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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베
“인향 천 리 문향 만 리”- 이영백 수필가
황성신문 기자 / 입력 : 2022년 04월 01일(금) 15:29

ⓒ 황성신문

↑↑ ▲ 다래 따 먹는 아이와 목화 따는 아가씨
ⓒ 황성신문
고향 경주에서는 무명베를 “미영 베”라 하였다. 그 목화(木花)씨도 “미영 씨”라고 하였다. 목화가 피기 전에 푸른 껍질 속에 있을 때 어린 우리들은 목화밭에 들어가서 그 푸른 열매 “다래”를 따 먹었다. 다래를 따 먹으면 입안에 달작지근한 물이 잔뜩 고인다. 생길락 말락 하는 섬유질이 씹히는 것 또한 어린 우리들의 허기를 달래고도 남을 정도이므로 자꾸만 따 먹게 되었다. 이때 목화밭 주인은 그것이 꽃이 피어야 목화가 되고, 바로 솜이 나올 텐데 피기도 전에 새파란 다래를 맛있다고 다 따먹어 버리니까 목화밭을 지키게 되었다.
목화는 고려시대 문익점(文益漸)이 원(元)나라에 갔다가 붓 대롱 속에 목화씨 세 개를 가져 왔다고 전한다. 원나라에서는 목화씨 유출을 금지한데 대하여 문익점은 붓 대롱 속에 넣어서 몰래 가져 왔다. 문익점은 경남 산청에 있는 장인 정천익(鄭天益)께 씨앗을 드려서 심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목화시재배지라고 하는 곳은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서 영천으로 내려오는 도로가에 그 목화밭과 “목화시재배지비(碑)”가 있다.
목화는 우리 집에서도 많이 재배하였다. 재배하는 이유는 미영 베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여럿 자식과 머슴 셋의 옷감도 수월치 않다. 모두 철따라 옷을 지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목화씨 구해서 밭에다 뿌리고 목화를 키웠다. 흔히 우리 고장에서는 다래를 따먹으면 “문둥이가 된다.”라고 하여 자기최면에 걸리어 금기시하도록 하였다. 이 말로써 결코 문둥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목화가 될 것을 따 먹지 말라는 경고성의 금기어일 뿐인 것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목화밭은 집 가까이 재배하여야 들며날며 관찰도 하고, 목화 지키기가 좋다. 목화가 피기 전에는 잎 넓은 초록빛 바다 같다. 더욱 자라면 다래가 열리고, 꽃이 핀다. 꽃피면 꽃피어서 더욱 보기 좋다. 처음 필 때는 흰 꽃으로 피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연한 분홍빛을 띠게 된다. 초등학교 때 미술 시간에 손을 살살 간질이던 습자용지 같은 느낌이랄까? 함부로 다룰 수 없는 하늘거림과 화려함이 여전히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꽃이다. 흰색일 때는 별로 눈여겨보지 않고 있다가 붉게 물들면 눈과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목화가 만개하였다. 흰 꽃으로 돌아와 달밤에 만발하면 높이 뜬 저 둥근 달도 미영 베 짜서 시집가라는 듯 내려다보고 있다. 목화가 많이 피어 초록바다에 붉다가 일시에 하얀 눈 덮인 밭으로 변하였다. 보자기 들고 골마다 줄 서서 새하얀 목화꼬투리를 딴다. 보송보송한 새하얀 목화가 망태나 자루에 가득 담길 때쯤이면 저 멀리 동네 총각들이 목화 따는 처녀 얼굴을 훔쳐본다. 혹시 그 목화 따서 시집가려거든 나에게 오라는 뜻이다. 목화 따는 처녀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목화는 따서 말려야 한다. 멍석에 깔아 놓은 새하얀 목화가 햇볕 받으면 더욱 희다. 말린 목화꼬투리에서 목화만 골라낸다. 씨아로 미영 씨를 빼낸다. 미영 씨 뺄 때 씨아에서 나는 소리는 마치 사랑하는 꼬투리와 헤어지기 싫어서 애절한 목쉰 소리를 낸다. 밤새 씨아로 미영 씨를 빼면 이내 솜이 뽀송뽀송한 흰 눈밭으로 쌓이게 된다.
어머니는 목화를 들고 시장입구 솜 타는 집으로 간다. 큰활처럼 생긴 솜활로 목화를 퉁기면 목화는 흰 구름 솜으로 변한다. 꼭꼭 눌러 주면 정말 압축된 종이처럼 되어 집으로 가지고 돌아온다.
솜은 시집갈 누나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새 옷감 만들 것은 물레에 실을 잣게 한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로 솜을 잦아 실이 된다. 우리는 이것을 “미영가락”이라 하였다. 하얀 엿가락이다.
실 뽑아 베틀에 걸고 바디가 왔다갔다하면 여인의 꽃 짚신이 종일 들락날락하여서 미영 베가 탄생한다. 매끈한 비단은 아니지만, 미영 베 면은 지금의 광목같이 우툴두툴하다. 어머니가 만들어 낸 예술품인 미영 베 한 필(疋)이 탄생한다. 폭은 좁아도 스물두 자 배 한 필이면 그 무엇과도 안 바꾼다.
베틀에서 분리되면 풀 먹여 빨아서 다림질하여 옷감으로 만든다. 누가 우리나라 가가호호 방직기술을 예술이라 하지 않으리. 농사철엔 농사짓는 것 도우고, 엄동설한 겨울동안 아녀자로 노력하여 일한 결과물이다. 부지런히 개미처럼 일하여 얻은 생산품이다. “엄마 표 예술품 미영 베”가 되었다.

황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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