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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 매는 날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이영백 수필가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1년 12월 17일(금) 14:20

ⓒ 황성신문

ⓒ 황성신문
어머니는 예술을 한다. 예술이라고 무슨 공인된 그런 거창한 예술작품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매만지는 것마다 마이다스의 손처럼 우리가 몰랐던 일들을 만들어 내는 수공품을 나는 예술이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목화밭에 목화를 키운다. 청 다래가 열리면서 하얀 목화(木花)가 된다. 어느새 따다가 말려서 솜을 타다 놓는다. 솜뭉치로 실 잣는 것을 밤마다 남모르게 실로 뽑는다. 그 긴긴 동지섣달에 밤을 낮 삼아 실을 만드는 그런 예술작업이다. 밤마다 물레에서 워롱~ 워롱~ 실 뽑아 가락을 만들고, 씨줄을 만드는 것이 여인네 손끝에 달렸으니 이 또한 예술이 아니던가?

어렸을 때는 어찌 그리 배가 고팠단 말인가? 어린 나에게도 점심이 없다. 엄마가 아버지 일 많다고 아무도 몰래 오늘 낳은 계란을 가져다가 드린다. 날계란은 아버지가 끝부분만 깨뜨려 내용은 먹고 난 빈 계란껍질에 쌀을 넣어 어머니 베 매는 불에다 구워 둔다. 학교 갔다 돌아온 막내인 나에게 계란밥 두 개를 아무도 모르게 내어 준다. 베 매는 날은 나에게 그러한 계란밥 성찬의 날이다.

베를 매는 날에는 마당에다가 말뚝을 치고 불 피운다. 적당한 온도를 유지 하도록 베 매는 곳 밑에다 불을 피워 두었다. 가장 적당한 온도를 아버지께서 맞추어 주었다. 씨줄을 걸어 팽팽하게 당겨 두었다. 걸어 둔 실에 풀 먹이는 것을 베 맨다고 한다.

베에 먹일 풀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날 같으면 풀을 사서 사용도 하겠지만, 옛날에는 풀을 직접 쑤어야 한다. 시골에서 가지고 있는 도구가 맷돌밖에 없다. 베에 먹일 쌀풀을 만들어야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산다고 했다. 아무런 도구가 없는데도 쌀 가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간밤에부터 풀 쑬 쌀을 물에 불려 놓고 잠잤다. 아침이 되면 쌀이 물에 아주 잘 불리어져 있다. 이를 풀 돌이라고 하는 타원형으로 동글동글하게 생긴 돌로 눌러 문지르면서 갈았다. 물에 불리어진 쌀은 곧 허물어져 쌀가루가 되어 버린다. 쌀가루로 풀을 쑤는 것이다. 사람도 먹지 못하고 있는 그런 귀한 쌀로 풀 쑤어서 실에다가 쌀풀을 칠하다니 어린 나로서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베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과 머슴, 누나와 나 등 모두가 한 해 동안 입고 살아가야할 옷을 만드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도 아까운 줄 모른다. 그렇다. 자기들이 입을 옷감 만드는 데 쓰이는 아주 중요한 쌀풀이기 때문이다. 오늘 날과 같이 좋은 천을 돈 주고 살 수만 있었다면 이 어려운 과정으로 베를 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게 집집마다 직접 베를 짜서 옷을 짓던 시절이다.

쌀풀 먹이는 솔을 만든다. 솔 또한 아버지의 작품 중에 명작이다. 베에 풀을 먹이는데 어떤 솔이면 될까? 조상들은 필요한 그곳에 쓰일 것을 그곳에다 반드시 사용하고 산다. 부드러운 털로서는 베에 풀을 먹일 수가 없다. 너무 끈기가 없어 힘이 없기 때문이다. 털이 너무 부드러우면 고르게 풀을 먹이지 못한다.

풀 먹이는 솔을 만든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베에 풀을 먹일 솔을 만드는 것이다. 산에서 소나무 뿌리를 캐다가 크기가 같은 것을 골라서 솔뿌리 껍질을 벗겨둔다. 볼그레한 솔뿌리만 남는다. 추려서 물에 불린 후 고른다. 윗부분을 잡고 아랫부분을 작두로 잘라 둔다. 철사로 묶고 자루를 만들어 달면 베에 풀을 먹이는 명작의 솔이 탄생한다. 솔뿌리는 빳빳해서 잘 부러지지도 아니하고, 자기 결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실의 한 올 한 올 마다에 고르게 풀을 먹이게 하는 기발한 솔이 되는 것이다. 조상들의 현명한 지혜와 슬기가 그 솔 하나에서도 나타난다.

베 매는 날에는 뒷집 기장(機張)댁 할머니도 와서 베 매는 것에 스스로 자문을 해준다. 물론 어머니도 잘 알고 있지만 무슨 일을 할 때는 자문하는 한 분 정도는 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는 일을 다시 한 번 더 정확히 확인하는 절차인 것이다. 또 어머니의 배려는 마을어르신이 시어머니처럼 조곤조곤 알려 주는 고마움으로 받아들이기에 서로 좋아하고 더러 자문 받는 것을 아끼지 않는 고운 베만큼 좋은 심성이다.

풀이 너무 묽거나 되지 않도록 조절한다든가, 마당에 불을 피운 것이 너무 뜨거우면 빨리 마르므로 적당한 불길을 만들도록 한다든지 하는 일이다. 아울러 베 매는 일도 적당히 조절하며 풀을 먹여 베를 매야하기 때문이다.

베 매는 날은 나의 계란밥 성찬이 나오는 날이다. 또한 풀 쑬 쌀가루를 갈고, 남은 싸라기로 숭늉 끓이는 데 넣어서 쌀 맛을 오랜만에 식구들마다 맛보게 되는 날이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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