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황성신문 | |
 |  | | ⓒ 황성신문 | 그때 1960년대 전후만 하더라도 어린아이들은 끼니도 제대로 못 먹었으며, 간식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지금도 키 작은 이유는 제때 먹어야 하는데 먹지 못하였으니 영양소가 부족하여 덜 자란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 살면서 그 때는 마냥 굶주리고 살았을 뿐이다. 먹거리를 찾아 나서야 하였다.
시골에서 소 기르지 아니하고서는 목돈을 마련하지 못한다. 소는 곧 살림의 기본재산이며 재산 늘리는 수단으로 소를 먹이고, 농사짓기에 중요한 권속(眷屬)*처럼 생각한다. 집마다 소 몇 마리 키우느냐에 따라서 재산의 넉넉함을 안다. 소 많이 키운다는 것은 곧 논·밭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소 풀 먹이러 가면서 우리는 밀 서리 하려간다고 여긴다.
소를 밀개산 삼박골에 올려놓고 우리는 배고픈 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밀 서리를 시작한다. 나이 든 형들이 먼저 시작하고, 나이 어린 우리들은 심부름만 한다. 낫 들고 동국(東國)댁 밀밭에 어슬렁거리다가 기회보아 갑자기 허리 납작 굽혀 살금살금 기다시피 들어간다. 절대로 한꺼번에 고랑 채 베는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여기저기 조금씩 베어 모은다. 밀 베는데 낫질하는 손이 떨리고, 가슴이 콩닥거려서 마음이 조마조마해온다. 그러나 책임이라는 것이 무섭다. 소 먹이는 일곱 명이 먹을 만치 남의 밀을 베어서 아름 채 안고 도망치듯 재바르게 삼박골로 돌아온다.
밀 베 오는 동안 밀 서리하는 밑불을 준비하여 놓는다. 큰 돌 세 개를 주어 와서 부엌처럼 만든다. 혹시 불나면 안 되니까 돌로 막아 놓는다. 삭정이가지 놓고 불을 지핀다. 자연히 처음에는 연기가 났다. 그러면 혼비백산하여 입김으로 바람을 불어서 완전 연소하여 빨리 불이 잘 붙기를 바란다. 연기 내지 않는 방법은 골짜기에서 마른 싸리나무가지로 불을 피우면 연기가 없다고 한다.
불이 제법 잘 붙어서 알불이 되면 끊어온 밀 훼기 채 불 위에서 들고 밀 이삭을 굽는다. 빨리 익으면 토닥토닥 불 위에 밀알 머리가 떨어지기도 한다. 형들이 큰 나무집게를 만들어 불에 많이 타지 않도록 헤집어 낸다. 그리고 잘 굽힌 밀을 어린 우리들에게 한 움큼씩 나누어 준다.
굽힌 밀알을 골라먹기 위해서는 앙증스러운 손바닥으로 시커먼 밀을 잘 비벼야 하였다. 시커멓게 굽힌 밀알 들고 작은 손바닥으로 한 입 먹어보겠다고 싹싹 비비고 또 비빈다. 어지간히 비벼졌다고 생각하면 입김으로 세게 훅 불어서 껍질 날리고 입속에다 넣는다. 한 알 흘릴 것도 없이 낱알 모두를 꼭꼭 씹어 먹는다.
숨어 하던 밀 서리로 땀이 나자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쓱 문지른다. 뺨도 근지러워 훔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온통 얼굴에 검댕으로 그림을 그려둔다. 군인들의 위장한 얼굴처럼 되어 버렸다. 한 움큼의 굽은 밀알을 먹기 위하여 얼굴에 검댕으로 메이크업까지 한 것이다. 그런 얼굴 서로 쳐다보면서 웃고 만다. 이 얼굴이 밀 서리한 얼굴이라고 스스로 고백 하는듯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소를 산으로 올려 두고 밀 서리 해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어디에서 풀을 뜯는지 조차도 모르고 시간을 보낸다. 형들과 함께 있으니 어린 우리들은 겁도 없이 삼박골 입구에만 기다리면 된다. 어느 듯 해는 지고 저녁노을이 진다. 평소에는 해지면 저절로 산 아래로 풀을 뜯어 먹으며 내려오기 때문에 쉽게 우리 소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쉽사리 소가 내려오지 아니한다. 그랬다. 유별나게 오늘 소들이 내려오지 아니한다. 제일 나이 많은 형이 말한다.
“곧 어두워지는데 우리 소 찾으러 올라 가 보자!”
형들은 덩달아 제 빨리 산 위로 찾아 나선다. 그러나 어린 우리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멈칫거리고만 있다. 산그늘이 내리고 더욱 어두워지면서 겁이 덜컥 난다. 산으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저 울고만 있다. 어둠이 오면 산골은 순식간에 산그늘이 내리고, 갑자기 캄캄해 오고 만다. 꼴머슴과 나는 그저 울고만 서 있었다. 소를 잃어 먹어서 무척 겁이 났다. 나도 모르게 집으로 부리나케 돌아오고 말았다. 우리 집 소를 버리고 아이만 돌아왔다.
사립문에서 집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쩔쩔 매고 있는데, 넷째 형님이 우리를 보고 당장 알아차린다.
“너희들, 소 잃어버리고 왔지? 이제 큰일 났다. 아버지! 얘들 소 잃어버리고 왔데요!”
“응~, 뭐라고 소를 잃어? 그래 알았다. 오복아! 그만 집에 들어오너라.”
“예.”
얼마나 고마우신 말씀인가? 소를 잃어 버려도 그냥 집으로 들어오라고만 하였다.
“아버지! 소 잃어 버렸는데 이제 우짜지요?”
“그래. 괜찮다. 소가 얼마나 영물인데 우리 집 잘 알고, 곧 찾아올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또 너희들 소 안 보고 밀 서리 해 먹었제?”
아버지는 안 보고도 천 리 일을 훤하게 다 알고 계신다. 게다가 잃어버린 소라도 어른이니까 걱정이 안 되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홉 시가 넘어서야 우리 집 소 워낭소리가 사립문 곁에서 “쩔렁∼, 쩔렁∼!”들리었다.
소는 캄캄한 밤에 어떻게 우리 집을 알고 찾아오지? 그것도 여섯 마리 소 모두를 데리고 어미 소가 제일 먼저 앞서 왔다. 얌전이 송아지까지 “딸∼랑, 딸∼랑!” 얌전하게 워낭 울린다. 우리 집으로 모두가 일렬로 줄 서서 군인사열 받듯 거침없이 찾아온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랐다. 눈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 놈의 밀 서리 때문에 소 먹이는 것도 잊어버린 황당한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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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속(眷屬) : 한 집안 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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