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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 누비담배지갑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2년 02월 11일(금) 15:34

ⓒ 황성신문

↑↑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삼층 누비담배지갑
ⓒ 황성신문
! 어머니, 나의 어머니, 지금은 어디에 계십니까? 어머니는 시대를 물러나 살았던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이라 생각한다. 그렇다. 누구나 어머니라는 낱말을 들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질 것이다. 나는 더욱 더 그 눈물마저 난다.

어머니는 마흔 넷에 열 번째로 나를 낳고, 동시에 천연두 마마(媽媽)를 했다. 그래서 코가 얽어 살짝 곰보가 된다. 그 후론 속이 좋지 않아서 곰방대에서 장죽으로 담배를 재워 피웠다.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의 살림이라 제 때 입혀주지 못함에, 신겨주지 못함에, 배불리 먹게 하지 못함에, 제때 공부시키지 못함에 평생 응어리가 됐다. 비록 중년 여성일지라도 담배를 피워야 스트레스가 풀어지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손수 해결한다. 어렸을 때 자다가 보면 물레소리에 잠이 깬다. 이를 바라보면 한 밤중에도 팔을 높이 쳐들고 무명실을 밤새 잣고, 무르팍이 따갑도록 비벼서 삼도 삼는다. 눈에 보이지도 않던 날줄, 씨줄 열석 세 명주 짜던 베틀이며, 새벽에 풋보리 베어 말려서 디딜방아 찧어 점심 내던 그 부지런하심이 지금도 눈에 삼삼, 귀에 쟁쟁하다. 어머니의 그 열성을 누구도 함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잘못을 스스로 자인함에 너무 익숙했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른 봄이면 입맛을 돋우게 하려고 돌나물로 김치 담그고, 돌미나리 채취해 미나리 전 부쳤다. 별이 빛나는 여름밤에 밀짚자리 멍석에 누워서 별 헤아리면 어느 샌가 모르게 나의 곁에는 함지박에다 옥수수, 햇고구마, 햇감자가 냄새를 솔솔 내게 한다. 목이 멜 새라 물김치국물 가져다 놓고, 우리가 잘 먹는다고 당신은 드시지 않으면서 전병(煎餠)까지 덤으로 놓아둔다. 보리쌀을 사카린 넣어 삶아서 언제나 우리 형제의 입을 즐겁게 한다.

비오는 날에는 밀 볶아서 우리들 군것질을 당해 주었다. 홍두깨로 손수 민 칼국수는 일품이라 아이도 두 그릇을 거뜬히 먹게 한 최고요리사다. 한 겨울에 새끼 꼬고, 가마니 칠 때, 감 껍질로 범벅 만들어 요기하게 했다. 옥수수 튀밥과 백김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래도 부족하면 무 구덩이에 쇠스랑 넣어 찍혀 나오는 무를 껍질 벗겨 엇비슷 썰어 주면 긴긴밤 배고픈 겨울에는 별미 동삼(冬蔘)이라 한다.

어머니 손길은 마이다스의 손이다. 한 여름 이불 덮지 않아 배탈이 났을 때도, 약이 없어도 빈손이면서 내 손이 약손이다. 내손이 약손이다.”라고 외치면 서너 번 배만 만져주어도 배탈이 저절로 나아버렸던 진짜 마술사이다.

아버지 생일선물 하려고 손수 몰래 만든 담배지갑이 있다. 그것도 3층 누비담배지갑이라고 한다. 담배지갑은 창호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모아 둔다. 시간이 나는 대로 맨 손바닥으로 비비었다. 수북이 쌓인 것이 마치 가느다란 새하얀 엿가락 같았다. 이 일만 하는 것이 아니며, 자투리시간이 날 때마다 비벼둔다. 어느 정도 작업할 수 있는 양이 되면 새하얀 옥양목으로 1층은 짧게, 2층은 중간 크기로, 3층은 조금 더 크게 해 모든 것을 겹으로 준비 한다. 마치 예술가처럼 겹쳐진 층 따라 비벼둔 창호지 하나로 무늬를 만들기 위해 골속에 송곳으로 밀어붙여 그 골을 유지하도록 한다. 여러 가지 색실로 한 뜸씩 누벼가는 작업이다. 3층까지 따로따로 완성이 되면 이제는 끝부분을 바느질해 겹치게 엮이면 하나의 지갑이 된다. 아직 완성이 아니다.

3층 끝에 색실로 된 줄을 달아 돌려 묶기를 할 수 있도록 단다. 바깥쪽 가운데에 빛깔 좋은 큰 호박단추를 달고 마무리를 한다. 완전한 3층 누비 담배지갑이 완성된다.

아버지 음력 시월 스무사흘 날 생일에 내 놓은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3층 누비 담배지갑이다. 어머니 손길은 마술이다. 38년 전 집사람이 시집와서 버리려고 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3층 누비담배지갑, 이제는 어머니의 유품으로 오직 나 혼자만이 가지고 있다.

! 어머니, 나의 어머니! 지금은 어디에 계십니까? 금년 당신께서 태어나신 107년으로 불효 막내가 돌아오지 못할 편지를 구천에 띄웁니다. 이제는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없는 저 먼 구천에서라도 이 글로써 굽어 살펴 주옵소서.

201258일 어버이날에 막내아들 올림.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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