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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징끼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2년 03월 11일(금) 15:17

ⓒ 황성신문

↑↑ 끙게 호시 타다가 소 뒷발에 차이다
ⓒ 황성신문
세상의 동물 중에 가축으로 소가 있다. 소는 농촌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가축이다. 소는 인간에게 충직하다. 그러나 소와 관련해 상당히 위험한 경우를 당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이다.

어느 늦가을 날 아버지는 집 앞 보리밭에 흙덩이를 부수어서 고랑에 덮어 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끙게에 무거운 돌을 얹어서 황소가 끄는 작업을 했다. 집 앞에 놀고 있는 나를 불렀다. 끙게 위에 돌 대신에 나를 앉으라는 것이다. 돌을 얹어 끌고 가니까 밭 끝자락에 오면서 사람의 힘으로 끙게를 돌려야 하므로 아버지에게 힘이 많이 든 것이다. 돌 대신에 아이가 앉아서 끝자락에 와서는 발딱 잽싸게 내리면 빈 끙게를 답삭 들어 방향 전환만 하면 되기 때문에 힘이 덜 들고 참 편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호의(?)에 따라 나는 끙게 위에 돌을 내린 자리로 가서 앉았다. 호시 타는 재미가 너무 쏠쏠하다. 밭의 긴 사래를 온통 내 혼자만이 타고 가니 정말 호사했다. 긴 사래를 가고 오니 즐겁다. 그러나 먼지가 일어서 내 코를 막히게 한다. 우물 곁 끝자락 가까이에 와서 내가 빨리 내려야 하는데 주춤 거리는 바람에 황소가 그만 뒷발로 콧잔등을 차 버렸다.

순간 얼굴에 번쩍하는 불기운을 보고 나는 기절해 버렸다. 다음은 말 안 해도 아버지의 차례가 됐다. 나는 차이면서 넘어지고, 정신을 잃었다. 죽은 것으로 알고, 곧장 나를 사랑채로 안고 갖다 누이었다. 큰방에 일하던 어머니를 불러 약 가져 오라고 소리쳤다. 내가 안겨 가는 동안에도 마치 시뻘건 불기둥 속 블랙홀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때 그 시절 시골에서 무슨 상비약이 준비돼 있겠는가?

시골에서는 곧잘 낫질로 인해 벤데 바르는 것쯤으로 알고 있는 머큐로크롬(Mercurochrome), 일명 빨간약 또는 아까징끼로 불리던 소독약뿐이다. 막내아들이 기절해 버렸으니 아버지는 무슨 생각이 더 날 수가 있겠는가? 약이라고 가져 온 것은 제법 양이 많은 병째 빨간약뿐이다. 그 약은 소독용인데 급하다 보니까 내 작은 얼굴에다가 온통 모두 쏟아 부어 버리고 혹시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꿈을 꾸고 있듯 가사상태가 되어 있다가 소독약 빨간약이 얼굴에 쏟아지니까 차가워서 제풀에 깨어나게 됐다. 숨이 막혔다가, 아니 충치가 막혔다가 그때야 으악!”하고 숨이 터진 것이다. 살아났다.

이게 무엇인가? 세상에 황소 뒷발바닥으로 차이고, 충치가 막혔다가 빨간약 한 병을 다 들이붓고 깬 것이 일련의 소생한 과정이다. 그때에야 으깨어져 버린 콧속이 쑤시고 아파왔다. 농촌에서 병원가기는 멀고, 아예 돈 들고 하니 병원을 갈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그냥 두면 낫는다고 방치하고 말았다. 육안으로 보아 용케 크게 다치지 않았고 얼굴만 온통 빨간 얼굴로 염색하고 말았다.

이튿날 학교를 갔다. 친구들이 나를 아까징끼라고 막 놀려댔다. 4학년에 올라가서 가을학예회가 있다. 합창단에서도 키가 작아서 맨 앞줄에 서서 노래해야 했다. 담임선생님은 그 얼굴로 합창단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 기가 찼다. 세상에 이러한 일이 나에게 생긴단 말인가?

집에 돌아와서 아직 덜 나은 얼굴에 달린 콧등을 찬물로 씻고, 작은 돌멩이로 빨간약 흔적을 지우기 위해 따가워도 자꾸 반나절을 문질러댔다. 아픈 코는 나를 원망하든 말든 계속 문질러 댔다. 이 학예회 기회가 어떤 기회인가 이를 놓치고 싶지 아니했다. 자꾸 문지르니까 콧속이 허물어졌다. 오직 일념으로 얼굴에 붉은 색을 지우기 위해 계속 문질러댔다. 또 물로 자꾸 씻었다. 3일간이나 씻어대니까 이제 조금 빨간색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첫째 줄에 못 서고 키가 작아도 둘째 줄에 서서 얼굴이 묻히더라도 겨우 합창단은 참가했다.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더욱 못 잊는다. 2학년 때 담임도 했고, 나의 그림 그리는 실력을 자주 칭찬해 주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도 그림을 잘 그렸다. 선생님 댁에는 여동생이 우리와 같은 학년이고, 역전에서 기념품 만드는 부업을 했다.

한참동안 황소 근처도 가기 싫었다. 단지 암소만 몰고 다니면서 풀 먹이기로 다닐 뿐이다. 나를 뒷발로 찬 황소는 모두가 겁내하는 우리 집 소다. 우리 집 소 열한마리 중에 최고로 날뛰고, 무서워하는 소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셋째형은 아버지께 동생 찬 황소를 팔아 버리자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황소를 제일 좋아했다. 왜냐하면 조금 힘이 좋아 날뛰기는 하지만 무논 갈 때는 단연 최고이며, 구루마를 끌 때는 꼭 그 황소만 부렸다. 무거운 짐을 태산같이 싣고도 끄떡없이 잘 끌기 때문이다. 그런 충직한 황소를 아버지가 팔 리 만무하다. 나도 팔지 않기를 바랐다.

다른 소는 아무 외양간이나 밖에 매어도 그 황소는 꼭 사랑채 부엌이 딸린 제일 따스한 외양간에 들인다. 게다가 밤에 수시로 사랑채 새문열고서 황소의 건강을 체크하면서 잘 먹고, 꼭 건강하라고 황소가 알아듣던 말든 혼자 일러대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코는 뒷발로 찼지만 그 황소를 좋아하게 됐다. 그 많은 짐을 싣고 매일 활동해도 건강 하나만은 대단한, 정말 황소고집처럼 건강했다. 큰 머슴도 그 황소를 제일 좋아했다. 나도 저절로 아버지, 큰 머슴을 따라 그 황소를 좋아하게 되고 말았다.

사실 그 황소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내가 빨리 피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 크기 때문이다. 동물은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마치 자기를 해하려는 것으로 착각해 자기방어하려고 한 것뿐이다. 정말 그날 황소는 내가 뒤에 가까이 있으니까 자기방어위해 뒷발을 차게 된 것 뿐이라고 속삭인다. 그 황소는 절대 잘못이 없다. 그것은 내가 대변해 주었다.

지금까지도 늦가을부터 찬바람을 맞으면 콧속이 잘 헌다. 조금 무리하거나 건조하는 겨울이 오면 양쪽 콧속이 모두 잘 헌다. 피곤하거나 하면 더욱 콧속이 근질거리고 아팠다. 자주 피가 비친다. 내 코는 그때부터 자그마치 지금까지도 평생 아프고 있다. 나의 잘못이다.

육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등학교 동기모임에 가면 그 황소의 덕택으로 별명이 아까징끼로 기억돼 불러준다. 아직도 콧속은 약간 추워지면 더욱 아파왔다. 황소야 고맙다. 나에게 별명을 붙여 주었고, 평생 콧속이 헐어 아프게 해 주어서 너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고마워 별명 아까징끼여!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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