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봄날에 빵끼 먹던 날 | ⓒ 황성신문 | |
 |  | | ⓒ 황성신문 | 끼를 나는 좋아한다. 고향에서는 바닷게를 “끼”라 한다. 끼 중에서 “빵끼”를 좋아한다. 물론 1963년에도 불법인 줄을 알았지만 희한하게 법망(法網)을 피해 시장에 내다 팔고 있으니 산 것이다.
하필 왜 이름이 빵끼일까? 빵하고 관계가 있는 것이다. 성(性)이 암컷이다. 수컷은 “대게”라고 한다. 암컷이니 배에 알을 품고 있다. 끼는 암컷이 몸이 작다. 끼 암컷의 몸이“찐빵만하다.”하여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게의 암컷을 “빵끼”라 부른다.
맛있는 대게는 등딱지가 9Cm이상이라야 잡을 수 있다. 그 정도의 크기라도 8년 정도는 자라야 그렇게 자란단다. 같은 그물에 걸리더라도 때깔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보통 황금색, 은백색, 분홍색, 홍색 등 네 종류로 구분한다. 색깔이 짙을수록 살이 단단하고 맛있다고 하는데, 황금색이 도는 것은 특별히 참대게 또는 박달대게라 부르고 최상급으로 취급한다.
주로 서식하는 수심은 200∼400m 대륙경사면 바닥으로 연간 3℃ 이하의 수온을 유지하는 곳이라야 한다. 또한, 대게는 암컷과 수컷의 서식처가 분리되어 있으며, 암컷과 새끼 끼는 수심 200∼300m의 대륙경사면에 서식한다. 수컷 성체는 수심 300m 이상에서도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우리나라 경북 이북의 동해안, 함경북도 연안 동해 서남해역의 냉수역 그 외 오호츠크 해, 캄차카 해, 베링 해, 알래스카 해, 북미 서안, 그린란드 등에 분포하고 있다.
0년에서 15년 정도이며 수컷은 성장과정에서 탈피를 반복한다. 대체로 11령까지 탈피 후 성체로 생존하는데 대게나 홍게의 암컷은 일명 빵끼라고 하였다. 암컷은 수컷보다 몸집이 1/3 이하이고, 배꼽에 알집을 품고 있다. 암컷은 탈피횟수가 적어 몸집이 수컷에 비해 작다. 몸통(갑각)은 둥그스름한 삼각형으로 넓이는 길이보다 약간 더 넓고, 작은 가시가 15∼20개 있다. 몸은 주황색 또는 연한 밤색이며 다리는 집게발이고 제1, 제2다리(보각)는 매우 길며 걷는 다리, 제3다리(보각)는 제1, 2다리보다 약간 짧고 제4다리(보각)는 매우 짧고 가늘다.
어머니는 게 중에 빵끼를 좋아한다. 많은 식구 중에 어머니는 꼭 나를 불러 같이 먹자고 한다. 그것도 봄이 되어 나른할 때쯤이면 어떻게 구해 와서 그렇게 나와 단둘이 다른 식구가 없는 날에 뽕나무 아래에서 먹자고 한다. 그것도 대소쿠리에 한 소쿠리씩이나 쪄서 가져온다. 고맙게 생각하면서 양지 바른 그곳에서 맨손으로 까먹기 시작한다.
먼저 다리를 떼버리고, 껍데기 아랫부분에 붙어 있는 알집을 고스란히 조심해서 떼어 낸다. 알의 색깔이 붉은 것을 좋아한다. 어두운 밤색의 알도 있다. 알을 한 번 입에 넣으면 그 맛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입에다 자꾸 넣기 마련이다. 오도독 씹히는 그 즐거움이 좋아서 알을 계속 먹는다. 한 번 입속에 들어가는 알이 과연 몇 개나 될까? 세어 보지는 못했어도 상당한 알의 개수다.
끼를 먹고 난 껍데기는 최고의 거름이 된다. 초등학교에 근무하였을 때 과학전에 출품한 게 껍데기 거름으로 고추 성장을 보고 아주 좋은 거름이 되는 줄 알았다. 게 껍데기는 단단하다. 이 부분을 “키틴”이라 부른다. 키틴을 공정하여 나온 산물이 키토산이다. 사람은 이 가공한 키토산을 먹을 수 있다. 키토산을 사람이 먹으면 피를 맑게 하고,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며, 혈관건강이 좋아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장이 건강하게 되고,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는 항암작용까지 하는 만병통치약이 된다.
끼의 속살을 발겨 먹고 나니 거짓말 같이 그 껍데기가 더 많아진다. 어머니는 둘만 몰래 먹은 끼 껍데기를 완전범죄처럼 처리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삽을 가져오라 해 놓고 뽕나무 뿌리 곁을 파고 묻어라 하였다. 어머니와 합의하여 둘은 결코 빵끼를 먹지 않았다고 그 후까지 완전범죄 현장을 묻기로 결의하였다.
심지어 이 빵끼는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다. 그 이름이 “진상등록”에는 기록되지 않고 “열구자탕(悅口子湯)”이란 이름으로 수라상에 오른다. 그 탕은 글자 그대로 “입을 즐겁게 하는 탕”이란 뜻이다. 열구자탕은 서기1795년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게구이〔蟹脚灸伊〕가 「의궤」에 최초로 대게가 궁중 요리서에 기록됨으로 인하여 진상품으로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것이다. 19세기말 「시의전서」에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시의전서」가 나온 19세기말은 구한말의 격변기로서 궁중의 일부 음식이 일반에게 알려졌던 시기다. 「시의전서」의 찬품 내용은 궁중의 영향을 받은 반가의 요리로 본다.
빵끼 알이 1892년에서 1902년까지 궁중음식의 하나인 열구자탕의 재료로 쓰였다. 생게전〔生蟹煎〕은 1827년에서 1902년까지, 그밖에 해란전(蟹卵煎)이 1892년에 궁중음식 재료로 사용됐던 기록이 있다.
지금은 빵끼를 구경하지 못한다. 법으로 금지되었기에 먹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그 예전 빵끼를 식구들 몰래 먹은 것에 사죄하듯 아직까지도 미안하기에 부족하지만 이 글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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