 물레바퀴에 실이 감기면서 회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솜뭉치로 감기는 가락을 왼손에 쥐고 물레바퀴를 오른손으로 돌린다. 가락에 감겨 있는 솜뭉치의 일정한 각도에 따라 필요한 정도로 꼬임을 얻는다. 물레는 나무로 된 여러 개의 살을 끈으로 얽어매어 8각의 둘레를 만든다. 가운데에 굴대박아 꼭지마리로 돌리게 되어 있다.
아버지는 목수이기에 물레를 손수 만든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만든 물레를 가지고 긴긴 겨울밤 새도록 함께 여생을 보낸다. 물레야 돌아가는 물레야! 질곡의 한국 여성으로 태어나서 함께 여생을 마친 물레야 참 고맙기도 하고 밉기도 하다. 이제 물레는 어머니와 이별이다. 물레는 아무 일도 없이 세월이 흐른 후에 어머니와도 그렇게 영원히 헤어지고 말았다. 왜∼롱! 왜∼롱! 쏴아∼쏴아∼하는 소리로 나를 잠 깨우던 물레도 한 많은 고개를 넘는다.
이제 시대의 발전 뒤안길에 얹히어 지내다 민속 물품 호리꾼들 눈에 띄어 손자사탕 값인 헐값에 팔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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