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5-05-02 오후 04:30:28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수필
전체기사
뉴스 > 수필
베 짜기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이영백 수필가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2년 01월 07일(금) 16:52

ⓒ 황성신문
ⓒ 황성신문
전근대시대에까지 길쌈을 했다. 길쌈에는 해야 할 일들이 참 많다. 길쌈은 여성들의 전통적인 직조기술이다. 삼이나 모시·목화·누에로 각기 베나 모시·무명·명주 등의 피륙을 짜는 과정을 말한다.

삼으로 삼베를 짜고, 목화(木花, 棉花)로는 무명베를 짰다. 모시는 모시를 짜고, 누에로는 명주(明紬)를 짠다. 이를 표현으로 분류해 보니 이렇게 차이가 난다. 어떤 것은 베라 하고 어떤 것은 물성재료 그대로 불러도 좋은 명칭이 된다.

는 식물의 섬유를 짠 것으로서 피륙의 총칭일 뿐이다. 어머니는 길쌈에서 골고루도 일했다. 학교 다녀오는데 멀리서도 들리는 소리가 있다. 어머니는 베틀에 올라앉아서 ~, ! ~, !” 씨줄 당겨두고, 바디로 날줄을 이동해 실 한 올이 베로 변하는 순간을 만들고 있다. 종일 베틀에 붙박이다. 베를 짠다. 가히 예술가다.

셋째 형수님은 형님과 함께 일하러 나갔고, 어머니 혼자서 베틀에 앉아 베틀과 함께 작업한다. 허리에 한 번 묶으면 그날 치 베를 다 짜야 허리띠를 풀기 때문에 아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꼼짝 없이 베틀 위를 지킨다. 종일 베틀 위에 붙박이 신세다.

복아! 살강에 고구마 삶아 둔 것 있을 것이다. 배가 너무 고프구나. 그것 가져 온 나! 함께 묵자! 올 때 찬물도 잊지 말고?”

어머니는 아침부터 베틀에 올라앉아서 여태껏 측간도 안다니고 나라도 학교 갔다 돌아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배고픈 것도 잊고, 나를 보고 고구마라도 요기하려고 찬물과 함께 가져오라 한다. 세상에도 누구네 엄마는 젊고, 놀러 다니던데 어머니는 마흔넷에 날 낳고, 천연두로 곰보가 됐다. 벌써 쉰하고도 중반이 넘었는데 신경통이 도져서 장죽 대담배까지 피우면서 이리 일도 많이 해야 하는가? 세상이 너무나 불공평하지 않은가. 조선의 마지막 한을 가진 여인네 상이다.

삼베 짜기는 삼 삼고, 표백해서, 베 매고 베틀에 걸어 바디를 꿰면 삼베 짜기가 만반에 준비된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눈에 훤하다. 하루아침에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베 짜기 하나만 해도 그렇게 절차가 밟을 수밖에 없다. 많은 자식 건사하고, 남의 식구인 머슴까지 데리고 사철 의복을 만들어야 한다. 또 천을 짜야하는 그 고통은 현실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에 베틀에 올라 앉아 허리 아픈 줄도 모르고 베를 짜는 것이다.

삼베를 짠다. 삼베 올의 가늘고 굵음을 라고 말한다. 1세는 80가닥의 올을 뜻한다. 예를 들어 일곱 세라면 전통 베틀의 폭(34cm37cm)에 약 560가닥(7×80)의 실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세의 수가 높을수록 올이 매우 가늘고, 조직이 치밀하다. 과거에 보름 세라고 해 1200가닥의 원단의 직조로 되다니 그 정성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가 높을수록 삼베 가격이 높이 거래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 들은 어렴풋한 이야기로 보통 머슴들이나 집에서 입을 삼베는 일곱 세라 했고, 그래도 시간이 나고 조금 좋은 삼베를 짜려면 보통 열석 세(140가닥)’라고 했다. 일반적으로는 조금 엉성하지만 보통 일곱 세삼베를 짜게 되는 것이다.

베를 짜면 첫째로 끊어질 듯 허리가 아파온다. 씨줄을 발로 당겨두고, 날줄을 바디로 치니 치그닥 딱!’하는 소리에 한 올이 짜여 진다. 도투마리 넘어가고, 뱁댕이 서너 개가 떨어지고 또 씨줄을 발로 당기는 것을 반복한다. 하루 종일 도투마리 넘기고, 뱁댕이 떨어뜨리고, 날줄 당기며 왼손으로 바디 꺾어 오른 손으로 북 집으로 쳐 대니 하루 날이 다 지나간다. 그것으로 똑 같은 행동을 종일 반복적 작업이 돼야 조금씩 늘어나는 천이 된다.

어머니 도투마리와 종일 씨름하려면 고달프고 몸이 아파서 저절로 베틀가를 부르게 된다.

 

베틀을 놓세, 베틀을 놓세. 옥난간에다 베틀을 놓세./양덕맹산 중세포요, 길주명천 세북포로다./반공중에 걸린 저 달은 바디장단에 다 넘어 간다./이 베를 짜서 누구를 주나. 바디칠 손에 눈물이로다./주야 장천 베만 짜면 어느 시절에 시집을 가나./닭아! 닭아! 우지를 마라. 이 베 짜기가 다 늦어진다./낮에 짜면 일광단이요, 밤에 짜며는 월광단이라./넓이 넓다 광화포요, 척수 길다 대들포 로다./젊은 비단은 생팔주구요, 늙은 비단은 노방주로다./한숨을 섞어 옷감을 짜면 옷감 올올이 한숨이라./웃음을 섞어 옷감을 짜면 옷감 올올이 웃음이라./베틀을 놓세. 베틀을 놓세. 옥난간에다 베틀을 놓세./초산벽동 칠승포요, 회천강계 육승포로다./춘포조포 생단포요, 경상도라 안동포로다./젊은 비단 생팔주요, 늙은 비단 노방주로다./춘포지포 해동포요. 경상도라 안동포로다./양도명산 중세포요 길주명천에 해동포로다.

 

베틀가 한 번 뽑고 나면 속도 후련해지고, 금방 허리 아픈 것이 도망가고 만다고 한다. 도투마리 넘길 때 발로 차도 안 넘어 가면 큰방에 있는 나를 부른다. “도투마리 걸려서 안 넘어 가는 뱁댕이 빼 달라.”고 한다. 후유! 어머니 한숨소리에 나도 절로 괴로워온다. 어머니의 한숨소리는 얼른 얼른 공부해 자식 출세하면 그런 일 안 하려나 불끈 공부 하려는 마음이 치솟는다.

베틀에서 한 번 내려오면 올라가기 싫은 것이라도 남편 생각, 자식 생각에 허리 한 번 옳게 펴보지도 못하고, 다시 베틀에 올라앉았다. 형수님 보소. 이에 한 번 짜 보겠다고 베틀에 앉으면, 어머니 아예 말려댄다. 젊어서부터 벌써 베틀에 앉으면 허리 간다고, 백 번 말려도 형수님 베틀에 올라앉는다.

베 짜는 것은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삼베는 그래도 조금 올이 굵어 짜기 쉽다고 한다. 명주는 올이 가늘어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다. 베마다, 짜는 종류마다 그 힘든 것을 말로 어찌 다 표현한단 말인가? 조선의 마지막 여인으로 태어나 운명의 장난인가? 무슨 말로 그 고됨을 표현 하리오.

한 필() 서른 석자 다 짜고 나면, 허리 풀고 자로 잴 때 그 기쁨은 오로지 베 짠 사람, 우리 어머니만 그 쾌감을 알 수 있다.

황성신문 기자  
- Copyrights ⓒ황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신평동(薪坪洞)의 원주민은 보문저수지 조성과 보문관광단지 개..
경주 출신 아동문학가 최소혜, 처녀작 ‘초능력 탐정단’펴내..
‘보문천군지구 도시개발사업’ 건폐율·용적율 대폭 완화..
한수원, 2025 ESG경제대상 ʻESG 종합대상ʼ 수상..
보문관광단지 민간투자 자유로워 진다..
주낙영 시장, 공직기강 확립 ‘칼’빼들었다..
경주시 올해 총예산 2조 2천600억 원 편성..
하늘마루 봉안당 스마트 키오스크 설치..
내년 아태관광협회 연차총회 경주·포항 유치..
경주 동해안 불법어업 특별단속 실시..
최신뉴스
경주시가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변한 노인을 지원한다..  
주 시장 SMR 국가산단에 670개 기업 입주제안..  
주낙영, 주한 에밀리아가토 이탈리아 대사 접견..  
경주시, 종소세와 개인지방소득세 신고접수..  
경주지역 최고 비싼 땅은 평당 약 2천623만 원..  
보문단지 전역에 공공 Wi-Fi 등 대폭 확대..  
경주시민이 산불 이재민 돕기에 앞장섰다..  
정부 추경에 APEC 예산 135억 원 확보..  
APEC 앞두고 경주시 물정화 기술 세계 주목..  
외동읍 건초생산 사업장 완공···사료비 절감..  
5월 한 달간 불금예찬 야시장 개장된다..  
대한민국 국공립극단 페스티벌 경주서 개최..  
경주 샤인머스켓 세계 최고 품질 향상..  
경주 수산물과 식수, 방사능 안전하다..  
안강읍 산대리와 육통리 폐기물 해결됐다..  

인사말 윤리강령 윤리실천요강 편집규약 광고문의 제휴문의 개인정보취급방침 찾아오시는 길 청소년보호정책 구독신청 기사제보
상호: 황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505-81-77342/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용황로 9길 11-6 (4층) / 발행인: 최남억 / 편집인: 최남억
mail: tel2200@naver.com / Tel: 054-624-2200 / Fax : 054-624-0624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43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남억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