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2025-05-02 오후 04:30:28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수필
전체기사
뉴스 > 수필
밀 서리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이영백 수필가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2년 03월 18일(금) 14:31

ⓒ 황성신문
ⓒ 황성신문
그때 1960년대 전후만 하더라도 어린아이들은 끼니도 제대로 못 먹었으며, 간식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지금도 키 작은 이유는 제때 먹어야 하는데 먹지 못하였으니 영양소가 부족하여 덜 자란 것이다. 그러나 시골에 살면서 그 때는 마냥 굶주리고 살았을 뿐이다. 먹거리를 찾아 나서야 하였다.

시골에서 소 기르지 아니하고서는 목돈을 마련하지 못한다. 소는 곧 살림의 기본재산이며 재산 늘리는 수단으로 소를 먹이고, 농사짓기에 중요한 권속(眷屬)*처럼 생각한다. 집마다 소 몇 마리 키우느냐에 따라서 재산의 넉넉함을 안다. 소 많이 키운다는 것은 곧 논·밭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소 풀 먹이러 가면서 우리는 밀 서리 하려간다고 여긴다.

소를 밀개산 삼박골에 올려놓고 우리는 배고픈 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밀 서리를 시작한다. 나이 든 형들이 먼저 시작하고, 나이 어린 우리들은 심부름만 한다. 낫 들고 동국(東國)댁 밀밭에 어슬렁거리다가 기회보아 갑자기 허리 납작 굽혀 살금살금 기다시피 들어간다. 절대로 한꺼번에 고랑 채 베는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여기저기 조금씩 베어 모은다. 밀 베는데 낫질하는 손이 떨리고, 가슴이 콩닥거려서 마음이 조마조마해온다. 그러나 책임이라는 것이 무섭다. 소 먹이는 일곱 명이 먹을 만치 남의 밀을 베어서 아름 채 안고 도망치듯 재바르게 삼박골로 돌아온다.

밀 베 오는 동안 밀 서리하는 밑불을 준비하여 놓는다. 큰 돌 세 개를 주어 와서 부엌처럼 만든다. 혹시 불나면 안 되니까 돌로 막아 놓는다. 삭정이가지 놓고 불을 지핀다. 자연히 처음에는 연기가 났다. 그러면 혼비백산하여 입김으로 바람을 불어서 완전 연소하여 빨리 불이 잘 붙기를 바란다. 연기 내지 않는 방법은 골짜기에서 마른 싸리나무가지로 불을 피우면 연기가 없다고 한다.

불이 제법 잘 붙어서 알불이 되면 끊어온 밀 훼기 채 불 위에서 들고 밀 이삭을 굽는다. 빨리 익으면 토닥토닥 불 위에 밀알 머리가 떨어지기도 한다. 형들이 큰 나무집게를 만들어 불에 많이 타지 않도록 헤집어 낸다. 그리고 잘 굽힌 밀을 어린 우리들에게 한 움큼씩 나누어 준다.

굽힌 밀알을 골라먹기 위해서는 앙증스러운 손바닥으로 시커먼 밀을 잘 비벼야 하였다. 시커멓게 굽힌 밀알 들고 작은 손바닥으로 한 입 먹어보겠다고 싹싹 비비고 또 비빈다. 어지간히 비벼졌다고 생각하면 입김으로 세게 훅 불어서 껍질 날리고 입속에다 넣는다. 한 알 흘릴 것도 없이 낱알 모두를 꼭꼭 씹어 먹는다.

숨어 하던 밀 서리로 땀이 나자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쓱 문지른다. 뺨도 근지러워 훔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온통 얼굴에 검댕으로 그림을 그려둔다. 군인들의 위장한 얼굴처럼 되어 버렸다. 한 움큼의 굽은 밀알을 먹기 위하여 얼굴에 검댕으로 메이크업까지 한 것이다. 그런 얼굴 서로 쳐다보면서 웃고 만다. 이 얼굴이 밀 서리한 얼굴이라고 스스로 고백 하는듯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소를 산으로 올려 두고 밀 서리 해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어디에서 풀을 뜯는지 조차도 모르고 시간을 보낸다. 형들과 함께 있으니 어린 우리들은 겁도 없이 삼박골 입구에만 기다리면 된다. 어느 듯 해는 지고 저녁노을이 진다. 평소에는 해지면 저절로 산 아래로 풀을 뜯어 먹으며 내려오기 때문에 쉽게 우리 소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쉽사리 소가 내려오지 아니한다. 그랬다. 유별나게 오늘 소들이 내려오지 아니한다. 제일 나이 많은 형이 말한다.

곧 어두워지는데 우리 소 찾으러 올라 가 보자!”

형들은 덩달아 제 빨리 산 위로 찾아 나선다. 그러나 어린 우리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멈칫거리고만 있다. 산그늘이 내리고 더욱 어두워지면서 겁이 덜컥 난다. 산으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저 울고만 있다. 어둠이 오면 산골은 순식간에 산그늘이 내리고, 갑자기 캄캄해 오고 만다. 꼴머슴과 나는 그저 울고만 서 있었다. 소를 잃어 먹어서 무척 겁이 났다. 나도 모르게 집으로 부리나케 돌아오고 말았다. 우리 집 소를 버리고 아이만 돌아왔다.

사립문에서 집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쩔쩔 매고 있는데, 넷째 형님이 우리를 보고 당장 알아차린다.

너희들, 소 잃어버리고 왔지? 이제 큰일 났다. 아버지! 얘들 소 잃어버리고 왔데요!”

~, 뭐라고 소를 잃어? 그래 알았다. 오복아! 그만 집에 들어오너라.”

.”

얼마나 고마우신 말씀인가? 소를 잃어 버려도 그냥 집으로 들어오라고만 하였다.

아버지! 소 잃어 버렸는데 이제 우짜지요?”

그래. 괜찮다. 소가 얼마나 영물인데 우리 집 잘 알고, 곧 찾아올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또 너희들 소 안 보고 밀 서리 해 먹었제?”

아버지는 안 보고도 천 리 일을 훤하게 다 알고 계신다. 게다가 잃어버린 소라도 어른이니까 걱정이 안 되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홉 시가 넘어서야 우리 집 소 워낭소리가 사립문 곁에서 쩔렁, 쩔렁!”들리었다.

소는 캄캄한 밤에 어떻게 우리 집을 알고 찾아오지? 그것도 여섯 마리 소 모두를 데리고 어미 소가 제일 먼저 앞서 왔다. 얌전이 송아지까지 , !” 얌전하게 워낭 울린다. 우리 집으로 모두가 일렬로 줄 서서 군인사열 받듯 거침없이 찾아온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랐다. 눈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 놈의 밀 서리 때문에 소 먹이는 것도 잊어버린 황당한 아이들이다.

------------

* 권속(眷屬) : 한 집안 식구.


 

 

 

 

 

황성신문 기자  
- Copyrights ⓒ황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신평동(薪坪洞)의 원주민은 보문저수지 조성과 보문관광단지 개..
경주 출신 아동문학가 최소혜, 처녀작 ‘초능력 탐정단’펴내..
‘보문천군지구 도시개발사업’ 건폐율·용적율 대폭 완화..
한수원, 2025 ESG경제대상 ʻESG 종합대상ʼ 수상..
보문관광단지 민간투자 자유로워 진다..
주낙영 시장, 공직기강 확립 ‘칼’빼들었다..
경주시 올해 총예산 2조 2천600억 원 편성..
하늘마루 봉안당 스마트 키오스크 설치..
내년 아태관광협회 연차총회 경주·포항 유치..
경주 동해안 불법어업 특별단속 실시..
최신뉴스
경주시가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변한 노인을 지원한다..  
주 시장 SMR 국가산단에 670개 기업 입주제안..  
주낙영, 주한 에밀리아가토 이탈리아 대사 접견..  
경주시, 종소세와 개인지방소득세 신고접수..  
경주지역 최고 비싼 땅은 평당 약 2천623만 원..  
보문단지 전역에 공공 Wi-Fi 등 대폭 확대..  
경주시민이 산불 이재민 돕기에 앞장섰다..  
정부 추경에 APEC 예산 135억 원 확보..  
APEC 앞두고 경주시 물정화 기술 세계 주목..  
외동읍 건초생산 사업장 완공···사료비 절감..  
5월 한 달간 불금예찬 야시장 개장된다..  
대한민국 국공립극단 페스티벌 경주서 개최..  
경주 샤인머스켓 세계 최고 품질 향상..  
경주 수산물과 식수, 방사능 안전하다..  
안강읍 산대리와 육통리 폐기물 해결됐다..  

인사말 윤리강령 윤리실천요강 편집규약 광고문의 제휴문의 개인정보취급방침 찾아오시는 길 청소년보호정책 구독신청 기사제보
상호: 황성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505-81-77342/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용황로 9길 11-6 (4층) / 발행인: 최남억 / 편집인: 최남억
mail: tel2200@naver.com / Tel: 054-624-2200 / Fax : 054-624-0624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43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남억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