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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치기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청림 이영백수필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1년 12월 24일(금) 14:44

ⓒ 황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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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여 평의 빈 밭둑에 아버지는 일찍 뽕나무를 심어두었다. 뽕나무는 작은아버지 밭과 경계를 이루어 여름에는 오디를 따 먹는다. 오디는 꼭 설탕 먹는 것처럼 맛있다. 뽕나무는 농촌에서 부업하는 나무다. 1년에 춘잠, 추잠으로 두 번씩이나 이용하게 되는 일거양득의 돈 나오는 나무이다.

영등(靈登) 만나기 전에 소변을 모아 둔다. 그 오줌을 뽕나무 뿌리 둘레에 쏟아 부어준다. 봄에 나무가 터 갈라지지 아니하고, 뽕잎이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집 누에치기는 한 장을 먹인다. 한 장이란 누에알이 쉰 돌뱅이를 한 장이라 한다. 누에치기의 규모를 바로 장이라는 단위로 누에를 상당히 많이 먹인다는 증거이다.

고치를 냉장에다가 보관하면 누에는 아직도 겨울인 줄로 알고 다음해 새 뽕잎이 나올 때까지 고치 속에서 몇 개월 동안을 먹지 않고도 죽은 것처럼 살아서 기다린다. 늦은 봄 바깥의 기온이 상온으로 바뀌면서 고치 속 나방이 입으로 산을 내뿜어서 녹인 후에 바깥으로 나온다. 100여 개의 알을 낳는데 종이에 직경으로 약 4cm정도로 말아서 세워 놓고 그 속에다가 나방 한 마리씩 집어넣어 놓는다.

바닥에는 나방이 빙글빙글 돌면서 낳은 알이 가지런히 착석하는데 어른들은 이를 돌뱅이라는 단위로 부른다. A4용지 한 장이면 약 열 개의 동그라미를 얻게 된다. 이를 다섯 매가 한 장으로 받게 되는데 누에의 씨앗 몇 장을 받는가에 대해서 그 집의 양잠 규모를 알게 되는 것이다.

동에서 반장을 통해 누에씨 받은 후에 며칠이 지나면 누에의 애벌레가 씨처럼 새카맣게 깨어서 나온다. 딱딱한 알에서 아주 조그만 것이 부화되어 새카만 벌레로 기어 나온다. 어머니는 연한 뽕잎을 골라 채 칼로 총총 썰어서 마치 반찬 준비하듯 정성들여 뽕잎 썬다. 새카맣고 조그만 벌레인 충잠(蟲蠶)에게 썬 뽕잎으로 밥을 준다. 시간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정성을 쏟아 붓는다. 꼭 새끼 개미모양 바글바글 새카만 충잠이 깨어난 것이다.

3일만 지나도 그 새카만 작은 충잠이 제법 커서 뽕잎을 갉아 먹는다. 조금 더 자라주면 가지에서 딴 뽕잎을 그대로 먹인다. 작은 누에이지만 뽕잎을 얹어 주어도 잘 갉아 먹는다. 비라도 오면 어머니는 또 정성을 들여야 한다. 빗물이 묻은 뽕은 그대로 주지 않는다.

어머니! 뽕을 그대로 주면 왜 안 되나요?”

빗물 맞은 뽕 그대로 주면 이 작은 누에도 설사해 춘잠을 망치지. 꼭 빗물을 닦아 주어야 하지. 미물이지만 얼마나 까다로운데.”

어느 정도 자라면 뽕을 따지 않고도 가지 채 베어 와서 그대로 얹어 주어도 잘 먹는다. 누에치는 잠실에 들어가면 그 수많은 누에가 한꺼번에 갖다 준 뽕잎을 모두 갉아 먹어치운다. 누에 밥 먹는 소리가 !”하면서 소나기 쏟아지는 소리처럼 들린다. 삽시간에 푸른 뽕잎은 사라지고 앙상한 뽕나무가지만 남긴다. 그렇게 누에가 뽕잎을 잘 먹으니까 예쁜 명주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누에치기에 많이 바빠지면 어머니는 잠실에서 주무신다. 나도 좁은 잠실에 같이 있으면 어머니가 하는 일에 관심을 보인다. 손가락만한 오령의 누에는 바로 네 차례의 탈피로 허물벗기를 하면서 고치 짓기 위해 섶에 올려야 한다. 좁쌀크기의 잠종(蠶種)에서 뚫고 나온 일령의 누에는 잘 보이지도 않았던 작은 충잠이다. 이것이 네 번의 탈피를 거듭하는 동안에 무려 무게가 1만 배, 부피는 7천 배의 크기로 급성장한다.

누에 자라는 과정으로 보면 단계적으로 잠자고 깨어나는 것에 따라 진화를 거듭한다. 누에가 자라면서 잠자는 것이 중요한데 한 번 자고 일어나는 것을 ()’이라 한다. 먼저 2628도의 알에서 부화된 누에는 ‘1이다. 3일간 뽕잎 먹고 첫잠에 들어갔다가 깨어나고, 허물 벗으면 2, 다시 세 번째 잠자고 일어나 허물 벗으면 3, 이런 식으로 네 번째 잠인 막잠까지 자고 일어나면 4령이 된다.

5령부터는 잠자지 않고 78일간 먹기만 하고, 고치 집을 짓기 시작한다. 다시 8일 후에 번데기가 되고, 78일 후에는 나방이 되는데 이 모든 과정을 거치기까지 45일에서 50일 가량이 걸린다. 아낙네로는 이 기간에 열심히 활동해 춘잠의 결과로 돈을 벌어들인다. 누에의 이러한 일생으로 그 수입이 짭짤하다.

탈피는 부쩍 자라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고, 탈피과정은 잠자는 동안에 먹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머리 들고 정지해 있다. 생사를 판가름하는 엄숙한 과정이다. 탈피를 잘 하면 비약적인 성장이 가능하고, 만일 탈피 못하면 그대로 죽는다. 누에는 성실한 탈피를 거쳐야 한다. 탈피는 묵은 껍질을 벗는 것이다. 이때, 어머니는 탈피에 실패해서 죽은 누에를 일일이 골라내며 혀를 끌끌 찬다. “아이고, 아깝네, 돈이 사라지네.”한다. 죽은 누에가 슬프다. 누에는 사람의 일생과 같다. 탈피는 곧 성공이요, 실패는 죽음이다.

네 번의 탈피를 성공한 누에는 섶에 올려 진다. 섶은 짚으로 약 7Cm정도로 꾸겨서 펴면 마치 영어의 이탤릭체 N자를 연속적으로 눕혀 이어가는 것 같다. 이를 잠실 시렁에 얹고서 누에를 올린다. 누에는 이제부터 쉬지 않고 아름다운 명주실을 뽑아내어 자신의 집을 짓는다. 완성하면 누에는 마침내 번데기가 되고, 나방이 되어 훨훨 나는 시기가 올 것이다. 날마다 뽕 썰어 누에 먹이던 어머니는 밤에도 새하얗게 빛나는 아름다운 누에고치를 보면서 너무나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누에가 예술을 창작하듯 어머니 손에서 예술이 피어나고 있다.

때로는 누에치기가 말할 수 없이 번거롭고 고통스럽지만, 누에치기 시간은 너무나 아름다운 시간이 된다. 누에는 고치를 만든 후에도 절대로 죽지 않는다. 아름다운 나방으로 훨훨 날아다니다 다시 새로운 탄생을 위해 알 낳기 준비한다.

시골 여인네로 이렇게 1년 두 번 90100일 만에 누에치고, 고치를 생산하면 상당한 수입을 얻는다. 어머니는 그 고단함을 나중에 고치생산으로 얻은 돈과 비례한다. 고치를 섶에서 다 따낸다. 고치겉실은 따로 모아 베개 속에 넣는다. 마당에 쌓아 놓은 새하얀 허리 잘록한 고치를 보면 힘들었던 노동의 결과를 보상받는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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