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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칠석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이영백 수필가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1년 12월 10일(금) 14:42

ⓒ 황성신문

↑↑ 칠석물과 할머니
ⓒ 황성신문
우리 차성이문(車城李門)에 시집오신 할머니는 경주김씨 명헌(鳴憲)의 여() 활허당(活虛堂) 김씨다. 차성이씨 38만호학행(曼瑚學行) 휘응조(諱膺祖)의 배()이다. 조선 고종(高宗) 7(庚午, 1870) 78일에 태어나서 일제침략기 31(庚辰, 1940) 78일에 돌아가시니 연치 일흔하나이다. ()에 삼남 일녀(三男一女=백부, , 숙부, 고모)를 두셨으니 다복하심을 기리었다.

나는 할머니 얼굴을 모른다. 나는 열 번째 막내인 늦둥이로 태어났으니 할머니를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할머니라는 말을 부르고, 찾는 것은 새삼스럽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꼭 9년 전에 돌아갔기 때문에 9년의 공백 기간이 된다. 넷째형도 할머니 얼굴을 모르기는 나와 매 마찬가지다. 넷째 형은 할머니 얼굴을 몰라도 하등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태어나기 9년 전이지만 할머니를 간곡히 생각나게 만든다. 얼굴뿐만 아니라 이런 저런 인연으로 더욱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생일이 78일인데, 돌아가신 날도 78일이다. 어찌 이렇게 기이하단 말인가? 태어나신 날 꼭 71년 만에 그날 돌아가셨다. 제사는 칠월칠석인 77일 저녁에 모신다. 태어나심에 돌아가신 날이 되어 전날에 준비해 그날에 제사를 모신다.

칠월칠석이 무엇인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다. 세상의 사람들이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꼭 그날이 되면 비가 오고 만다. 할머니 기일이자 생일에는 반드시 비가 온다. 일찍 아침부터나 저녁에 오든, 아니면 밤늦게라도 꼭 비가 왔다. 흔히 칠석물이라고 한다.

비가 온다는 것이 바로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烏鵲橋)에서 만나는 데 혹시 우리 세상 사람들이 보면 부끄러워할까 보아서일까? 아니면 세상의 까막까치가 모두 올라가 머리를 조아려야 하기 때문일까? 까치 저들의 머리가 칠월칠석 지나고 나면 꼭 벗어져 있다. 이 또한 신출귀몰한 이야기가 아니던가? 칠월칠석이면 할머니 기일이자 생신날을 절대로 늘 잊지 못하고 살아 왔다.

어머니 생전에 할머니 제사를 이런저런 사정에 의해 줄곧 아버지가 둘째 아들이면서도 선조들의 제사를 모두 모셔오고 있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조상의 제사모심은 아주 좋아했다. 보리·조밥에 겨우 연명하던 시절이라 제사를 모시면 하얀 쌀밥인 메가 생기기 때문이다. 또 고기조각이라도 얻어먹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제사를 여름에 모시고 나면 하얀 쌀밥인 메를 농 위에 얹어 두었다가 낮에 내려 먹는다. 이때 아버지 곁에 있으면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때 얻어먹은 메, 흰 쌀밥의 맛을 지금까지도 잊어버리지 못하고 산다.

나도 일흔셋에 이르러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탓하고 싶으랴마는 제사는 지내서 좋고, 지낸 사람이 좋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조상을 위한 메를 올리는 것은 그저 종교나 그 무엇이라도 떠나서 자기의 위로일 것이다. 제사는 정말로 귀신이라도 있어 차려 놓은 음식을 정말 다 먹고 간다면 아무도 제사를 지내지 않을 것이다. 마음의 위로를 남긴다는 것이 인간으로서 버리지 못할 양심의 일면일 것이다.

진정 내 마음 속에 잊어버리지 못하는 칠월칠석,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저 그런 날이 아니다. 할머니와 나의 9년 공백 기간을 잊고 살아 온 것에 대한 반성이라도 하라는 뜻일 게다. 활허당(活虛堂)할머니, 경주김씨 할머니를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결코 칠월칠석 입제를 잊지 못할 것이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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