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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신경통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청림 이영백수필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2년 01월 28일(금) 14:14

ⓒ 황성신문
ⓒ 황성신문

어머니에게는 지병(持病)인 신경통이 있다. 마흔 넷에 나를 낳고 그해부터 속병과 함께 신경통을 앓아왔다. 그때부터 속병과 화병 고치려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시골 여인네로서 아들 다섯, 딸 다섯을 이십사 년간 배태(胚胎)했으니 신경통이 왜 아니 오겠는가? 여인은 출산의 횟수가 많을수록 신경통으로 올 확률이 높아진다.

시골에 살면서 출산뿐만 아니다. 근세조선 1906(고종 광무10丙午)에 태어난 어머니로서 궂은 집안일을 모두 해 내어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기 때문에 새참이나 끼니도 무시 못 할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의 괴팍한 성질을 다 받아 주고 살려면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겠는가? 온갖 시련을 견디며 살아왔음에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난 의학을 잘 모르지만,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도 곧 지병이 될 것이다. 다산(多産)의 결과는 여인의 피치 못할 병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 출산과 온갖 스트레스를 모두 받아서 무릎과 손 마디마디마다 모두 그 검증의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신경통에 알약 신약(新藥)을 먹는데도 별로 효과가 없다. 약을 먹는다는 위로의 50%, 약을 먹었다는 안도 50%로 겨우 현상유지를 할 뿐이다. 난 열 번째 막내이기에 제때 공부를 못했다. 교육대학 졸업으로 겨우 밥 먹고 살 준비 하느라고 어머니 보살필 겨를이 없었다. 약 한 첩 사 드리지 못했다. 신약이라도 사 드리지 못한 점은 돌아가시고 나니 더욱 후회되고, 지금은 더더욱 후회스럽다. 자식으로서 무엇을 했든가? 못난 자식 낳아 자괴감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이 생이 후회스러울 뿐이다.

연세도 연세고, 신경통으로 장거리 못 걸으시니 원행을 못했다. 막내아들이 중등준교사 준비를 자력으로 공부한다고, 결혼도 미루고 있던 차에 아버지 돌아가셨다. 과년한 질녀들의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나의 결혼을 결정하자 뛸 듯이 기뻐하던 분이 바로 나의 어머니다. 장손녀보다 세 살 많은 아들이 먼저 장가 가야한다는 원칙이 통한 것이다.

막내아들이 장가간다고 하니 경주 본가에서 초임 근무지 모포(牟浦)학교까지 길도 모르면서 주소하나 달랑 들고 물어, 물어 그렇게도 마침내 찾아 왔다. 글자 한 자 모르는 일자무학에서라도 그렇게 물어, 물어서 찾아오다니 참 대단하다. 다리가 불편하여서 원행을 못하는 데도 막내가 장가간다니까 불쑥 찾아 왔다. 나는 하숙하다가 방을 얻어 두었다. 얻은 방을 보고 최소 기본살림이라도 장만해야 한다고 곱쳐 둔 비상금을 들고 버스 백리 길을 둘러, 둘러 물어, 물어 찾아 왔던 것이다.

연탄을 사용하던 시절이다. 하숙 하다가 밥 못해 굶을까보아 걱정되어 찾아 왔다. 나도 자취(自炊) 4년생이다. 혼자 밥은 얼마든지 해 먹는데도 부모이기에 걱정이 너무 앞섰던 모양이다. 또 사실은 막내아들 장가간다니 기뻐서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 더 깊지 싶다.

야야! 신경통이 있어 손가락으로 꽉 쥐지 못하니 연탄불 갈아놓고 가거레이!”

! 걱정 마시고 그냥 방에 가만히 계시소.”

아침밥 해먹고, 자전거 몰고 학교 갔다. 혼식조사 하고 반장에게 점심시간을 맡겨 두고 나왔다. 점심시간에 모친과 식사 함께 하려고 자전거 급히 몰아타고 집으로 왔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그 아픈 손으로 연탄불 갈고, 밥하고, 국 끓이고, 좋아하는 참가자미 찌지고, 김치, 미역귀다리 등 온통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수업시간 오전 네 시간 마치고, 집으로 올 때까지 계속 그렇게 막내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로서는 약하지만, 어머니로서는 강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침출근 할 때 말씀은 그리하셔도 신경통으로 손도 제대로 못 쓰면서 모든 것을 동원해 한 상 가득 차려 두었다. 막내아들 결혼 전에 혼자 산다니까 걱정돼 음식을 차린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하늘 끝이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학교에서 빨리 돌아오지 않으니까 마음은 급해오고 밥 준비를 마쳐야 하는데 마침 연탄불이 꺼졌다. 연탄불 갈려고 집게를 집었는데 아픈 손으로 집어 올리다가 손이 아파 집게를 놓쳐서 온전한 연탄 두 장을 모두 박살내고 말았다.

아픈 손으로 연탄집게를 못 쥐는데 그냥 두지 그랬어요?”

꺼져 가는 연탄불 보고 어찌 그냥 두느냐? 불 한 번 꺼트리면 번개탄이 몇 장이나 들어 가야하는데.”

. 갈기는 잘 갈았습니다.”

그래도 아까운 연탄 두 장을 버렸어.”

괜찮아요. 까짓것 연탄은 돈 주고 사면 될 것이고, 그리고 그것 얼마 한다고요? 괜찮아요.”

어머니는 신경통이 있는 자신의 손으로 멀쩡한 연탄 두 장을 깨뜨린 것을 못내 매우 아까워하고 계신다.

형님이나 누나들보다 나는 부모와 함께 지낸 시간이 너무 짧다. 늦게 태어나서 집 떠나 있었고, 직장생활하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되었다. 물론 늦게 태어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효도라는 것을 못해 보았다. 불효자일 뿐이다.

짧은 기간이나마 어머니와 더욱 진한 사랑의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형님, 누나들은 일찍 시집장가가서 자식 건사하기도 바쁘다. 짧은 시간이지만 어머니는 모든 것을 막내 자식에게 쏟아 부어 주었다. 어머니 신경통은 막내아들에게는 짐도, 마음의 고생도 아닌 영광의 상처요, 바로 어머니가 받은 훈장(勳章)이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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